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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의 글

자람과 모자람, 잘함과 못 잘함
제6호 기획, 기획자, 기획이라 부르는 것_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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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처음으로 식물을 집에 들였습니다. 사방이 나무로 둘러싸인 집에 살고 있기 때문에 굳이 집에서 까지 식물을 키울 마음은 없었는데요. 몇 번 식물 키우기에 실패해 생명의 불씨를 꺼뜨리고 말았던 실패의 경험도 한몫을 했습니다. 일년에 두 어번 물을 주기만 해도 잘만 산다던 꽃이며 나무들이 저와 지내기만 하면 피죽 피죽 죽어갔기 때문입니다. 공기를 정화한다거나 해충을 쫓는다거나 하는 생활에 도움을 주는 식물의 능력에도 큰 관심이 없기도 합니다.


그러다 꽃, 풀, 나무를 보고 기르기 좋아하는 친구로부터 꽃나무를 선물 받게 되었습니다. 미리 말해줬더라면 정중히 거절했을 겁니다. 어쨌거나 그렇게 만나게 된 식물은 ‘함소화’인데요. 함소화는 크림색 꽃을 피우고 동그란 모양의 단단한 질감을 가진 잎을 내는 꽃나무 입니다. 특징이라면 ‘바닐라 향이 난다는 점인데요. 꽃잎이 크림색이기 때문일까 싶기도 합니다. 함소화를 베란다에 내어두고 키웠는데, 절로 바람을 맞고 스스로 햇빛을 쬐고 알아서 비를 맞더니 그야말로 무럭무럭 자랐습니다. 전이나 지금이나 신경을 안 쓰긴 매한가지인데, 함소화와 지난 식물들의 차이는 뭘까요? 함소화가 유난히 튼튼한 나무일까요?


찾아보니 함소화는 생각보다 예민한 꽃나무라고 합니다. 꽃을 잘 피우는 식물이 아니라고 하고, 바닐라 향을 맡기까지는 키우는 사람의 정성도 꽤나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예상한 것보다 무성히, 무럭무럭 자란 탓에 난생 처음 분갈이도 해보고, 조심스레 베란다에서 실내로 위치를 옮겨왔더니 마침내 한송이 꽃봉오리가 맺히고 피어났습니다. 바닐라향, 분명 바닐라향이더군요.


언젠가 반려동물에 관해 이야기 하던 자리에서 ‘키우는 게 아니라 같이 산다고 생각해야 한다’는 조언을 늘어놨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식물도 마찬가지네요. 식물도 동물처럼 키우는 게 아니라 함께 사는 것이었습니다. 키워야 한다고 생각하니 못했던 것들이, 같이 산다고 생각하니 보이기 시작합니다. 생명을 가진 것들은 무엇이든 스스로 큽니다. 자람도 모자람도 생명의 본질로서 내재해 있는 것 같습니다.


키우지 않고, 기르지 않고 함께 합니다. 이야기와 생각 자체의 생명력을 믿는 것. 두 그루의 나무와 세 송이의 꽃화분을 보내고 나서야 찾은 작은 깨달음이 만사에 형통하기를 비는 가을입니다.

 

#식물 #함소화 #자람 #이야기 #생명력 #함께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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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허영균
허영균은 웹진 《온전》 편집장, 공연예술출판사 1도씨 디렉터이다. 문학과 공연예술학을 공부했다. 연극과 무용을 만들고 그에 대한 글을 써오다 기획의 영역으로 반경을 옮겼다. 퍼포먼스성을 기반으로 하는 여러 창작 활동을 모두 공연의 일부로 보고 출판과 공연 기반의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일을 한다. 삼일로창고극장 운영위원, 웹진 예술경영 편집위원 등을 거쳐 현재 예술경영지원센터의 《더아프로》의 편집장을 동시에 맡고 있다.
[인스타그램] @1doc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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