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찾아온 봄, 활짝 핀 연분홍 벚꽃을 한꺼번에 우수수 떨어뜨릴 것 것처럼 봄비가 내리던 4월 3일 오후 8시.
사방 어둠이 짙어가는 시각인데도 전북대학교 예술대학 2호관의 연습실은 대낮처럼 밝기만 했다.
30여 평 공간은 3면이 거울로 둘러싸여 조명이 더욱 환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은은한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맨 발의 두 청년은 혼자만의 춤동작에 몰두해 있었다. 처음에는 느릿느릿 흐느적거리는 춤 사위로 시작해 상체를 좌우로 비틀고 허리를 구부렸다 펴기를 반복했다. 바닥을 기고 구르는가 하면 허공으로 솟구치기도 하면서 절망적으로 고개를 젖고 손을 힘없이 떨어뜨리기도 했다. 상대방의 존재를 모르는 듯 펼치는 춤 동작은 불안하고 무기력한 모습이었다.
어느 순간 만난 둘은 손짓, 발짓을 함께 나누기 시작했다. 포근하게 상대방을 포옹하고 감싸는가 하면 서로의 어깨를 의지한 채 힘차게 전진했다. 한쪽이 물구나무를 서면 다른 한쪽은 그를 받쳐주는 기둥이 됐다. 때로는 격렬하게 몸이 부딪히기도 했다. 혼자서는 불가능했던 몸짓을 둘이라서 만들어내고 동작은 파워플해졌다.

첫 안무작인 '친구'를 4월28일 우진문화공간 무대에 올리는 강동혁(아래)과 이기영. Ⓒ강동혁 제공
젊은 무용가 강동혁(27)이 연출한 ‘친구’의 한 장면이다. 지난해 8월 전북대 무용학과를 졸업한 그의 첫 안무작이다. ‘친구’에는 실제 10년 이상된 오랜 친구 이기영(27)이 게스트로 출연한다. 예술고등학교를 거쳐 전북대 무용학과를 함께 다녔다.
강동혁은 “함께 의지하면서 받쳐주고, 기대고, 때로는 자리를 넘겨 주기도 하면서 세상의 험한 파고를 헤쳐나가는 인생의 동반자, 친구를 테마로 안무 스토리를 짰다. 우리는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의지하는 존재다. 외롭고 힘들 땐 옆에 다가와 서 있어 주는 것 만으로도 친구는 서로 힘을 얻게 된다”고 말했다.
강동혁의 ‘친구’는 4월 28일 오후 4시 전주시 덕진구 진북동 우진문화공간의 예술극장 무대에 오른다. 이 무대는 지역문화예술인들의 창작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고 있는 우진문화공간(이사장 김보라)이 주최하는 행사다. 우진문화공간은 1990년 초반부터 ‘우진 춤판’이라는 타이틀로 창작무용 공연사업을 해왔다. 전북 지역의 한국무용, 현대무용, 발레, 컨템포퍼리댄스 분야서 활동하는 젊은 무용인들이 꿈을 펼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무대다. 2004년부터는 ‘우리 춤 작가전’으로 문패를 바꿔 달았다.
올해 ‘우리 춤 작가전’은 30세 이하 신예 안무가를 대상으로 한 ‘신인 춤판’, 45세 이하의 전문 무용수가 등판하는 ‘젊은 춤판’으로 나눠 진행한다. 신인 춤판은 4월 28일 오후 4시, 젊은 춤판은 5월 25일 오후 5시 열린다.
신인 춤판에는 강동혁, 김혜연, 차재은이 출연한다. 김혜연은 인간과 자연의 공생 메시지를 담은 ‘피플 오브 심바이오시스’를, 차재은은 인간 호기심을 탐구하는 작품 ‘환영의 게임’을 공연한다.
5월의 ‘젊은 춤판’에는 박수로, 이동욱, 정승준이 경연을 펼친다. 박수로는 획일화된 일상 속에 잃어버린 나를 찾아가는 ‘INK’를, 이동욱은 현대인의 공허한 일상을 소재로 한 ‘머피스 데이’를, 정승준은 우리의 내적 갈등과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을 다룬 ‘카타르시스’를 공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