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穩全

닫기
통합검색
SITEMAP전체메뉴

창작 현장

선배라고 불러도 돼요?
내용 SNS 공유 +


마침내 만났다. 오랜만에 보았다. ‘선배’라고 부르고 싶은 사람. 같은 학교를 나왔다거나 하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선배란 모름지기 길라잡이가 되며 모범이 되는 사람에게 기꺼이 전하는 감사를 담는 호칭이다. 2022년 문화기획의 경향성을 묻고자 만난 사단법인 피스트레인 사무국장 설동준 문화기획자와의 대화는 2022년을 통과하고 있는 문화의 결뿐만 아니라, 문화예술계를 기반으로 살아가는 구성원 모두에게 전하는 단단한 조언이었다. ‘문화란 무엇인가요?’라 묻지 않았으므로 가능했던 문화적인 대화였다.

 




Ⓒ송광찬 제공 


문화기획자가 되어가는 다양한 정체성


허영균(본지 편집장, 이하 허영균) : 안녕하세요. 올 겨울 《온전》은 ‘문화’라는 모호하고도 거대한 총칭을 가까이서 들여다보는 노력 중입니다. 뭉뚱그려 이야기 되는 ‘문화예술’이란 개념에 이모저모 새로운 질문을 던져보는 거죠. 문화기획자라고 스스로 정체성을 밝히고 계시는 설동준 피스트레인 사무국장님과도 그런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 우리가 보고 듣고 읽는 모든 것이 ‘문화콘텐츠’란 이름으로 쉽게 불리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문화라 불리는 것들이 많아질수록 문화가 무엇인지 모르겠단 생각도 들거든요. 설동준님은 스스로 문화기획자라 소개하시는 편인가요? 《온전》 독자들을 위해 자신의 정체를 밝혀주세요.


설동준(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 사무국장, 이하 설동준) : 문화기획자 설동준이라고 이야기를 하긴 하는데요. 사실 정체성에 있어서는 좀 모호하기는 해요. 그러니까 저는 개인이 하고 있는 일의 성격과 가장 적합한 쪽으로 정책 연구자, 교육자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드문 케이스인데 원자핵공학이라는 낯선 전공을 했어요. 대학교 때 만났던 친구들이 대부분 다 동아리 활동을 했는데 그 동아리 친구들이 다 직업 예술가로 살고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엘리트적인 어떤 삶을 살았다고 생각해요. 동아리에서 만났던 예술 전공자들의 절반 이상이 직업 예술가로 살고 있거든요. 그 정도는 사실 예술대학 일반적인 케이스의 퍼센트로도 드물 정도인데요. 친구들이 다 예술 분야 엘리트들이었던 거죠. 그 친구들이랑 가까이 지내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예술단체 주변에서 지내게 됐었어요. 30살에 직장에 취직하는 것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기 위한 관한 고민을 하게 됐는데, 그때 동아리 동기 중 해금 연주자인 친구가 본인이 속한 팀에서 기획자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어요. 그 팀이 ‘정가악회’였습니다.


보통 기획자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일종의 크리에이티브 프로듀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고 싶어 해요. 저는 정가악회의 기획자였지만, 제게 부여된 일은 조직 운영이었어요. 전략 경영 같은 형태의 포지션을 맡아 달라고 했거든요. 주로 조직의 체계를 만드는 일이었죠. 제가 정가악회에서 일하게 되면서 예술가들이 매일매일 출근하는 상근 구조로 매달 일정 급여를 주는 형태로 시스템이 만들어졌죠. 출퇴근에 대한 룰을 정하고 그 다음에 급여의 테이블 정하고 생활 급여라는 건 어떤 식으로 만들어야 되는지 정하고요. 그렇게 예술단체에 맞는 조직 관리 체계를 만들어갔어요. 개인 사업자였던 정가학회를 법인으로 전환시키고 법인에서 다시 사회적 기업으로 인증을 받고, 상근 인력의 고용 규모가 커지면서 정가악회 1년 사업 몇 배에 해당하는 입찰사업도 했었고요. 저를 문화기획자라고 하지만, 정가악회의 운영실장이었죠. 그게 저한테 커리어적으로는 메리트가 돼서 한동안 예술단체 경영 이런 거 관련해서 자문을 하기도 하고 컨설팅을 하기도 하고, 그런 일들을 쭉 했었어요.


6년 후 정가악회를 나와서, 1년 정도 푹 쉬면서 뭘 할까 고민하던 차에 홍대 쪽에 있던 후배가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이라는 축제를 해야겠는데, 예산이 너무 크다, 선배가 와서 맡아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런데 그 일이라는 게 예술단체 안에서 누구도 하기 싫어하는 일이거든요. 속칭 영수증 관리하는 일이죠. 뭔가 재미가 좀 없죠. 사실 재미가 없고 미학적 어떤 경험도 없는 거고요. 그런데 저는 20대 후반에 전략 컨설턴트가 되고 싶었어요. 맥킨지라든지 보스턴 컨설팅 이런 데서 전략 컨설턴트 일을 해볼까 고민하고 있었기 때문에, 조직 내에서 룰을 적용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같은 것들을 하나의 사회실험이라고 생각하면서 일종의 사회학자나 인류학자와 같은 마인드로 이 일을 시작하기로 했어요. 그렇게 5년째 피스트레인 페스티벌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허영균 : 단체를 체계적으로 조직, 운영하고, 그에 맞는 행정체계를 마련하는 건 많은 예술단체의 숙원과도 같은데요. 실제로 이상적으로 해낸 단체는 아직 많이 보지 못한 것 같아요.


설동준 : 업계 유효한 데이터가 없으니까 판단할 수 없단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경영을 체계화하기 위한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사례도 찾아보고, 경영 공부도 하고요.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정첵 연구 파트에 참여할 일이 많아졌어요. 제가 분석적인 형태의 사고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체질에 잘 맞았고요. 2018년부터는 매해 평균 두 개, 세 개 정도의 예술 정책 연구를 계속하는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정책 연구자에 가까운 포지션이 되어 있는 듯합니다.



문화예술계 노동의 분절성과 이 세계의 질서


허영균 : 선생님 인스타그램을 봤는데 ‘독립기획자’라고 표시하셨더라고요. 스스로 생각하기에 독립기획자의 정체성에 가까우신 걸까요?


설동준 : 아무 말이나 써 둔 거 같아요. 기획자보다 연구자, 연구자보다 교육자에 더 가까운 것 같은데요. 독립기획자라고 했을 땐 무엇으로부터 독립했는지가 중요할 텐데, 저는 좀 모호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문화기획자라는 말도 일반적으로 쓰기 때문에 그냥 관성적으로 사용하는 것 같고요. 아직 방향을 못 정했어요. 학자가 될 것인가, 기획자가 될 것인가.



Ⓒ송광찬 제공 


허영균 : 어느 쪽에 더 마음에 기우세요?


설동준 : 후자인 것 같기는 해요. 그런데 예술 분야 안에서 느끼는 한 가지는 기획자로서 사는 일은 밀도가 조금 떨어지는 삶인 것 같아요. 이 씬이 놓여있는 환경 자체가 그런데요. 기초과학을 연구하듯이 연구에 깊이를 쌓아나가는 것이 어렵죠. 연결성 없는 프로젝트를 각기 대응하는 방식으로 일을 진행하니, 정체성이 축적되지 못한다는 생각을 해요. 마침 박사과정이 끝나가기도 하는데, 교육 전공이거든요. 한국의 예수분야는 분절적 근로 형태를 가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널리 보면 후기 산업사회의 특징일 수도 있고요. 지식 노동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특징일 수도 있고요. 1960-70년대에는 공부를 업으로 할 수 있었죠. 일자리를 드릴테니, 평생 책을 읽고 글을 써주십시오라는 제안이 있었죠. 지금은 그런 사람이 없죠. 요즘 시대, 서울에서 살아가는 지식 노동자들의 보편적인 특징이 분절이 아닐까 싶어요.


허영균 : 일의 분절을 넘어서, 한 존재가 분절되어 가는 형태잖아요. 본캐와 부캐로 나눠지고 정체성 자체가 다양해지길 원하죠. N잡러가 더 일을 잘하는 사람이 되는 건 물론이거요. 다양한 자아로, 다양한 역할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운용하는 것을 더 지향하는 사회처럼 보여요.


설동준 : 씬 안에서 살아간다면 여기 저기 불려다니는 전문가가 될 수는 있는 것 같아요. 부르는 곳에 따라 맞춰 움직여주는 사람이 되는 거죠. 압도적인 수준의 명성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그 사람의 작업 스타일에 맞춰서 일이 들어오지는 않는 구조에요. 그런 구조를 좀 넘어서려면 개인보다는 조직이 낫겠다고 판단한 면도 있어요. 순수하게 개인으로 불려 다니는 것보다 조직으로 있을 때 아이덴티티를 수비하는 것이 좀 더 유리한 거죠. 피스트레인 김미소 대표와 자주하는 얘기 중 하나인데요. 우리는 특정한 장르에 관심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는 거예요. 뭘 하고 싶지? 이야기 하다보면 둘 다 공통적으로 혁신가가 되길 원했어요. 예술 생태계 자체의 혁신이요. 이 동네가 어떻게 생긴 동네인지, 이 동네가 움직이는 질서는 뭐고, 그것을 건드렸을 때 어떤 변화가 오는지가 주된 관심사인거죠. 어떻게 해야 문화계, 문화예술계 생태계를 바꾸는 혁신가가 될 수 있을지가 저희 둘이 가지고 있는 모종의 태도였어요.


허영균 : 예술계 팀이나 극단, 단체의 정체성보다 개인의 정체성들이 더 삐죽삐죽 튀어나오는 요즘인 것 같아요. 사람들도 어떤 팀의 의자나 사명보다는 개인의 개성과 성과에 더 끌리는 것 같고요. 자아들의 사회학적 투쟁이 현장이 현재 문화계의 풍경이 아닌가 싶습니다.


설동준 : 한 편으론 참 힘든 거죠. 문화계에 있지 않은 친구들은 ‘넌 좋아하는 일 하니까 좋겠다’고 하는데, 문화예술계 노동자란 죽을 때까지 자기 증명을 해야하는 숙명이 있거든요.


허영균 : 늘 청춘이어야 하고, 현장이어야 하고, 심지어 건강해야 되고요.


설동준 : 회사는 노동을 조직화한 시스템인 거고, 조직화된 노동 안에 있으면 많은 것들을 시스템이 커버해주고 개인에게는 특정 영역의 전문 기능을 요구하죠. 반면 프리랜서로 살면 삶 자체를 조직해야 하는 모든 노동이 문화예술계의 노동 안에 포함되는 것 같아요. 소위 말하는 그림자 노동을 너무 많이 수행해야 하죠. 프로젝트 단위로라도 내가 가져갈 수 있는 노동의 댓가가 상당 정도 이상은 되어야 할 것 같아요. 기관 입장에서 보면 ‘너무 많이 가져가는 거 아니야?’ 할 정도까지 가져가지 않는다면 실제로 프리랜서 기획자에 관한 보상은 거의 없으니까요. 그 밸런스를 맞추는 것이 문화예술기획자 – 독립 기획자들이 짊어진 이슈가 아닐까 합니다.



문화기획자가 즐기는 문화


허영균 : 문화기획자 즉 생산자 입장에서 벗어나서 소비자 입장에서 선생님은 어떤 문화를 소비하고, 향유하는지 궁금합니다.


설동준 : 저는 거의 누리지 못하거든요. 농담인데요. 30대 때는 대기업 다니는 친구들 보면서 ‘얘 네는 참 미적 감각도 없고, 철학적 고민도 없고, 월급 루팡들이구나?’ 생각했거든요. 그런대 40대가 되어가고 친구들의 직급이나 주변이 안정되고 경제적 여유가 생기니까, 얘들이 그림을 사기 시작하고, 돈을 쓰면서 문화를 누리기 시작하는 거예요. 지금은 저보다 훨씬 취향이 많이 개발되어 있는 것 같아요. 취향은 경제력과 비례한다고 하잖아요. 실제로 생애 전환기 시점 그러니까 사회적 안정기에 접어들고 난 이후 문화적 취향이 개발되는 건 사회학적으로 일반적인 이야기이기도 해요. 저는 현재 학술에서 가장 것을 누려요. 요즘 관심있는 것은 몸과 관련된 철학과 몸에 대한 과학적 연구 성과들이에요. 최근 몸에 대한 과학적 연구가 폭발하듯이 쏟아져 나오고 있거든요.


허영균 : 체화 인지 이론이나 몸에 대한 인지과학적 논문, 지각이나 자각 등의 개념을 연기나 예술 분야에 적용한 학술 논문도 종종 본 것 같아요.


설동준 : 네, 일종의 최신 성과죠. 요즘은 이런 융합적 학문의 형태로 제가 관심있는 영역의 연구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을 쫓으면서 제 나름의 향유, 유희를 즐기고 있는 것 같요. 어떤 것들을 새롭게 해석하고, 그걸 설명하는 체계를 새롭게 만들어 낼 때 성취감과 만족감을 느끼는 건 다분히 연구자적 성향이긴 하죠.



문화기획자를 꿈꾸는 젊은 기획자들에게


허영균 : 강의나 특강도 많이 하실 텐데요. 현장에서 만나는 젊은 내지는 후배 세대의 문화기획자분들은 요즘 어떤 걸 하고 싶어하나요? 무엇이 가능하다고 믿고 있는지 궁금하거든요. 곁에서 느끼신 게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설동준 : 시대적인 대세를 따르고 있는 느낌이 있어요. 어느 정도 문화의 시대가 된 현대에서 공기처럼 문화예술을 호흡하며 자랐던 지금 젊은 세대가 친숙하게 느끼는 일, 분야가 문화예술분야라고 생각했어요. 10년 전과 비교했을 때 문화재단에서 일하고 싶다거나 문화기획자가 되고 싶다는 친구들이 훨씬 많거든요. 시대의 큰 변화를 반영하는 현상이라고 생각해서, 제가 만난 친구들 개개인의 특징을 규정하긴 어려워요. 커리어에 대한 조언을 해주기 어려운 시대라고 생각도 하고요. 사람이 다양해서가 아니라 성장하는 방식이 변했기 때문에요. 다만 이걸 정말 직업으로 삼고 싶어하는 친구가 있다면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프로젝트들에 연결을 해주거나, 추천하는 방식으로 개별적인 기회를 만드는 작업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제가 어릴 때는 사명을 가진 예술단체나 사회문화 조직들이 있었죠. 정가학회도 그 중 하나였고요. 연극 분야에서도 8090년대까지 잔뼈가 굵다는 내노라하는 극단들은 나름 미학적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어요. 어떤 지향점이 있고 그에 동의하는 사람들을 끌어 모아, 그 커뮤니티 안에 있다보면 비슷한 뜻을 지닌 사람들을 만나고 연결되고요. 또 지향이 센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무언가 획득해내는 힘도 있기 때문에 그 자체가 하나의 열망이자 에너지이기도 했고요. 지금은 청년 문화기획자들이 그런 방식으로 살 수 있는 시대는 아닌 것 같아요.


캐시카우가 될 수 있는 일가 자신이 문화기획적으로 해나갈 수 있는 일을 분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안에서 하고 싶은 거 하는 게 좋다는 말이 립 서비스가 아닌 시대의 패러다임이 요구하는 일인 것 같아요. 시대가 나를 부르던 때는 갔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시대로 바뀌어 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사회가 바뀌었어요. 내가 성장해왔던 경로가 더는 먹히지 않는 시대에요. 아주 소수에게만 허락된 경험이었기도 했고요.


허영균 : 굳이 경쟁이라는 표현을 한다면 동세대 안에서 경쟁하는 시기도 이제 끝난 것 같아요. 세대가 아닌 무언가를 선점하고, 파고드는 모두가 각자인 시대, 개인의 시대가 요즘의 풍경 같기도 합니다.


설동준 : 예전보다 장르 예술은 게토화 되었고 협소해졌조, 이 바깥에는 문화 산업이라고 하는 더 전방위적인 환경의 두께가 이만큼 형성이 되어 있고요. 실력이 있다면 자본과 비자본의 세계를 왔다갔다 할 수도 있겠죠. 제가 일을 시작하던 시절에는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사랑티켓으로 연극 보는 것이 로망이었어요. 당시 최고의 스펙터클은 아르코대극장에서의 공연이었거든요. 사운드, 시각, 조명 같은 것들이 그 시대가 만들어냐는 최고의 스펙터클이었단 말이죠. 하지만 지금은 넷플릭스부터 아이돌 콘서트까지 어마어마한 스펙터클을 즐길 수 있는 시대고요.


허영균 : 기초 예술부터 산업까지 스펙트럼이 정말 넓어졌고, 지금 자리 잡고 있는 기획자들이 장르예술 안에서 성장해온 방식은 이제 시대적으로 맞지 않는 상황이 되었군요. 생각해보면 예전에는 음악을 하다가 음악 분야의 기획자가 되거나, 무용을 하다가 무용 축제의 기획자가 되는 경로가 많았던 것 같아요. 요새는 출발부터 ‘기획자’인 경우가 더 많이 보여요.



문화계의 가까운 미래를 상상하기



Ⓒ송광찬 제공 


허영균 : 내년 혹은 근 미래에 문화계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말씀하신 새로운 패러다임이 가져올 변화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설동준 :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을 것 같아요. 대신 정치적으로나 여러 국면 안에서 거버넌스형 사업들이 거의 사라지고 있는 게 하나의 아쉬운 점이고요. 현실적으로는 서울을 벗어난 지역에서 문화예술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어떤 일을 할 수 있어야 하는지에 관한 고민이 중요해질 것 같아요. 지방 인구 소멸 속도가 너무 빠르잖아요. 한 때 문화예술 관광 등으로 지역 정주 인구를 늘리기 위한 시도를 했었지만, 전혀 효과가 없었죠. 결국 정주 인구가 아닌 관계 인구가 늘어나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죠. 그 경향 안에서 노마드적인 스타일을 가지고 있는 로컬 크리에이터라 불리는 문화기획자들의 역할이 클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나라의 1천 개도 넘는 축제들도 그 관점 안에서 새롭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요. 또 양극화 문제도 점점 심해지고 있고요. 코로나19 이후 사람들이 가지게 된 태도의 변화, 인관관계에 죽을똥 살똥 매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관점이 다수가 되면서 곧 홍역을 앓을 것 같아요. 외로움, 단절감이 중요한 사회적 문제로 떠오를 텐데, 이것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다뤄질 것인가. 이런 측면이 문화예술 분야의 중요한 주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허영균 : 한 해, 두 해 고민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5년, 10년 현실화되어 눈앞의 지상 과제로 떨어질 일들인 것 같아요. 극단적 고령사회, 청년이 사라진 사회도 곧 현실이 될 거고요. 선생님 오늘 참 즐거웠습니다. 문화의 지형도를 읽어주신 기분이 들었어요. 저에게도 또 인터뷰를 읽을 독자 분들도 정말 따뜻한 선배와의 대화라고 느끼실 것 같습니다.

#선배 #문화기획자 #정체성 #정가악회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 #독립기획자 #스펙터클
 섬네일 파일
인터뷰이 설동준
설동준은 학부 때 원자핵공학을 전공했지만, 동아리에서 만난 친구들이 직업 예술가가 되면서 친구 따라 강남 가듯 예술계로 들어왔다. 전통예술 단체 기획자로 시작해서 음악 페스티벌 기획자와 예술정책 및 예술교육 연구자로 살고 있다. 작은 대안학교 ‘담빛학교’를 설립하고 운영하면서 교육과 예술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는 시기를 보내고 있다.
[이메일] communii@gmail.com
 섬네일 파일
인터뷰어 허영균
허영균은 웹진 《온전》 편집장, 공연예술출판사 1도씨 디렉터이다. 문학과 공연예술학을 공부했다. 연극과 무용을 만들고 그에 대한 글을 써오다 기획의 영역으로 반경을 옮겼다. 퍼포먼스성을 기반으로 하는 여러 창작 활동을 모두 공연의 일부로 보고 출판과 공연 기반의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일을 한다. 삼일로창고극장 운영위원, 웹진 예술경영 편집위원 등을 거쳐 현재 예술경영지원센터의 《더아프로》의 편집장을 동시에 맡고 있다.
[인스타그램] @1docci
  • 최신기사순
  • 인기기사순
구독하기
전주문화재단에서 발행하는
웹진《온전》과 문화뉴스 클리핑 @파발을 정기적으로 받아 보세요!
구독 이벤트
웹진 《온전》 어떻게 보셨나요?
피드백을 남겨주시면 추첨을 통해 5천 원 상당 모바일 교환권을 드립니다.
55000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현무1길 20(경원동3가) T. 063-281-1563 F. 063-283-1201 E. jjcf_run9275@naver.com

발행처 : (재)전주문화재단 관리자 로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