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문화재단의 열두 번째 마당창극 ‘오만방자 전라감사 길들이기’ 두 번째 시즌이 시작됐다.
올해로 13년을 이어지는 마당창극은 전주 한옥마을에 야간 문화관광 콘텐츠를 제공하기 위해 시작됐으며, 판소리를 기반으로 관객과 호흡하는 마당창극으로 시민과 관광객의 사랑을 받아왔다.
특히 올해는 ‘오만방자 전라감사 길들이기’란 이름으로 지난 해에 이어 진행되고 있는데 전라감찰사, 전라감영, 전주 8경, 선자청을 소재로 활용해 문화예술에 지역색을 더한 지역 특화공연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마당창극이 관객과 함께 만들어가는 특징이 있다면 이번 작품 역시 관객과 함께 호흡하며 공연의 즐거움과 함께 전주의 특색을 오롯이 드러내며 전주를 알리는 데 선구자적 역할을 자처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지난 해 첫선을 보였던 이번 작품은 첫 무대의 미진한 점을 걷어내고 더욱 치밀한 구성과 폭넓은 관객과의 만남을 시도하는 모습을 보여 해를 거듭할수록 농익은 모습을 자아내고 있다.
Ⓒ전주한벽문화관 제공
우선 이 무대가 주목받는 이유는 전주를 소재로 한다는 점이다. 전주에 소재한 전라감영의 수장 전라감사를 비롯해 전라감사 내 존재했던 선자청이나 한벽당 등이 주요 소재로 사용된다. 특히 전라감사와 계월의 첫 만남이 이뤄지는 장소인 한벽당은 전주 8경 중 하나로 전주를 찾은 관광객이라면 반드시 들러야 할 필수코스다. 극은 이런 소재를 과감하게 노출시켜 전주의 아름다운 명소를 비롯해 과거 전주를 구성했던 다양한 장소와 소재들을 보여줌으로써 관광객들에게 자연스럽게 전주의 관광매력을 알리고 있다. 관객 역시 웃고 울다 자신도 모르게 전주의 유명 관광명소를 습득하게 되고, 공연장을 나와 이곳을 찾게끔 해준다.
마당창극 뿐 아니라 모든 무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관객과 직접 소통하는 출연진의 면면이다. 올해 역시 전주마당창극의 터줏대감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 정민영 소리꾼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해학스럽고 능청스러운 그의 연기는 관객들을 울고 웃기며 마당창극의 핵심적 부분으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수년 전부터 마당창극에 출연했던 정민영 소리꾼은 마당창극에 특화된 배우란 인식이 생길 정도로 큰 존재감을 보이고 있으며, ‘마당창극을 위해 태어났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여기에 올해 처음 합류한 박현영 소리꾼도 빼놓을 수 없다. 제49회 전주대사습놀이 판소리 명창부 장원을 차지해 명창의 반열에 오른 박현영 소리꾼은 도립국악원 창극단에 재직하면서 크고 작은 무대를 종횡무진하고 있다. 작은 체구가 믿기 어려울 정도의 호탕하고 박력감 넘치는 소리는 전주한벽문화관 야외무대를 사로잡기엔 충분하다.
계월 역에는 도립국악원 창극단 한단영과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이효인이 투입됐다. 한단영은 국악원의 장래가 촉망되는 차세대 주자로 활약을 하고 있으며 이효인 역시 수년 동안 마당창극에 참여하면서 마당창극의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소리꾼이다.
여기에 몸을 사리지 않고 열연을 다하는 조연배우들의 감초역할은 공연에서 놓칠 수 없는 부분이다. 또 관객과 함께 호흡하며 객석과 무대의 경계를 없애며 관객과 함께 만들어가는 마당창극의 가장 중요한 점도 이 공연의 백미다.
Ⓒ전주한벽문화관 제공
여기에 마당창극에 대한 자신만의 노하우를 가진 오진욱 연출이 참여하면서 깔끔함과 담백함, 지나치지 않으면서 관객의 배꼽을 흔드는 해학까지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가장 많은 변화를 보인 것은 극의 내용이다. 아무리 실력 좋은 배우가 출연한들 그것을 담아낸 즉 대본이 좋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는 게 자명한 사실이다.
지난 해 첫선을 보였을 때는 기대 반 우려 반, 절반의 성공에 그쳤던 것이 사실이다.
전라감사를 소재로 했지만 극이 흘러갈수록 춘향전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또 극의 흐름이 다소 평면적으로 흘러 상설공연임을 감안해도 관객들에게 재미를 넘어 감동을 주기엔 다소 역부족이란 평도 받았다. 그토록 악랄했던 전라감사가 갑작스레 개과천선하는 설명이 부족했고, 전주를 알리는 과정 역시 다소 어설프게 다가오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는 지난 해 다소 아쉬웠던 부분을 모두 걷어내고 사실상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왔다. 우선 춘향전의 흔적이 사라졌다. 권선징악을 바탕으로 한 기본적 내용은 유사하지만 극이 전개될수록 전라감사만 더욱 강하게 다가올 뿐, 변사또와 춘향이의 흔적을 결코 찾아볼 수 없었다. 아마도 지난 2020년 선보였던 전작 ‘변사또 생일잔치’가 ‘전라감사 길들이기’와 오버랩 된 결과로 여겨지고 있다.
억지춘향처럼 급변하게 변하면서 관객에게 이해를 요구했던 기존 작품에 비해 올해는 다소 템포는 느리지만 성실하게 극의 변화를 유도하고 관객들의 이해도를 높이는 데 주력한 모습이다. 대본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깨닫는 대목이다.
공연장 변화도 한 몫 했다. 기존 공연장은 한옥으로 둘러쌓인 채 사방이 터진 야외였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공연장을 염두에 두고 건축된 야외공연장이다. 기존 무대는 객석과 무대가 평행선에 위치했다면 올해부터는 무대가 아래 쪽에 위치하고 객석은 높낮이가 확실하게 구분되고 있다. 관객이 공연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는 이점이 있을 뿐 아니라 배우들 역시 객석과 무대를 제집 드나들 듯 연기하기엔 매우 적당하다.
Ⓒ전주한벽문화관 제공
올해 공연이 성공했다고 끝은 아니다. 애써 만든 작품에 더욱 긴 생명력을 넣어줘야 할 의무도 있다. 재단 관계자는 올해 초 열린 제작발표회를 통해 ‘전주를 대표하는 브랜드공연’으로 만들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이제야 브랜드공연으로 나아가기 위한 첫 걸음을 뗀 셈이다. 세계 유명 작품들이 수많은 수정과 보완작업을 통해 완성도를 조금씩 올렸다는 점을 감안하면 ‘오만방자 전라감사 길들이기’도 공연의 성공이란 오만방자(?)함을 잊어버린 채 극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노력에 손을 걷어야 한다.
전주문화재단 역시 이 작품이 전주를 대표하는 브랜드 공연이 되기 위한 필수적 요소, 즉 공연의 홍보나 관련 예산 등을 충분하게 확보하고 공연이 지속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장기적 계획에 임할 때다. 그렇지 않으면 작품의 생명력을 짧아질 뿐 아니라 어느 순간 우리 기억 속에서 지워져 버리는 날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매년 이즈음이면 한옥마을 전주한벽문화관에서 ‘오만방자 전라감사 길들이기’라는 목소리가 아주 멀리, 아주 크게 울려 퍼지길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