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맨해튼의 로어 이스트 사이드는 세계에서 가장 정원이 밀집해있는 지역으로, 지속가능한 생활공동체가 형성되어있다. 이 공동체의 중심에는 박물관 모러스(MoRUS: Museum of Reclaimed Urban Space, 재점거한 도시 공간 박물관)가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박물관과는 조금 다른 생김새의, 그래피티로 뒤덮인 조그만 방과 지하공간이 전부인 모러스는 100% 자원봉사자들이 운영하고 있다.
모러스 앞에서 진행되고 있는 공동체 행사 ⒸMoRUS 제공
80에서 90년대 맨해튼은 젠트리피케이션이 한참 일어나고 있었다. 홈리스가 폭증하는 가운데 로어 이스트 사이드에는 70년대 미국의 경제 공황 중에 세금을 내지 않아 도시에 압류된 건물들이 텅 빈 채로 놓여있었다. 이 빈 공간을 점유하여 스쾃(Squat: 무단거주, 또는 무단 거주를 하고 있는 건물)을 하기 시작한 사람들은 이 공간을 주거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주변 땅에 정원을 가꾸어 채소와 약초를 재배하기도 하고 빗물을 받아 정화하는 수도 시스템을 만들기도 했다. 이와 같은 노력으로 로어 이스트 사이드에는 스콰터(Squatter: 스쾃을 하는 사람들)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스쾃은 단순히 노숙을 하는 일이 아니라, 급진적인 주거권 운동이기도 하다. 불법 이민자여서든, 가난해서든, 토지와 건물을 소유할 수 없는 자들이 도시의 주거시스템에 항의하는 일이다. 스콰터들은 스스로 빈 건물을 재정비하고, 주거 인프라를 구축하고,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등 정부와 기업이 아닌 지역공동체 기반의 지속 가능한 삶을 추구했다. 이것의 연장선에서 로어 이스트 사이드의 스콰터들을 중심으로 자전거 타기 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2004년 유니언 스퀘어에서 열린 집단 자전거 타기 운동 ⒸPeter Meitzler, MoRUS
당시 뉴욕에는 자전거 도로가 없었으며, 자전거를 타는 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있었다. 뉴요커들은 가난한 사람을 밀어내는, 그중에서도 자동차를 가지지 않은 사람들을 밀어내는 젠트리피케이션과 자동차 중심 도시계획에 항의하기 위해 대규모 집단 자전거 타기 운동을 벌였다. 안전한 자전거 타기가 가능한 도시 계획을 요구하기 위해 때로는 몇백 명이 단체로 자전거를 타기도 했다. 1995년부터 2005년까지 뉴욕시는 집단 자전거 타기를 하는 사람들을 체포하는 등 이 운동에 압력을 가했지만, 오랜 운동 끝에 뉴욕시는 맨해튼 전체에 자전거 도로를 구축하고 지속 가능한 도시 디자인을 추진하게 된다. 이 운동은 센트럴 파크와 타임스퀘어 내부에 자동차 통행이 금지되고 인도와 자전거 도로로만 통행이 가능하도록 바뀐 계기가 되기도 했다.
스쾃과 자전거 타기가 어떻게 연관되느냐에 대한 내 질문에 전 로어 이스트 사이드 스콰터이자 모러스 자원봉사자 빌 와인버그는 이렇게 답했다. “자전거 타기는 우리한테 공동체 중심 생활 방식의 일종이었어. 스쾃이 건물주, 정부, 기업이 아닌 지역공동체에 기반한 주거방식이듯이, 자전거 타기는 자동차 회사나 보험에 의존하지 않고 도시를 돌아다닐 수 있는 방법이야. 우리는 항상 여러 명이 함께 모여 자전거를 함께 타곤 하고, 자전거를 수리하는 방법을 서로 가르쳐주기도 해. 자전거 타기는 우리가 공동체로서 항상 해오던 일이었어.” 이처럼 공동체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겼던 스콰터들이 자전거를 타고 정원을 가꾸는 등 지속 가능성을 추구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동시에 90년대 중반 뉴욕시는 부동산 임대업자들과 도시 개발 투자자들과 협업하여 스콰터들을 밀어내고 로어 이스트 사이드를 재개발하기 시작했다. 스콰터들이 쫓겨난 후에 빈 건물과 정원들은 굴착기가 밀어버렸고 그 자리에는 저소득 임대 주택 단지가 들어섰다. 끈질긴 대치 끝에 자신의 주거공간을 지켜낸 스콰터들에게는 이런 제안이 들어왔는데, 바로 1 달러에 스콰터들이 원하는 사람 또는 단체에게 건물을 팔겠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그 구매자가 스콰터들의 명의로 대출을 받아 건물을 허가에 맞도록 재정비할 수 있으며, 스콰터들은 합법적으로 그 건물에서 살 수 있게 된다.
1995년 뉴욕 이스트 13번가, 스콰터들과 대치 중인 탱크 ⒸJohn Penly(NYU Tamiment Library Archives 제공)
11개의 남은 스쾃들 중 씨스쾃(C-Squat 또는 See Squat: 펑크 문화의 중심으로 알려진 스쾃)의 스콰터들은 누구에게 스쾃을 팔아야 할지에 대한 긴 고민을 하게 된다. 맥도날드 같은 대형 가맹점이 들어오면 스콰터들의 금전적 부담이 적어지겠지만, 스쾃 운동의 의미와 공동체가 퇴색되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협의 끝에 스콰터들은 전 스콰터이자 환경운동가인 빌 디 파올라(Bill Di Paola)에게 건물을 팔 것을 제안하고, 빌과 함께 씨스쾃의 1층에 스쾃 공동체의 역사를 다루는 모러스를 만들기 시작한다.
처음 모러스를 만들기 시작할 때 로어 이스트 사이드 공동체는 이렇다 할 기록된 역사가 없었다. 디렉터와 자원봉사자들은 로어 이스트 사이드에 남아있는 스콰터들의 구술사를 채집하고 이전에 정원 가꾸기, 환경 운동 등에 참여했던 사람들에게 연락해 사진과 시위 전단지를 기증받는 등의 방식으로 아카이브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2012년에 설립된 모러스는 로어 이스트 사이드의 주민들이 도시 공간을 시민들의 것으로 되찾는 과정을 추적하며 도시 공간은 누구의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다른 한편, 모러스는 존재 자체로 박물관 공간이 누구의 것인지에 대한 질문 또한 던진다. 박물관학 전공자이자 세계에서 가장 큰 자연사박물관에서 일하고 있던 내가 작은 공동체 박물관 모러스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하며 가장 놀라웠던 것은 모러스가 ‘진짜’ 박물관이 되는 일에 관심 없다는 것이었다. 미국 박물관 연합의 회원이 되는 일이나 인력이 부족해서 스캔조차 하지 못한 필름 네거티브들을 더 큰 기관에 맡기는 일은 디렉터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되려 그는 이 기관들에 대한 모종의 불신을 가지고 있는 듯 했다. 그는 대안적인 역사 쓰기, 또는 그의 말을 빌리자면, 부자들의 역사가 아닌 다른 역사(A history that is not written by the rich)를 쓰고 싶어 했다.
모러스의 아카이브 룸에서 디지털화를 하고 있는 자원봉사자 Ⓒ곽수아 제공
박물관에는 희귀한 것, 아름다운 것, 욕망되는 것들이 전시되고 역사의 승자가 기록한 역사가 전시되곤 한다. 또 반대로 박물관은 스펙터클이 낳은 분류와 차별, 시각의 폭력과 관음의 대상이 되는 것이 들어가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러한 모순 속에서 우리는 역사를 기록하고 전시하는 기관으로서 박물관이 가지는 권위를 찾을 수 있으며, 그렇다면 박물관은 누구를 위한 공간인지에 대한 질문을 할 수밖에 없다.
공동체 구성원들이 직접 공동체의 역사를 채집하여 기록하고, 공동체의 힘으로 운영하는 모러스는 다름 아닌 공동체를 위한 공간이다. 물론 처음 모러스를 만들 때부터 지금까지 공동체 일원 모두가 모러스의 내러티브에 공감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모러스는 무엇이 공동체의 역사인지에 대한 질문과 반박이 끊이지 않는,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수많은 박물관이 수 만 년의 역사를 펼쳐 보이고 있는 맨해튼의 구석에서 작은 박물관 모러스는 도시 공간, 그중에서도 박물관은 공동체의 것이어야 함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