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의 “착한 자판기”
튀르키예(Türkiye)에는 특별한 자판기가 있다. 바로 ‘푸게돈(Pugedon)’이라는 업체가 개발한 재활용품 수거 자판기다. 이 자판기가 생기기 전, 튀르키예는 사실 자원 재활용에 대한 인식이나 고민이 부족한 나라였다고 한다. 그래서 몇몇 환경운동가들이 아이디어를 고민하던 중, 마침 유기된 개나 고양이 또한 많았던 튀르키예의 상황에 착안하여 이 자판기가 등장했다.
유기동물을 돕고 있는 튀르키예의 ‘푸게돈’ 자판기 Ⓒ푸게돈(Pugedon) 공식 홈페이지
푸게돈 자판기는 페트병, 유리병, 캔 등 재활용이 가능한 쓰레기를 넣으면 그 양에 따라서 사료가 하단에 놓인 사료통에 배출된다. 또한 먹다 남은 음료수나 물을 부으면 깨끗한 물이 역시 물그릇에 배출된다. 이를 통해 튀르키예는 효과적인 분리수거와 더불어 유기 동물의 생명을 구한다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었고, 푸게돈 자판기의 사례는 두 가지의 가치를 동시에 실천하는 “착한 자판기”의 가능성을 담아, 전 세계에 널리 알려졌다.
그런데 지난 2023년 2월 6일. 튀르키예 가지안테프 지역에서 리히터 규모 7.7 규모의 강진이 발생했고, 그 결과 19만 명에 이르는 사상자와 2,300만 명에 이르는 이재민이 생겨났다.
고래 먹이 주기 자판기 | 탄소중립 채식 자판기 Ⓒ문화통신사 협동조합 제공
전주 한옥마을에 <신묘한 자판기>가 등장하다
지난 2023년 2월 18일, 전주 한옥마을에 있는 경기전 앞에 종이상자로 만들어진 자판기들이 설치되기 시작했다. 전선도 연결되지 않고, 모양도 제각각인 자판기들. 자판기를 꾸민 디자인마저 온통 손으로 칠하고 붙인 물감과 색종이들이니 분명 수많은 사람의 손길이 담겼을 자판기임이 틀림없어 보였다.
이 자판기는 바로 <세상을 바꾸는 ‘신묘한 자판기’)>(이하 신묘한 자판기)다. 지역의 청년 예술인을 중심으로 복지, 환경, 교육 등의 민•관 활동가와 청소년들이 함께 제작한 총 15개의 자판기가 주말 전주 한옥마을에 놓인 것. 자판기에서 판매하는 상품 또한 예사롭지 않다. 해양쓰레기의 심각성을 알리는 ‘고래 먹이 주기 자판기’, 채식을 권장하는 ‘탄소중립 채식 자판기’, 지진의 위험성을 알리는 ‘흔들흔들 자판기’, 고민을 상담해주는 ‘MBTI 자판기’, 사진작가가 깜짝 등장하는 ‘인생 한 방 자판기’ 등이 다양하게 운영되었다.
이 모든 자판기는 버려진 폐종이박스로 만들어졌다. 즉, 튀르키예의 ‘푸게돈 자판기’처럼 버려진 자원을 재활용한다는 가치와 재미와 의미를 사용자에게 전달하려는 가치가 결합하여 만들어진 자판기라는 것이다. 참가자들은 이<신묘한 자판기>에 일정 금액을 투입하고, 준비된 시나리오에 따라 즐거운 체험을 진행했다. 하지만 알고 보면 그 즐거운 체험에 사용된 돈은 사실 지출이 아닌 ‘기부’다. 실제 이날 시민들의 참여로 조성된 자판기 수익금 전액은 세이브더칠드런을 통해 튀르키예 지진으로 고통받고 있는 아이들에게 전달되었다. 즉, 재미와 의미를 추구하는 행위 그 자체가 기부라는 가치로 이어지는 이색적인 경험을 제공한 것이 바로 <신묘한 자판기>였다.
‘한옥마을 해설자판기’ 운영 | ‘탄소중립 채식 자판기’ 운영 Ⓒ문화통신사 협동조합 제공
문화와 예술이라는 ‘체온’을 지닌 자판기
자판기란 본래 사람과 기계의 대면(對面)이다. 자판기의 정체성이란 사람이 팔아야 할 상품(商品)을 기계가 대신하여 파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니 그사이엔 아무런 대화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구매자는 기계에 돈을 투입하고, 자신이 필요한 상품의 버튼만 꾹 누르면 된다. 설령 인스턴트커피 한 잔을 구매하려는 사람에게 기계는 “오늘 야근하시느라 무척 피곤하신가 봐요. 힘내세요.”라는 위로 한마디조차 건네지 않는다. 아니, 그럴 필요가 없다. 가치가 전제되지 않는 거래(去來)에서 개개인이 가진 재미와 의미는 굳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묘한 자판기>는 다르다. 자판기라는 형식을 빌려왔을 뿐, 종이상자를 가운데 두고 대면하는 것은 사실 사람과 사람이다. 이번 행사를 위해 제작된 15개의 자판기는 제작자가 추구하는 저마다의 가치를 담고 있다. 거기에 문화와 예술을 더하여 자판기를 꾸미고, 운영 시나리오를 완성하였으며, 재미와 의미를 웃음이라는 모습으로 창출하였다.
결국 거리로 나와 자판기를 운영한 청년 예술가들의 목적은 거래가 아닌 공감(共感)이고, 자판기에서 배출되는 것은 상품이 아닌 확산(擴散)인 거다. 그리하여 끝내<신묘한 자판기>는 정확히 36.5도의 체온을 지닌 자판기가 될 수 있었다.
지진 피해자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남기는 시민 | 즐기기만 해도 차곡차곡 쌓이는 기부의 가치
Ⓒ문화통신사 협동조합 제공
거리로 나와 가치와 대면(對面)해야 할 때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우리는 많은 것이 바뀌었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 정치, 경제, 문화 등 사회 모든 분야에서 팬데믹 이전에 신봉(信奉)해 왔던 경험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즉, “경험은 소멸”하였고, “기준은 상실”되었다.
그뿐이랴. 그사이에 새로운 사회가 도래하고 있다. 비대면의 낯섦을 익숙함과 당연함으로 만들어 버린 ‘Zoom’ 정도는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 지금도 ‘ChatGPT’는 어디에선가 감동적인 시와 소설을 생산하고 있을 것이고, ‘Midjourney’와 ‘DALLE-2’는 시대의 역작을 출력하고 있을 것이며, ‘Soundraw’가 만든 비트는 누군가를 흥분시키고 있을 것이다. 이제 문화와 예술은 전문가의 영역에서 일상의 영역으로 넘어온 것을 다시 뛰어넘어 인공지능(AI)과의 경쟁마저 준비해야 하는 시점을 맞이한 것이다.
이제 공연장과 전시장에서 관객을 기다리는 시대는 사실상 종말을 고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문화와 예술은 유효하다. 문화와 예술은 재미와 의미를 통해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확산시키는 가장 훌륭한 대면(對面)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가치를 통해 대면하는 시대를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경험의 소멸”과 “기준의 상실”을 달리 말하면 새로운 경험을 생성(生成)하고, 기준을 정립(定立)할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문화와 예술을 거리로 가지고 나와보자. 가장 첨단을 달리는 이 시대에 전기도, 세련된 디자인도 필요하지 않았던 <신묘한 자판기>처럼. 재미와 의미의 추구가 자연스럽게 기부라는 가치로 이어지던, 그 이색적인 경험 속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