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는 전주에서 벌어지는 예술 작업, 문화예술 현상, 예술가와 문화예술공간을 소개하고, 리뷰하는 코너입니다.
전주 문화예술의 면면을 관찰하고 기록합니다.
서울에서 주로 작지만 아늑한 공간을 찾아 연극을 만들고 있다. 전주에는 분위기와 음식을 즐기러 들른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예술 공간을 살펴보기 위해 다녀왔다. 공연예술을 지속하다 보면 지역문화재단과 긴밀해지기 마련이다. 전주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공간에 흥미가 있었고, 또 지역 예술가들을 위한 기반이 어떤 식으로 존재하는지도 궁금했다. 짧은 취재로 많은 맥락을 읽어낼 수는 없으나 최대한 다양한 감각을 받아들이려고 했다.
피순댓국을 한 그릇 먹고 향교길로 향했다. 공예품과 체험관, 오래된 슈퍼마켓을 지나니 《전주한벽문화관》이 나타났다. 바로 앞까지 ‘저렴한 방, 다락방 있음’이라는 숙박 시설 안내가 붙어있었다. 전주한벽문화관 공연장에서는 마당놀이 <용을 쫓는 사냥꾼>이 10월 15일까지 진행되고 있었다. 야외공연장에서는 클래식 공연이, 문화관에서는 전주독서대전. 다양한 장르의 문화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좋은 의미로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는 점이 ‘월드비빔위크’ 시기와 잘 어울린다고 느꼈다.
전주한벽문화관 Ⓒ김은한 제공
다양한 전통문화를 체험하며 세련되게 현대화한 전통도 즐길 수 있고, 고즈넉한 한옥에서의 숙박과 더불어 흥미로운 공연까지 접할 수 있다는 게 첫인상이었다. 전주한벽문화관 공연장 바로 옆에 상설공연단을 위한 숙소가 마련되어있는 것도 창작자로서는 설레는 점이었다. 리허설을 마친 공연팀이 잠시 쉬어가면서 빠르고 쾌적하게 자유 시간을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번에 전주의 문화 예술 공간을 살펴보면서 감탄했던 건 접근성이 뛰어나다는 점이었다. 또 도시 여러 군데에서 공연 안내를 보았는데 주로 마당극과 소리꾼의 공연이 이루어지고 있는 듯했다. 한옥마을이라는 특성, 또 현재 주목받고 있는 뜨거운 전통 예술 장르를 적극적으로 발전, 장려하려는 시도로도 느껴져서 인상적이었다. 외국에 사는 친구의 동거인이 창고를 빌려 ‘인디 오페라’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재미있게 느낀 적이 있는데, 전주에서도 ‘인디 소리꾼’ 같은 창작자가 등장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서울에서 최근에 1인극이나 체험형 실험 공연들이 만들어지듯 전주에서도 더욱 다양한 마당극 형태가 분화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소극장 포스터 | 동문창창 Ⓒ김은한 제공
오목대를 향해 걸으며 전주한옥마을의 모습을 즐겼다. 오늘의 목표는 좀 더 대안적인 예술 활동을 꾀할 수 있는 공간들이다. 레트로 테마 박물관 《전주난장》을 지나 동문길로 향했다. 《동문창창》에서 진행하는 가족 마당극 포스터를 보았는데 인상적이었다. 공연 포스터를 볼 때마다 새로운 공간을 하나씩 더 알게 되는 셈이고, 그래서 바로 방문해보았는데 모든 공간이 우선 접근성이 뛰어났다. 소극장 골목처럼 모여있는 듯하면서도 상가와 관광지, 예술 공간이 자연스럽게 섞여 있어서 인상적이었다. 예술촌으로 조성되었다는 느낌보다는 시민의 생활권에 자연스럽게 다양한 문화 경험이 들어가 있는 감각이었다. ‘부러 가야 만날 수 있는 곳’이 돼버리면 예술은 다소 멀어진다. 내가 사는 지역에 있던 소극장과 서커스 텐트는 오래전에 무관심과 개발로 사라져 아쉬웠는데, 전주는 더욱 이상적인 구조로 느껴졌다. 아쉽게도 작년부터 몰려온 코로나로 인해 많은 공간이 활동을 중지한 듯 보였지만, 또 새로 생겨나고 있는 행사도 보였다. 동문길에서는 <동문명탐정 사라진 작가 in 전주>라는 오프라인 방탈출 게임이 진행되고 있었다. 동문길에서 사용할 수 있는 화폐를 혜택으로 제공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도쿄 시모키타자와에 방문했을 때 도시 전역을 무대로 한 추리 게임을 진행하는 걸 보고 재미있다고 느꼈는데 전주에서도 비슷한 시도를 하고 있어서 흥미로웠다.
동문길60 Ⓒ김은한 제공
예술창작공간 《동문길60》에서는 <도시갤러리, 전주>가 진행되고 있었다. 지역 작가를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것이 좋았고 작품 구매 문의를 전주문화재단 문예진흥팀에서 솔선해서 받는다는 점도 창작자의 창작 여건을 개선하려는 의지가 느껴져서 좋았다. 또 도슨트와 투어를 하는 <동문 골목길 미술산책>이라는 행사도 10월에 이루어지고 있었다. 전주의 예술지원사업에 관해서는 배움이 부족하지만 이미 유능하고 흥미로운 기획자들이 많이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들었다. 시기적으로 이른 이야기일 수 있으나 운영, 진행을 잘 정비해서 안전하고 매끄럽게 거리예술축제도 기획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청년음악극장 Ⓒ김은한 제공
현재는 연습실 및 비대면 공개로 진행하는 듯하지만 《청년음악극장》 같은 재단이 주체적으로 운영하는 음악 소공연장이 있는 것도 좋았다. 《창작소극장》과 《공연예술소극장 용》 등의 공연예술 공간도 위치가 가까워 살펴보았다. 다만 조금 지난 공연 포스터와 현수막이 붙어있어 아쉬웠다. 전국적으로 창작자들의 활동이 어려운 시기이므로 신작, 혹은 레퍼토리 공연은 큰 공연장에서 제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역의 공연예술가들은 어떤 식으로 활동을 모색하고 관객과 만나려고 노력하며 지속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창작극회 Ⓒ김은한 제공
창작소극장을 운영하는 창작극회는 대단히 저렴한 가격으로 관극회원을 모집하고 있었다. 최근에는 온라인 살롱이나 유튜브 유료 구독제 서비스 등을 진행하는 창작자도 많이 있어 이제는 지역을 넘어선 활로를 개척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휴식을 청하며 전주 웨딩거리(웨리단길)에서 유명한 카페《평화와 평화》에 들러보았다. 입구에서부터 환경보호 실천을 위한 모임이나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팝업 스토어 행사 등을 홍보하고 있어 호감이 갔다. SNS로 알려진 명소처럼 느껴졌지만 동시에 지역문화인을 위한 허브로도 작용하기를 바라게 되는 곳이었다. 강한 콘셉트를 가진 지역 명소가 있다는 건 기쁜 일이고 이를 통해 지역에서 벌어지는 흥미롭고 환경친화적인 행사들이 방문객들과 많이 연결되었으면 좋겠다고 느꼈다.
전주시새활용센터 다시봄 | F연대기 | 공유서점 Ⓒ김은한 제공
서노송동의 성매매 집결촌(선미촌)을 문화예술공간으로 재단장한 서노송 예술촌도 들러보았다. 부근에 《전주시새활용센터 다시봄》이 흥미로운 전시와 활동, 예비 창업자들을 위한 지원을 하는 곳이었고 선미촌 기억공간으로서 지역의 역사를 놓지 않으며 새로운 예술 활동으로 지역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행사와 공간이 여럿 있었다. 10월 5일까지 진행된 페미니즘 예술제 <F연대기>로 꾸려진 공간이 인상적이었다. 건물 하나를 독립서점으로 재단장한 《물결서사》에서는 다양한 장르에 몸담은 예술가들이 매일 공간을 지키고 있었다. 독특한 건물의 구조를 자연스럽게 지역 주민의 사랑방처럼 만들어 낸 것도 인상적이고 깊은 곳에 아늑하게 놓인 ‘공유서점’도 편안함을 주었다. 지역 문인의 책을 따로 다루고 있어 기뻤다. 지역 서점이 힘을 모아 만든 한정판 책을 사 왔다.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와중에 문화예술회관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어떤 이들이 이곳에서 공연을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예술 활동을 시작하는 장으로서는 좋은 도시라고 느꼈다. 거대한 공연장을 마을 단위로 펼쳐놓은 듯한 인상을 받았다. 서울에서 공연을 보러 가는 여정은 종종 모험과 고단한 노력이 필요하기 마련인데, 전주에서는 어떤 공간을 들르더라도 자연스럽게 여행의 일부로 편입되는 기분이었다. 다만 행사가 없어도 지역 예술가의 활동을 꾸준히 파악하고 쫓을 수 있는 창구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모일 수 있는 조건은 충분하고 이제 언제 어떻게 모일지만 남은 셈이다. 연휴를 피해 이동하다 보니 시기적으로 닫힌 공간이 많이 있었으나 근사한 문화 행사가 여럿 진행되고 있었기에 활력을 느낄 수 있었다. 다음 전주 방문을 설레며 기대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