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는 전주에서 벌어지는 예술 작업, 문화예술 현상, 예술가와 문화예술공간을 소개하고, 리뷰하는 코너입니다.
전주 문화예술의 면면을 관찰하고 기록합니다.
‘네 명의 작업자가 함께하는 창작 공동체’
소금공방의 정체성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이들의 답이다. 목공을 중심으로 한 작가들의 모임, 목재를 다루는 공방, 네 명의 작업자가 함께 쓰는 스튜디오 등으로 이들을 설명하는 다른 말들도 있지만 ‘작업자들의 창작 공동체’라고 소개했다. 전주시 덕진구 구렛들1길, 약 50평 크기의 옛 공장 건물을 이용하여 목재를 다루는 스튜디오로 사용한다. 직전의 일은 아니지만, 언젠가 소금공장이었던 건물의 역사를 따라 ‘소금’을 이름으로 정하면서, 건물 외벽에 써진 글씨 ‘소금’ 위에 진하게 페인트를 다시 칠했다. 네 명의 구성원이 5~6개월에 걸쳐 한 땀 한 땀 공간을 꾸렸고, 지금 여기에서는 나무를 이용하여 가구, 오브제, 인테리어 집기, 공예 작업이 쉴 새 없이 이뤄지고 있다.
소금공방의 입간판 Ⓒ소금공방 제공
목공연수원에서 만난 세 명의 작업자와 한 명의 파인아트 작가가 팀을 이루고는 소금공방. 팔복예술공장 레지던시에 입주 중인 박수지 작가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함께 한다. 재미있는 것은 구성원 누구도 전주 출신이 아니라는 것, 모두에게 처음인 여기 전주에서 시작하는 ‘소금공방’의 첫 순간, 첫 마음을 기록하고자 스튜디오를 찾았다.
소금공방 정면 모습 Ⓒ소금공방 제공
만남과 시작
네 분은 어떻게 만나게 되셨나요? 소금공방의 시작이 궁금합니다.
김심정(공방장) : 박수지 작가와 동반자로서 창작 듀오로 전시 활동을 했었습니다. 그전에는 단청을 보수하는 일로 문화재 수리 현장에서 15년 일을 했고요. 목공을 시작한 것은 2년이 조금 넘었습니다. 전통 문화재를 보수하는 일을 사랑하지만, 조금은 고인물인 현장이고 그만큼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무엇보다 문화재를 보수하는 일을 하면 정착한 삶을 살 수 없고, 떠돌아다녀야 한다는 점이 힘듭니다.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어서 목공을 배웠고, KCDF 사업의 지원을 받아 창업까지 하게 됐습니다. 모든 게 일사천리, 진행이 빨랐다고 할까요?
박수지(작가) : 오클랜드에서 순수미술 작가로 활동하던 중에 4년 전 전시를 위해 한국에 왔습니다. 파트너를 만나 목공과 같은 물성 있는 재료를 다루는 영역을 새롭게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다양한 장소를 리서치하다 이곳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사실 리서치라기보다는 목적지를 정하지 않은 여행에 가까웠습니다.
김원식(나무작업자) : 목공을 배우기 전에는 공무원 준비를 하며 안정적인 삶을 꿈꿨는데요. 그러다 이렇게 사는 게 행복하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을까 생각하다가 그때 목공을 떠올리게 됐어요. 여기 모인 사람들과는 전문가반에서 만나게 됐고요. 수료 후 가구 브랜드에서 일하던 중에 심정이 형이 소금공방을 제안했고, 연봉협상을 뿌리치고 전주로 내려오게 됐습니다.
김진산(디자이너) : 평범하게 수능 성적에 맞추어 대학을 진학했고, 2학년을 마치고 입대를 했습니다. 선임 중 한 명이 내천목공소를 소개해주면서 목공의 세계에 관심이 생겼고, 많은 이야길 나눴어요. 기술을 배우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부모님 반대가 있었습니다. 전역하고 나니 원치 않는 전공 공부를 위해 복학할 수는 없겠더라고요. 취미로 시작해서 전문가반까지 수료했고 나무를 소재로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혼자 하는 작업에 한계에 부딪히던 중에 소금공방 합류차 전주에 오게 됐습니다.
김심정, 박수지 두 사람의 여행은 서울을 떠나 변산반도에서 시작되었다.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군산, 익산, 완주, 전주 순으로 이동하게 되었는데 여행 중에 전라북도 전주에 머물게 되면서 빈 공장을 발견하게 됐다. 박수지 작가가 팔복예술공장 공모를 지원하면서 지역의 공간들을 둘러보게 됐는데, 기찻길 옆 허름해 보이는 공장들을 봤고 부동산을 찾아 비슷한 공간을 물었다. 당시에는 없었지만, 신기하게도 같은 날 저녁 ‘(소금)공장이 비었다’는 연락을 받게 됐다. 지금의 공간을 만난 경위다. 서울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시점과도 잘 맞았다. 직전에는 재활용 폐기물을 처리하는 공간으로 이용했었고, 그전에는 소금 창고였다. 자연스럽게 공간 이름으로 ‘소금’을 택했다. 정말 설비도 시설도 없는 공간이라 셋이 모든 공사를 직접 했다.
김심정 : 팀을 원했던 것 같아요. 즐겁게 작업하고 싶었어요.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시작을 함께한다면 좋을 것 같았어요. 널찍한 공간이 있어서 규모가 큰 작업도 하고 싶었고요. 공방에서 함께 목공을 배우면서도 ‘같이 뭔가 해볼까?’란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던 두 사람이고요.
정체와 정체성
명함을 보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공장장, 디자이너, 나무작업자라고 모두 다르게 표기되어 있습니다. 이 직함이 곧 정체성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한데요. 각자 이 안에서 어떤 역할로 작업하고 계시는지요?
김진산 : 디자이너라고 명명한 만큼, 작업을 해나가고 싶어요. 즐겁게 작업하고 이 일을 하면서 행복한 것이 목표고요. 목재라는 소재에 한계를 두지 않고 다양한 소재를 경험해보고 싶기도 해요. 쓰임이 있는 가구도 좋아하지만, 오브제 역할을 하는 가구를 추구하는 편이에요. 가구 자체로 포인트가 되고 작품이 되는 작업을 지향합니다.
김원식 : 진산과는 조금 다르게 저는 나무로 작업하는 게 제일 좋아요. 소재에 거부감은 없지만, 나무 작업이 아직은 제일 재미있습니다. 내가 정성 들여서 만든 가구가 다른 사람에게 가서 잘 쓰였으면 좋겠어요.
박수지 : 저는 제 작업의 맥락이 있는 상태의 작가지만, 함께 하는 일을 하면서 개인적 성장과 확장이 이뤄지는 걸 느껴요. 초기 단계이다 보니 각자 원하는 것, 함께 원하는 것, 부딪히는 것들을 발견하는 것도 즐겁고요. 창의적으로 놀 수 있는 곳이고 저도 여러 사람의 결안에서 움직여 보고자 합니다.
김심정 : 단청 일을 하면서의 회의감은 내가 하는 작업이 쓰임 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한다는 점이에요. 문화재니까 보수하고, 절이니까 그림을 그리는 일 이상의 의미 부여가 안 되더라고요. 내가 가진 무언가가 쓸모 있는 것이 되는 기쁨이 그리웠어요. 단청을 여전히 사랑합니다만, 목공이라는 새로운 소재를 만나게 되어 다행입니다. 단청은 집을 지은 후에 이뤄지는 작업이라 전통 건축의 비례감을 많이 느낄 수 있어요. 가구를 베이스로 시작한 사람과 나무를 이해하고 다루는 결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일관성과 맥락을 가지고 개인적인 완성도를 끌어올리고 싶어요.
|
|
소금공방의 라운지와 기계실 모습 Ⓒ소금공방 제공
박수지 : 저는 직접 작업을 하지 않았지만, 이 공방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니 하나의 그림을 그리는 것 같더라고요. 하나를 만들고, 그다음 점을 찍고, 그리고 그것을 잇는 식으로요. 하나하나 만들다 보니 반년 정도가 흘렀습니다.
김심정 : 돈은 없으니 노동력으로 메꿔야 하니까요. 공방은 크게 두 공간으로 나뉘는데요. 지금 계신 곳이 라운지예요. 외부에서 사람이 온다는 전제로 먼지가 덜 나고 상대적으로 조용한 작업을 합니다. 안쪽은 기계 설비가 되어 있어요. 작업이 한창일 때는 여기도 당연히 꽉 찹니다. 저렴하면서도 견고하고 실용적인 소재들을 주로 썼어요. ‘어떤 공간을 만들겠다’는 설계가 있기보다는 이 장소, 이 공간에 반응하면서 만들어왔다는 개념이 더 맞는 것 같아요.
일하는 방식, 협업의 약속들
‘9시 출근, 18시 퇴근, 월차 6일, 매주 월요일 주간 회의’라고 벽에 붙어 있네요.
김원식 : 아주 단순한 저희 근무조항인데요. 월차 6일인데, 지키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김심정 : 아직은 단순한 수준인데, 거의 매일 나와서 함께 있어요. 저와 수지 작가는 주로 전주에 있고, 진산과 원식은 서울에 비교적 자주 왔다 갔다 하곤 해요. 전주에선 아직 일을 전혀 못 했어요. 전주라는 도시의 경제적 인프라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모르기도 하고요. 청주, 대전 쪽의 일이 지금은 있는 편이에요. 현장 작업과 공방 작업을 같이하는 게 목표인데 그러다 보면 근무의 형태도 달라질 것 같아요.
김원식 : 처음 인스타그램을 만든 후에 클라이언트가 나타났어요. 서울 신당동에 있는 정육식당이었는데요, 그 공간을 오픈한다고 공간의 집기와 인테리어를 의뢰해주셨어요. 다음 주부터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갑니다. 거의 셋이 함께 작업하게 되는데요. 순차적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을 정해서 나눠서 하고 있어요.
김진산 : 이 전에는 보문동의 카페를 맡아 작업했었는데요. 거리가 서울이기도 해서 거절할까 고민했는데, 클라이언트 쪽에서 저희와 공간을 같이 꾸미고 싶다고 말씀해주셔서 진행했어요. 작은 카페인데, 집기 디자인도 하고 쓰임새도 만들어서 정해주고요. 셋이 한 작업 중에 제일 재미있었어요. 카페 이름은 <코우유> 한국어로 ‘공유’라고 해요.
김심정 : 서로 겹치지 않는 고유한 색을 가진 작업자들과 협업하고 싶어요. 철, 패브릭, 그래픽 영상 등 그런 분들과 함께 할 수 있는 플랫폼이 되는 게 지향점이에요.
김원식 : 협업을 하면서도 한 편 개인의 작업물 완성도를 높이고 싶어요. 어떤 가구나 오브제를 봤을 때 ‘이거 그 사람이 만든 거 아니야?’하고 딱 떠오를 수 있는 색을 갖추고 싶어요.
김진산 : 지금은 협업 안에서 수동적인 작업을 좀 더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내 색을 갖춘 후에 좀 더 능동적인 작업을 하고 싶습니다. 주도적인 작업이요.
소금공방의 간판 Ⓒ소금공방 제공
소금공방은 전통문화 분야 관련 청년창업 지원사업 ‘예비 창업’ 트랙을 통해 시작할 수 있었다. 예비 창업 과정을 거치고 이어 초기 창업 과정으로 넘어갈 생각으로 프로젝트의 첫 단추를 끼우면서, 동시에 기술보증기금 지원에 선정되면서 사업의 형식을 갖출 수 있게 됐다. 공장장 김심정은 전주의 한지를 사용하여 의자 중심의 가구를 제작하는 페이퍼 프로젝트로 알려지기 시작하여, 오는 9월 중순 한지산업지원센터의 전시에 참여하고, 연관 워크숍을 진행할 예정이다. 빛을 받을수록 반짝이는 소금처럼, 소금공방에 모인 네 명의 작업에 더 많은 빛이 닿기를, 따로 또 같이 성장해 나갈 창작 공동체의 행보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