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태어나 10년을 살고 열한 살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목포에서 살았다. 이후 대학생 때부터 서울과 수도권에 본거지를 두고 20년 이상 살다 보니 당시에는 ‘서울사람’이 다 됐다. 특히 본격적 학문의 세계로 들어갈 무렵 삶의 터가 서울이었기에, 의식하지는 못했지만 내 연구자로서의 정체성이 서울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여기서 ‘서울사람’임을 스스로 ‘의식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중심지는 ‘특수한 장소’로 의식되지 않기 때문이다. 정체성이 머무는 일차적 장소인 ‘신체’를 예로 들어보자면, 주류 미국인 신체의 피부색은 의식되지 않으며(‘백인’의 ‘백’이란 ‘흰색’이 아니라 ‘의식되지 않는 색’을 가리킨다), 남성이라는 신체의 젠더는 의식될 필요가 없다(흔한 예로 여자 교수는 ‘여교수’로 호명되지만 남자 교수는 그냥 ‘교수’다). 마찬가지로, ‘서울사람’은 ‘서울’을 의식할 필요가 없다. 대표로서의 ‘한국사람’일 뿐이다. 요컨대 서울에 거주하며 평론과 연구 활동을 하던 나에게 비평적이거나 학문적인 문제로 다가온 ‘지역’의 최소 단위는 ‘한국’ 나아가 ‘민족’이었다.
‘백인’의 ‘백’이란 ‘흰색’이 아니라 ‘의식되지 않는 색’을 가리킨다. Ⓒ위키미디어 공용
나에게 ‘지역’이 다른 의미로 다가온 것은 전남대학교에서 일하게 된 2011년부터다. 당연한 얘기지만 내 거주 공간이 광주로, 즉 수도권을 벗어난 ‘변방’으로 옮겨졌다는 점, 내 신체가 다른 장소에 위치하게 되었다는 점, 그래서 내 ‘발화의 위치(locus of enunciation)’가 바뀌었다는 점이 그 이유다. 비로소 내 삶의 공간, 내 신체가 자리한 ‘위치’가 분명하게 의식되기 시작했다. ‘지역’이라는 단어, 영어로 ‘로컬(local)’이란 단어는 신체의 ‘위치(location)’에 대한 자각과 긴밀하게 연결된다. 그것은 또한 ‘거주’를 필요조건으로 한다. 그 장소에 거주해보지 않고 그 장소를 둘러싼 정체성을 온전히 헤아리기란 어렵다. 여성이라는 신체에 거주해보지 못한 남성이, ‘흑인’의 신체에 거주해보지 못한 ‘백인’이 각각 상대의 정체성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려운 것과 같은 이치다. ‘제주도 한 달 살기’와 같은 단기 거주로 ‘제주도 사람’이 될 수는 없다. 세상을 바라보고 말하는 자리, 곧 자신의 ‘발화 위치’를 변화시키지 못하는 한 ‘제주도’는 ‘지역’이 아니라 ‘관광지’로 의식될 뿐이다.
‘발화 위치’가 바뀌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내 삶의 근거지가 광주로 바뀐 이후 나의 ‘발화 위치’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변했을까? ‘한국 현대사’에서 ‘광주’라는 도시에 실리는 ‘역사적’ 의미를 더욱 실감하게 되었다는 식의 얘기가 아니다. ‘역사적 광주’는 광주 바깥에서, 어쩌면 서울과 수도권에서 더욱 스펙터클하게 포착되는 풍경이다. 반대로, 도시 광주를 속속들이 파악하고 광주시민들의 실제 목소리를 경청함으로써 이 도시의 문화가 갖는 특이성에 대한 이해에 도달했다는 식의 얘기도 아니다. 내 신체의 위치를 다르게 의식하게 되었다는 것, 글을 쓰거나 말을 할 때 다른 발언의 지점에 서게 되었다는 것이 사실상 전부다. ‘한국’이라는 비교적 추상적인 발화 위치에서 광주라는 지방 도시의 구체적인 생활세계로 발화 위치가 바뀌었다는 사실의 의미는 적지 않다. 국민국가나 민족 단위의 거시적 세계관을 접고 ‘도시 연구’나 ‘마을 연구’에 미시적으로 천착하게 되었다는 단순한 의미가 아니다. 로컬이라는 발화 위치에서도 얼마든지 거시적 세계를 탐구할 수 있으며 탐구해야 한다. 요컨대 내 삶의 주변을, 한국을, 한민족을, 아시아를, 전 지구를, 생태계를,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여러 횡단적 지점들을, 좀 더 구체적이고 예각화된 현실(로컬)의 관점에서 보게 되었다는 뜻이다.
‘지역’ 혹은 ‘로컬’에 대한 과장된 자의식이 아니다. ‘지역’이라는 관점은 ‘일상적 삶’과 ‘문화’를 달리 보게 만들어준다. 영국의 문학이론가이자 문화연구자인 테리 이글턴(Terry Eagleton)은 ‘문화연구’ 진영에서 중요하게 다루어 왔던 문명(civilization)과 문화(culture) 개념의 차이에 대해서 분석하면서, 문명이 “문화보다 더 지구적인 현상”이었다면 “문화는 전통적으로 더 지역적인 사안”이었다고 말한다.1) ‘문명’은 최소한 대륙 단위 정도는 되어야 쓸 수 있는 지리적 외연이 큰 보편적 개념이다. 그래서 ‘동양 문명’이라는 말은 괜찮지만, ‘한국 문명’은 어색하다. 하물며, ‘광주 문명’은 어불성설이다. 반면 ‘문화’는 지역적으로 계속 좁혀 들어가면서 쓸 수 있는 말이다. ‘광주 문화’도 좋고 ‘두암동 문화’도 좋다. 심지어 아무개 씨의 ‘가족 문화’를 운운해도 용어법상 문제될 게 없다.
그러니 ‘문화연구(cultural studies)’의 다른 이름은 ‘지역연구(local studies)’다. 지금은 당연하게 여기는 이 테제를 ‘서울사람’일 때는 떠올리지 못했다. 당시에 ‘문화연구’는 내게 ‘서양(현대)문화’에 대한 연구거나 ‘한국(민족)문화’에 대한 연구였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1960년대를 지나오면서 명명된 ‘문화연구’는 처음부터 ‘지역연구’로서의 성격을 갖고 있었다. 중심지 런던에서 벗어난 지방 도시 버밍엄의 대학 연구소(후에 ‘버밍엄 학파’로 불리는 학자들의 본거지인 ‘현대문화연구센터’)에서 이 학제적(interdisciplinary) 연구가 천명되고 발전되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지식 생산의 측면에서도 문화연구의 중요한 목표 가운데 하나는 지식 권력의 탈중심화(분권화와 지역화)였다. 문화연구가 ‘서구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으로서 탈식민주의(postcolonialism) 연구와 긴밀히 연결된 것도 ‘지역연구’라는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탈식민주의 연구의 대표자 가운데 한 명인 호미 바바(Homi K. Bhabha)의 고전적 저서 『문화의 위치(The Location of Culture)』 역시 제목에서부터 문화가 ‘위치’나 ‘장소’와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는 점(물론 그는 그러한 위치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강조하지만) 암시하고 있다.
호미 바바, 『문화의 위치(The Location of Culture)』 Ⓒ교보문고
이 점은 페미니즘 담론의 맥락에서 도너 해러웨이(Donna Harraway)가 제시했던 ‘상황적 지식(situated knowledge)’이라는 개념과도 연관지어볼 수 있다. 여기서 ‘상황적’이라는 말은 ‘위치지어짐(situated)’을 뜻하는데, 우리의 지식은 각자가 처한 상황과 위치(situation), 달리 말하면 ‘로컬리티(locality)’에 따라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시사한다. 그럼에도 특정 위치(젠더 정치의 맥락을 예로 들면, 남성의 위치)가 자신의 상황성을 은폐하고 객관성이나 보편성의 자리를 독점해 왔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상황적 지식’에 대한 강조가 객관적 지식의 가능성을 온전히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객관성은 역설적이게도 스스로의 제한적 위치를 드러내는 주변적이고 종속적인 시각을 통해서 더 잘 드러날 수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해러웨이가 볼 때, 그런 시각들이 그 어떤 입장보다 상황적 객관성을 제시할 가능성이 더 크기 때문이다.”2) 서울도 위치와 상황을 가진 하나의 ‘로컬’이다. 하지만, 중심지의 문화는 그 화려함으로 여러 사회적 모순을 덮는다. 반면, 지방 도시는 사회의 모순을 좀 더 여과 없이 드러냄으로써 ‘상황적 객관성’을 드러낸다. 예컨대 서울 강남 거리의 다문화는 글로벌 사회로의 약진을 표상하지만, 지방 도시의 다문화는 잠재된 갈등의 현장이다.
그동안 한국의 문화연구는 위치와 상황, 로컬리티에 대한 연구, 곧 ‘지역연구’로 인식되지 못했다. 한국에서 한때 유행하던 ‘문화비평’이 사실상 소멸하게 된 배경에는 문화비평의 ‘서울중심주의’라는 문제가 있었다고 감히 진단한다. 문화비평이 되살아나기 위해서는 그 ‘발화 위치’가 다양한 지역으로 옮겨져야 한다. 현재 ‘지방소멸’이 운위되는 수도권 중심 문화와 지역 차별의 현장에서 생산되는 한국의 지역 담론은 미국과 같은 명시적 다민족 사회의 이주민이나 소수민족의 저항 담론, 그리고 젠더 담론과도 만나는 지점이 있다. 아직은 다민족·다문화 사회의 갈등이 표면화되지 않은 한국 사회에서 ‘지역’이라는 범주가 주류적 담론과는 ‘다른 목소리’를 통해서 그러한 잠재적 사회갈등에 대한 담론의 장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한번 새삼스러운 테제를 새기자면, 문화연구는 지역연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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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테리 이글턴, 이강선 옮김, 『문화란 무엇인가?』 (문예출판사, 2021), 29쪽
2) 김용규, 『혼종문화론』 (소명출판, 2013), 8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