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학에서는 글로컬에 대한 관심이 높다. 교육부가 벽을 허무는 과감한 혁신을 요구하면서 30개 대학을 선정해 집중적으로 지원하겠다는 글로컬대학 육성계획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사실 글로컬은 글로컬대학 이슈가 아니더라도 이미 대중에게 잘 알려진 친숙한 개념이다. 세계화와 지역화가 동시에 추구하는 것을 의미하는 글로컬은 글로벌(global)과 로컬(local)에서 유래하는 조어(造語)다. 이를 문화에 적용하면, 현대 사회에서는 지역 고유의 정체성을 담은 문화가 곧 세계적인 문화로 통용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지역의 중요성이 커진 현 상황에서는 지역에 대한 정확한 정리가 매우 중요하다. 여전히 지역과 지방을 뚜렷하게 구분하지 않고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지역은 ‘일정하게 구획된 어느 범위의 토지’와 ‘전체 사회를 어떤 특징으로 나눈 일정한 공간 영역’을 의미한다. 지방은 ‘어느 방면의 땅’, ‘서울 이외의 지역’을 의미한다. 지역이 전체에서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는 반면에 지방은 중심과 상대적인 관계를 형성하면서 영역을 확인한다. 이는 지역은 그 자체로 고유한 특성을 확보하지만, 지방은 중심과의 비교를 통해서 특성이 규정됨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전라북도의 시·군은 지역과 지방 중에서 어떤 쪽에 속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라북도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지역으로 존재해왔다. 농업 생산력에 기반을 둔 전북지역 지역민의 삶에서 공동체 의식은 큰 부분을 차지한다. 이 공동체 의식은 전북지역의 독립적인 문화와 예술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아울러 정치적 중심이었던 적이 극히 짧거나 없었던 전북지역은 자연스럽게 고유의 정체성을 내포한 문화와 예술을 유지하게 된다.
전북지역에는 지역 고유의 정체성을 담아낸 독립문화가 무수히 많다. 대표적 문화 중 하나가 바로 완판본이다. 전주 완판본은 판소리계 소설과 전라도 사투리를 사용하여, 서울 경판본과 전혀 다른 형식의 독립적인 출판문화를 구축했다고 전해진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전주 완판본과 같은 독립출판이 확산 중이다. 독립출판은 학술적으로 정립된 개념은 아니나, 상업출판의 대척점에 있다는 사실은 대부분의 사람이 수긍한다. 상업출판이 평균적인 독자를 대상으로 대량출판과 유통을 중심을 둔 반면에, 독립출판은 소수 독자를 위한 소량출판과 소규모 개별유통에 중심을 둔다. 또한 독립출판은 개개인의 이상과 취향이 담기기 때문에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다양한 출판물을 발행한다. 또한 독립출판은 지역과 유기적인 관계를 형성하면서 지역문화를 대중에게 전달하는 역할도 수행한다.
독립출판이 활성화되면서 획일적인 대형서점과 달리 차별 요인을 만들어낸 독립서점도 큰 관심을 받고 있다. 동네서점의 <동네서점트렌드> 분석에 따르면, 2022년 기준으로 전국에서 815곳의 독립서점이 운영 중이다. 전년 대비 70곳(9.4%)이 늘어난 수치로 한 주에 1.3곳의 새 책방이 개점한 셈이다. 이는 독립서점이 커피와 차를 마시며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 대형서점에 없는 다양한 독립출판물을 접할 기회 제공, 서점 내 글쓰기와 숙박 활동 등을 통해 지역민의 문화향유권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변화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이러한 변화는 지역에서 독립서점이 경쟁력을 갖춰나가고 증가하는 데도 영향을 미친다. 올해는 경기도(14곳)와 서울특별시(10곳)에 이어 가장 많이 독립서점을 개점(7곳)한 전북지역이 눈에 띈다.
전국 독립서점 증감추세 Ⓒ동네서점
현재 전북지역의 독립서점은 새롭게 개점한 곳을 포함하여 총 31곳이다. 그러나 전북지역의 독립서점은 동네책방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합하다. 독립서점은 독립출판사에서 출판한 서적만을 판매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립서점의 여건에서 독립출판사의 서적만 판매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렇다고 독립서점과 동네책방이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독립서점 운영자가 스스로를 책방지기로 칭하며, 독립서점보다는 동네책방이라는 용어를 더 선호하기도 한다. 독립출판사의 서적만 판매해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동네책방은 독립출판사에서 출간한 책과 더불어, 책방지기의 관심사와 책방의 콘셉트에 맞는 책을 구비한다. 나아가 지역과 관련한 콘텐츠를 개발하고 진행하기도 한다. 이처럼 동네책방은 지역의 정체성을 담아내는 복합문화공간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전주책방네트워크 발대식 Ⓒ전북도민일보 | 동네책방 문학상 포스터 Ⓒ잘 익은 언어들
전주시는 다른 도시에 비해 동네책방이 잘 운영된다고 평가받는다. 그 이유는 동네책방 간 네트워크가 잘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전주시의 동네책방은 ‘전주책방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전주지역만의 고유한 책 문화를 형성한다. 이는 각자 다른 방향성을 가진 책방지기가 결합하여 전주지역만의 정체성을 확립한다는 측면에서 매우 유의미하다. 또한 주기적인 워크숍을 통해 정보를 교환하고 각자가 성장함과 동시에 큰 공동체로 확장한다. 그 결과 중 하나가 전주책방네트워크가 국내 최초로 기획한 <동네책방 문학상>이다. 동네책방 문학상은 외부지원을 받지 않고 책방에서 자체적으로 프로젝트를 수행함으로써, 독자와 책방이 새로운 형태로 관계를 맺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이처럼 전주지역의 동네책방은 브랜드화를 통해 전주 동네책방만의 고유한 색깔을 만들고, 지역민과 소통하면서 다양한 문화 활동을 한다. 이러한 전주지역 동네책방의 긍정적 요소는 전북지역으로 확장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전북지역의 동네책방이 더욱 발전하고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변화를 제안하고자 한다. 우선 동네책방을 서점의 역할뿐만 아니라, 지역문화를 보존하고 향유하는 장소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동네책방은 필연적으로 지역과 지역민, 그리고 지역문화와 밀접하게 관계를 맺는다. 이에 동네책방이 독립출판사, 문화 관련 기관 등과 연계하여 지역, 지역민, 지역문화를 기록하고 책으로 발간하기를 제안한다. 이는 동네책방이 지역 고유의 정신문화를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한다는 사명감을 갖게 해줄 것이라 확신한다. 나아가 지역민을 대상으로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교육하고 지역 콘텐츠 프로그램을 개발한다면, 경제적 효과도 상승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물론, 이러한 변화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지역의 단체와 기관, 지역민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수적이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토대로 정리한 동네책방의 가치는 지역의 중요성과 독립성을 동시에 보여준다는 점이다. 이는 지역의 역할이 중요해졌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냄과 동시에 지역의 독립성을 요구하는 글로컬과 맞닿아 있다. 앞으로 동네책방이 글로컬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벽을 허무는 과감한 혁신을 해야 한다. 여기서의 혁신은 주류문화에 편승하지 않고 고유의 정체성을 지키는 비주류의 문화를 고수하는 것을 의미한다. 주류문화에 반(反)하여 생성된 독립문화가 미래를 선도하는 문화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동네책방이 대형서점과는 다른 가치를 추구하면서 지역과 상생한다면, 언젠가는 동네책방이 주류가 될 것이라 믿는다. 동네책방이 지역을 품어 세계로 나아가, 글로컬책방이 되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