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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국제적 미술 행사의 도시, 전주를 상상해보다
제6호 기획, 기획자, 기획이라 부르는 것_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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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온전》은 전북 비평 문화 발전을 위한 코너를 운영합니다.

참신하고 자유로운 전주의 비평과 비평가를 발굴하기 위한 여정을 시작합니다.

 



전주를 대표하는 문화 행사는 무엇일까? 방문자 수로만 보면, 전주를 대표하는 문화 행사는 단연 전주국제영화제다. 코로나19 팬데믹 직전인 2019년에는 영화제 사상 최대 관객 수인 8만 5,000여 명을 기록했고, 몇 년 만에 오프라인에서 치러진 2022년 영화제에선 5만여 명의 관객이 전주를 찾은 것으로 집계되었다. 벌써 24회를 앞둔 영화제가 정확히 어떤 행정적 과정을 통해 탄생했는지에 대해 몇 번의 검색만으로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영화제 개회사나 관련 보도를 통해 전달되는 제1회 전주국제영화제의 기운은 대안적이고 새롭다. 부산과 부천에서 각각 1996, 1997년에 국제영화제를 시작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새천년’인 2000년에 개막한 전주국제영화제는 필연적으로 새로움을 추구할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documenta fifteen, ruruHaus, 2020  Nicolas Wefers


여기서 잠시 상상해보자. 만약 전주를 대표하는 문화 행사가 매년 열리는 국제영화제가 아니라 5년에 한 번 열리는 국제적 미술 전시라면 어떨까? 100일간 열리는 이 전시에 방문하기 위해 매일 평균 만 명 가량의 방문객이 국내외에서 전주를 찾아오고, 이를 통해 전주 뿐 아니라 인근 지역까지 경제적 효과를 누린다면? 또한, 5년에 한 번 열리는 국제적 전시가 세계 현대 미술의 흐름을 판단하는 주요한 지표가 되어 시나 국가의 차원을 넘어 국제적 영향력을 미친다면? 때로는 그 영향력이 너무나 크기에 행사에서 예상치 못한 논란이나 문제가 생겼을 때 관련 책임자들이 국회 청문회에 출석할 정도로 중요하게 여겨진다면? 그렇다면 전주라는 도시가 이 거대한 문화 행사를 어떻게 다룰 것이며, 전주 현지의 시민과 문화계 인사들은 어떻게 행사에 대처할 것인가?



카셀 지역 쇼핑몰 C&A 외벽에 설치된 타링 파디의 걸개 그림.

미국을 탐욕스런 돼지로 묘사하고 있지만, 법으로 금지된 반유대주의 혐오표현에 해당하지 않아 철거를 면했다.  Ⓒ박재용 제공


한국에서 치러지는 국제적 미술 행사 중 이 설명에 조금이라도 가까운 사례는 아마 광주비엔날레일 것이다. 물론, 광주비엔날레는 위 문단에서 상상한 전시처럼 마냥 잘 운영되거나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진 않다. 광주비엔날레는 1995년 제1회 행사에서 163만 명이라는 기록적 관객수를 겪은 뒤 지속적으로 관객 규모가 줄었고, 가장 최근에 열린 2021년 비엔날레는 39일간 8만 5천여 명의 관람객을 기록했다. 그러나 행사가 안겨주는 경제적 행사는 결코 작지 않은 것으로 여겨진다. 광주비엔날레는 최근 전시관 신축을 위해 기획재정부의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했는데, 해당 조사에 따르면 비엔날레가 광주와 인근 지역에 가져오는 경제 효과는 1,300여억원으로 추산된다. 또한 과거에 비해선 그 위상이 덜하다고는 하나, 아시아 지역에서 처음 설립된 국제적 비엔날레라는 점에서 오늘날까지도 세계 미술계의 주요 행사로 여겨진다. 하지만 광주비엔날레 차원에서 논란이나 문제가 생긴다고 해서 관련 인사들이 국회 청문회에 불려가지는 않는다.


잠시 전주를 세계 미술계가 주목하는 도시로 상상해봤고, 그와 유사한 국내 사례로 광주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그런데, 이 사고 실험에 해당하는 실제 장소는 과연 어디일까? 정답은 독일 헤센주에 자리한 인구 20여만명 규모의 소도시 카셀이다. 폭스바겐, 벤츠 등 주요 자동차 제조사들의 공장이나 본사가 있는 카셀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주요 군수물자 생산 기지로 활용되었고, 그런 탓에 도시의 상당 부분이 연합군의 폭격으로 파괴된 역사를 지니고 있다. 1955년부터 시작된 ‘카셀 도큐멘타’는 그렇게 해서 파괴된 잔해를 딛고 시작된 전시다. 제1회 도큐멘타는 나치 시절 퇴폐 예술로 탄압 당했던 현대 미술을 소개했고, 회차를 거듭하면서 점차 더 국제적인 성격을 지니게 되어 이제는 당대에 가장 영향력 있는 큐레이터들이 미술 영역에서 시의성 있는 주제와 미술의 앞날에 대한 시야를 제공하는 행사로 자리잡았다.


마치 초창기 전주국제영화제가 그랬던 것처럼, 카셀 도큐멘타는 당대에 가장 주목 받는 작가나 작품을 선보이면서도 반 발짝 더 앞서 나가는 이야기를 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그리고 이제 15회를 맞이한 올해 카셀 도큐멘타는 처음으로 한 명의 큐레이터가 아니라 작가에게, 그것도 한 명의 작가가 아니라 많은 사람으로 구성된 ‘콜렉티브’에게 예술감독직을 맡겼다. 게다가 이렇게 예술감독을 맡긴 콜렉티브는 도큐멘타가 열리는 독일, 유럽 출신으로 그곳에서 활동하는 팀이 아니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루앙루파’다. 그리고 이들은 그간 치러진 여러 도큐멘타의 예술 감독들이 거대한 주제를 제시했던 것과 달리, ‘3W’를 지양하는 행사를 내세웠다. 여기서 3W는 백인(being White), 서양 중심주의(Western),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티스트(World famous)를 뜻한다. 이는 시대의 지평이 변했다는 강력한 메시지다. 비록 카셀은 인구도 면적도 크지 않은 작은 도시지만 도큐멘타라는 행사를 통해 세상을 향한 메시지를 발신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기도 하다.


앞서 광주 비엔날레를 비교 대상으로 가져와 지역에서 진행되는 국제적인 미술 행사에 대해 생각해보았고, 전주에는 이미 20년 넘는 역사와 함께 그에 못지 않은 굴곡도 있는 전주국제영화제가 존재한다. 하지만 올해 열린 제15회 도큐멘타가 보여준 강력한 제스처는 광주나 한국, 혹은 다른 한국의 문화 행사로 쉽사리 대입해 상상하기 어렵다. 이런 차이에 대해 그저 세계의 3대 현대미술 행사로 알려진 도큐멘타가 1955년부터 반 세기 넘게 지속되면서 ‘역량이 쌓였다’는 식으로 설명하고 넘어갈 수 있을까? 도큐멘타의 역사가 긴 것도 사실이고 그만큼 전 세계적으로 주목 받는 것 또한 사실이지만, 이처럼 강력한 제스처를 발휘할 수 있는 것은 도큐멘타라는 행사가 열릴 수 있게 뒷받침하는 행정적, 조직적 구조, 행사에 대한 지역민들의 지지, 그리고 무엇보다 그간 치러진 행사에 대한 꼼꼼한 아카이빙이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도큐멘타의 운영 주체는 ‘documenta und Fridericianum gGmbH’(도큐멘타와 프리데리치아눔 비영리 회사)로, 카셀시와 헤센주, 독일 연방정부로부터 국고 지원을 받는다. 100일간 열리는 행사를 위한 총 예산은 약 4, 200만유로(약 550억 원) 규모이며, 예술감독은 지원을 받는 공모제로 선정하지 않고 국제적 미술계 인사들로 구성된 예술 감독 탐색 위원회가 임명한다. 현지의 대학교인 카셀 대학교에 ‘도큐멘타 연구소’(documenta institute)가 있으며, 1955년부터 지금까지 치러진 모든 행사의 기록을 보관하는 아카이브를 별도로 운영한다. 무엇보다, 카셀시 정부가 적극적으로 스스로를 ‘도큐멘타 도시’라는 규정하며 5년에 한 번 열리는 도큐멘타 행사를 넘어 ‘문화, 예술, 여가’가 도시 정체성의 중요한 부분임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관련 업무를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예술은 언제나 예상할 수 없는 창조적 결과물을 수반하기에, 도큐멘타라는 행사와 더불어 피할 수 없는 논란이 벌어지는 경우가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최근(이라고 하기에는 최소한 지난 10년간) 치러진 도큐멘타는 모두 어떤 이유에서건 논란에 휩싸였다. 그리고 올해 도큐멘타 역시 논란을 피하지 못했다. 비서구권에서 활동하는 콜렉티브로서 예술감독을 맡은 루앙루파가 초대한 67개의 콜렉티브는 각자 개별적으로 또 다른 콜렉티브를 초대했고, 그 결과 이번 도큐멘타는 1,500여 명의 작가가 참여한 거대한 행사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수 많은 참여작가 가운데 한 팀인 타링 파디(Taring Padi)가 내건 거대한 걸개그림에 이른바 ‘반유대주의적’ 상징이 들어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행사 전체가 논란에 휩싸이고 말았다. 해당 작품은 신속히 철거되었고, 이로 인해 예술 감독인 콜렉티브 루앙루파의 멤버들이 독일 의회에서 증언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미 해당 논란이 벌어지기 전 이번 도큐멘타를 향해 다소 부당한 인종차별적 사건들이 있었고, 독일 문화부 장관까지 나서서 행사를 옹호한 뒤에 벌어진 일이라 부정적 여파가 더 컸다.


다시 (전주가 아닌) 광주로 시선을 돌려보자. 한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 적이 있다. 2014년, 광주 비엔날레 20주년 주년을 맞아 마련된 특별전에 출품된 홍성담 작가의 걸개그림 <세월오월>. 이 작품은 당시 재임 중이던 대통령을 혐오적 표현으로 묘사했다는 이유로 전시 공간에서 철거되었다. 작가와 기획자 측에서는 이를 부당한 검열이라고 반발했고, 이후 작품 창작 과정에서부터 다양한 개입이 있었음이 드러났다. 물론 도큐멘타의 경우는 좀 다르다. 도큐멘타에서 철거된 작품은 독일에서 법으로 금지된 반유대주의 증오 발언에 해당한다는 비난을 받았기에 철거되었다. 이러한 비난이 과연 정당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소지가 있음에도, 기본적으로는 이미 존재하는 법령을 근거로 벌어진 논란이었던 것이다.



지난 2019년 도큐멘타 설립자 가운데 나치 전력이 있는 사람이 있다는 탐사 보도로 촉발된 일련의 논쟁을 갈무리한 신문 스크랩.

도큐멘타 아카이브 전시에서 열람할 수 있다.  Ⓒ박재용 제공


그럼 전주의 경우를 상상해보자. 전주에서 이와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가 상상하는 전주판 도큐멘타가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미치는 행사일지는 불확실하지만, 역시나 카셀 도큐멘타에서와 같은 형식으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을 것 같다. 아마 높은 확률로 2014년 광주 비엔날레 특별전에서 일어난 문제 해결방식이 되풀이 될 터. 그리고, 문제가 제기된 방식과 나름의 해결 과정, 그 이후에 대한 기록이 어떤 방식으로 남겨질 지 또한 미지수다. 카셀에선 도큐멘타 아카이브와 지역 미술관이 협력해 마련해둔 전시관에서 1955년부터 지금까지 도큐멘타가 어떤 논란을 겪었고, 그것이 어떤 식으로 언론에 보도되었는지 또한 살펴볼 수 있다. 각 회 별 주제 뿐 아니라 운영 주체가 누구였는지, 총 예산은 얼마만큼 쓰였는지도 함께 확인할 수 있다.



1972년 제5회 도큐멘타를 일별하는 아카이브 전시장의 텍스트.

남녀 작가의 비율, 전시 작품 숫자, 총 예산, 관람객 수 등 다양한 정보를 제공한다.  Ⓒ박재용 제공


결국, 카셀 도큐멘타는 매번 빚어지는 갖가지 논란에도 불구하고 5년 뒤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다. 이번 도큐멘타를 둘러싼 논란은 다시 한 번 도큐멘타 아카이브에 기록으로 남을 것이며, 카셀 시 당국은 계속해서 ‘도큐멘타의 도시’라는 브랜딩을 이어갈 것이다. 상상 속 전주판 도큐멘타는 어떻게 행사를 이어갈 것인가. 매우 긴 시각으로, 논란이나 비난마저도 아카이빙의 대상으로 삼고 ‘더 나은 다음’을 기약하는 모습을 보일 것인가. 현재 시점에선 효용을 알 수 없고 심지어 남기고 싶지 않은 것마저 차곡차곡 쌓아가는 아카이브가 애초에 용인될 것인가. 바로 이런 질문들이 약 1주일간 30여 개의 카셀 도큐멘타 전시 공간을 모두 둘러보며 전주가 국제적 미술 행사의 도시로 자리잡는 모습을 상상했을 때 고민이 된 부분들이다.

#전주 #전주국제영화제 #광주비엔날레 #카셀 #도큐멘타 #3W #루앙루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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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박재용
박재용은 큐레이터이자 통번역가, 필자로 주로 동시대미술 현장에서 활동한다. 큐레이터, 프로듀서로서 <토탈리콜>(일민미술관, 2014), <The United Paradox>(Portikus, 2015), 제5회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 2016-17), 현대미술가 카데르 아티아의 <이동하는 경계들>(2018), 국립현대무용단 10주년 웹아카이브 등을 기획, 제작했다. 최근 출간된 번역서로 <현대미술, 이렇게 이해하면 되나요?>(2022), <무슨일선집 1>(2021) 등이 있으며, <아트인컬처>, <The Financial Times> 등 국내외 매체에 현대미술과 관련한 글을 기고한다. 시각문화의 일부이자 역사적 산물로서의 현대미술에 관심을 갖고 연구 중이며, 미술서가 ‘서울리딩룸’을 운영한다.
[인스타그램] @publicly.jaey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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