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온전》은 전북 비평 문화 발전을 위한 코너를 운영합니다.
참신하고 자유로운 전주의 비평과 비평가를 발굴하기 위한 여정을 시작합니다.
전주는 핫플레이스다. 천천히 핫플레이스가 되었다. 한옥마을이 이끌고, 전주국제영화제가 풀무질했다. KTX의 ‘힘내라 청춘 서비스’도 거들었다. 가맥집, 전주비빔밥, 막걸리 골목, 콩나물해장국, 초코파이, 전주세계소리축제처럼 전주에서만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재미는 수많은 이들의 발걸음을 전주로 이끌었다. 전주역에 내려 보면 안다. 전주역에는 1년 365일 내내 젊은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열차를 타고 오가는 관광객의 다수가 젊은 세대다. 인스타그램에서 전주를 #태그한 게시물은 740만 건이고, 전주 여행을 #태그한 게시물은 98만 건일 정도다.
‘한바탕전주’를 내세운 전주는 무엇보다 백제의 완산에서부터 이어진 전통의 도시다. 인구가 65만명인 큰 도시로 전라북도의 중심인데, 전라감영/경기전/풍남문/전주객사를 비롯한 역사의 흔적들은 전주에 남다른 향기를 불어넣었다. 정갈하고 그윽하며 고즈넉한 전주의 아우라는 맛깔스러운 전주의 음식들과 어우러지며 전주를 다른 지역과 구분했다. 전주는 경주와 다르고, 서울과 다르다. 당연히 여수나 목포와도 같지 않다. 사람들은 다른 체험을 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고, 여행이 끝나기 전에 여행을 전시한다. 사람들의 발걸음은 흔적을 남기고, 그 흔적은 다른 이들을 유혹한다. 전주는 과거와 현재의 유산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그들이 다시 다른 이들을 호명하는 도시이다.
그리고 전주에는 음악이 있다. 전통음악만이 아니다. 당연히 전주에는 한국 전통음악을 하는 이들이 넘치도록 많지만, 지금 현재의 음악을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전주에는 전라북도 레드콘 음악창작소가 있고, 더바인홀/딥인투/라디오스타/레드제플린/몽크/토브를 비롯한 라이브 클럽이 있다. 그 곳에서 전주/전북 지역의 뮤지션들이 공연을 펼친다. 57, 고니아, 김주환, 뮤즈그레인, 송장벌레, 이상한계절을 위시로 한 여러 장르의 뮤지션들이 씬을 만들고 지키는 중이다. ‘MADE IN JEONJU’ 같은 지역 음악 페스티벌이 열리기도 한다. 전주를 전통의 도시로만 기억하면 안 되는 이유다.
이상한계절 프로필 사진 Ⓒ이상한계절 제공
이제 그 중 이상한계절에 대해 이야기해야 할 때다. 어쿠스틱 포크 듀엣 이상한계절은 김은총과 박경재가 멤버다. 둘은 대학에서 만났고, 2011년 즈음부터 지역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이상한계절의 데뷔작은 2014년에 발표한 첫 EP [봄]. 그 후 이상한계절은 싱글 <키스하지 말걸>, <빈센트연가>, <그대로도 괜찮아>, <와줘요 달빛>을 발표한 후 2016년 11월 두 번째 EP [가을]을 내놓았다. 그 뒤에는 싱글 <전주에 가면>을 내놓고, 2018년 세 번째 EP [겨울]을 선보였다. 계절을 앞세운 연작이 꾸준히 이어진 셈이다. 후속 작업으로 이미 발표했던 <키스하지 말걸>을 밴드 버전으로 리메이크하기도 했다. 코로나 팬데믹에서도 이상한계절의 활동은 멈추지 않았다. 이상한계절은 비대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라이브 음반 [Live : On The Blue]를 들려주었다.
뮤지션이 곡을 쓰고, 연습하고, 발표하고, 공연하는 일은 당연하지 않느냐고 반문하지 않기를 바란다. 세상의 어떤 일도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루에 3,000곡 이상의 새 노래가 쏟아지는 세상이다. 우리가 그 중 몇 곡이나 찾아 듣는지 생각해보면 음악을 만드는 일이 얼마나 고단하고 외로운 일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음악이 넘치는 세상, 세상에 넘치는 것이 음악만이 아닌 세상에서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 발표하는 일은 허공을 향해 선물을 날리는 일처럼 느껴진다. 누가 그 선물을 받아줄지 아무도 모른다. 어디로 날아가는지 확인할 수도 없다. 게다가 수도권 밖에서 음악을 만드는 일은 더 어렵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다 수도권으로 빨려들어가고, 세상의 모든 재미있는 일들은 죄다 수도권에서 벌어지는 것 같은 세상이다. 이런 세상에서는 수도권 밖 사람들도 동네의 예술가를 주목하지 않는다. 동네에 있는 예술가는 미처 수도권으로 가지 못해 남아있는 사람처럼 여겨지는 탓이다. 이런 세상에서는 음악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는 일부터 고난의 연속이다.
하지만 지역의 예술가는 이주에 실패한 예술가가 아니라, 정주(定住)를 선택한 사람이다. 중심을 추종하는 대신, 스스로 중심이 되겠다고 다짐한 사람이다. 수도권 밖에는 특산품과 전통만 있는 게 아니라 그 곳에도 현재의 문화가 있다고 선언하는 사람이다. 그들은 자신의 지역에 발 딛고 서서 다른 지역을 본다. 그들의 시선에는 지역의 위계가 없다. 대신 자신의 지역을 품는 웅숭깊은 시선이 있다. 사랑하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것들을 보고, 사랑하기 때문에 미워하는 것들을 이야기 한다. 그래서 지역 예술가들의 작품을 통해 우리는 그 지역에 사는 이들의 꿈과 사랑, 절망과 도전을 확인할 수 있다. 지역에서 음악을 하면서 자신의 삶을 이어가는 이들의 고군분투를 느낄 수 있다. 이상한 계절이 5월 17일 발표한 싱글 <마음속 전주>도 마찬가지다.
<마음속 전주> 앨범 자켓 Ⓒ이상한계절 제공
이 노래는 이상한계절이 2017년 11월에 지역음악 프로젝트로 발표한 싱글 <전주에 가면>을 잇는 곡이다. 두 곡 다 전주에서 살고 있는 사람의 시선보다 전주에 다녀간 사람들의 시선을 담았다. 그래서 <마음속 전주>는 우리가 전주에서 연상하고 기대하는 친숙한 이미지로 채워진다. 처음엔 한옥마을 거리를 걷고, 운치 있는 한옥의 정취를 느낀다. 한복 입은 사람들과 연인들 사이를 걷다가, 저녁에는 막걸리 한 사발을 푸짐하게 마신다. 그리곤 각자의 삶터로 돌아와 살아가며 전주에서 보낸 시간을 떠올린다. 물론 전주에서 보낸 시간이 이렇게만 흘러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누군가는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리기도 했을 것이고, 예상하지 못하게 당황스러웠던 순간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전주는 그 모든 순간을 아름답게 채워주는 힘이 있다. 이상한계절이 “삶에 지쳐 갈 때쯤 다시 생각나겠지 / 오 아름다웠던 전주”라고 노래하는 이유이다. “따스한 봄이 오면 난 다시 갈 테야 / 오 나의 마음속 전주”라고 읊조리는 까닭이다. 전주에 한 번이라도 와본 사람이라면 자기도 그렇다고 끄덕이며 웃을 것이다. 한옥마을과 막걸리를 기대하고 전주에 찾아왔는데, 전주에는 더 많은 즐거움과 감동이 있었을 테니까. 전주에 와서 의외의 맛과 멋을 흠뻑 맛보았을 테니까.
그래서 이 노래의 여백은 전주에 다녀가고, 전주를 기억하고, 전주를 꿈꾸는 이들을 통해 채워질 것이다. 어쿠스틱 기타로 살랑살랑 연주하고 노래하는 이상한계절의 작법은 누구에게든 스며들 수 있다. 보편적이고 대중적인 음악, 자연스러운 음악의 미덕이다. 부드럽고 다정한 사운드는 바이올린과 첼로를 통해 감겨온다. 이제 전주에서 살고 있는 이들의 노래를 이어 부를 시간이다.
<마음속 전주> 앨범 듣기
멜론_ https://www.melon.com/album/detail.htm?albumId=10953729
지니_ https://www.genie.co.kr/detail/albumInfo?axnm=82687554
벅스_ https://music.bugs.co.kr/album/20467643
소리바다_ https://www.soribada.com/music/album/KD0185982
FLO_ https://www.music-flo.com/detail/album/edhnzeylo/albumtra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