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가님이 노벨문학상을 받은 다음 날, 책을 주문하기 위해 도매사이트에 들어갔다. 책을 주문할 수 없었다. 서점 문 열고 세 시간 만에 한강 작가님 책 여섯 권 모두 팔렸다. 그 이후도, 한강 작가님 책 있냐는 문의가 많았다. 대부분 여러 서점에 전화를 해보고 없다는 말을 들었는지, '혹시'라는 말을 꼭 붙였다.
문의하는 손님에게 내일이나 모레 책이 도착해요, 라고 말할 수 없었다. 대부분 주문 책은 하루나 이틀 후에 도착하지만 이번에는 주문 자체를 할 수 없었다. 도매사이트 주문을 막아놓았다. 평상시라면 책이 품절이라고 생각하고 말 일이었지만, 서점 단골과 인터넷에서 서점을 검색하고 전화한 사람들까지 하루에도 수십 통 한강 작가님 책 문의가 왔다. 문제는 그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책을 주문할 수 없었고, 문의는 계속되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다. 우리 서점뿐만 아니라 다른 서점도 한강 작가의 책을 단 한 권도 받을 수 없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책을 유통하는 곳에서 책을 보내지 않았다. 그리고 출판사가 유통사 여러 곳에 책을 주지 않았다. 이 둘이 함께 작용했다. 유통을 겸하고 있는 거대한 인터넷 서점으로 모든 책이 빨려 들어갔다. 이번 사건은 도서 시장의 대부분을 독점하는 인터넷 서점이 도매에 진출할 때부터 예견된 일이다.
그런데 한국 문학계에 경사가 났다. 한강 작가님이 노벨 문학상을 받았고, 너도나도 한강 작가님의 책을 샀고, 책 품귀현상이 일어났다. 출판사는 밤새 책을 만들었고, 그 책은 만들자마자 모두 팔렸다. 그런데 팔린 곳은 대형 인터넷 서점과 프랜차이즈 서점뿐이었다. 인터넷 서점은 자사의 오프라인 매장과 인터넷 주문량을 처리하기에도 책이 모자랐을 것이고, 유통업체는 주문 자체를 막아놓고 유통으로 들어온 책을 자사의 서점에만 독점 공급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다 문제가 터졌다. 전국 서점들이 아우성을 쳤다.
대부분의 작은 서점은 일주일 동안 한강 작가님 책 한 권을 구할 수가 없었는데, 일주일이 지난 후에 갑자기 한 대형 서점에서 작은 서점과 상생을 위해 한강 작가님의 책을 팔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유통을 막아놓은 바로 그 서점이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에서 그 서점을 불공정거래행위로 신고한다고 하니 먼저 선수를 쳐서 여론전을 시작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 서점은 전국에 서점 체인점을 가지고 있고, 전국 작은 서점에도 책을 유통하는 거대한 공룡이다. 그곳에는 산처럼 책을 쌓아놓고 책을 팔고 있었고, 뉴스에서는 한강 작가님 책을 사기 위해 그 서점에 사람들이 길게 줄이 서 있는 형상을 보도했다. 하지만 작은 서점은 매번 문의 전화가 올 때마다 죄송합니다, 아직 책이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라고 말하면서 씁쓸하고 억울했다. 신문 한 귀퉁이에 작게 보도된 사건이었다. 이번 사건만이 문제가 아니다. 인터넷 대형 서점의 독점과 할인은 수년 동안 많은 작은 서점을 문 닫게 했다. 동네와 학교 앞마다 있던 서점이 이제는 없다. 다시 문을 열어도, 2년을 버티지 못하고 대부분 닫는다. 어쩌면 자본주의 경쟁에서 졌으니 어쩔 수 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래도, 동네에서 작은 서점을 하는 입장에서 조금은 똑같은 규칙에서 경쟁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경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누가 이기고 지냐가 아니라, 바로 평등한 규칙이다. 규칙이 정확하고 평등할 때, 새로운 가치와 성장이 이뤄진다. 한쪽을 죽이는 경쟁은 결국 독과점을 만든다. 성장이 멈추고, 새로운 가치를 발굴하지 못한다. 상생은 한두 푼 적선이 아니다. 공정한 규칙을 만드는데 함께 하는 것이 상생이다.
<뒤늦게 소량 도착한 한강 도서>, Ⓒ강성훈
사실, 내가 말하고 싶은 진짜 이야기는 이런 복잡한 독과점 문제가 아니다. 한강 작가님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축하하고 싶었다. 매년 노벨문학상은 번역 책으로 접했다. 번역 책은 그 나라의 언어와 환경, 그리고 역사를 모른다면 정확히 작품을 이해하기 힘들다. 특히 언어를. 그런데 이번에는 우리 한국 작가다. 처음으로 노벨문학상을 번역 없이 한국어 그대로 읽을 기회가 왔다. 그 깊은 문학성을 한국어를 쓰는 우리가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 어쩌면 외국의 유명한 평론가보다 더 깊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
외국에서 노벨문학상을 줬지만, 한강 작가의 그 깊은 문학성을 잘 이해할 수 있는 건 그 누구도 아니고 우리이다. 그래서 좋은 작품을 쓴 작가와 그 작가의 작품을 누구보다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는 우리에게 축하하고 싶었다.
많은 분이 한강 작가님의 책을 산 것은 단순히 노벨문학상을 타서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중앙이라고 할 수 있는 대기업과 변방의 작은 서점, 이 둘의 격차는 너무 커서 뒤집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세계는 영어권이다. 한국어는 아시아의 소수 민족의 언어일 뿐이다. 하지만 예술은 그 경계를 허물 수 있다. 소수 민족의 언어로 쓰인 작품이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을 받았다. 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중앙과 변방을 가로지른 문학성과 그것을 이룬 예술적 힘이 중요하다. 알게 모르게 그 힘에 우리는 매료된 것이다. 중심에서 벗어나는, 꽉 막힌 구조에서 벗어나는 작가의 탈권력적인 글쓰기가 우리에게 탈주를 꿈꾸게 하는 예술적 힘으로 다가왔다. 한강 작가님이 이번 상으로 세계 중앙에 편입되었다 해도, 그녀는 또 다른 탈주를 꿈꿀 것이고, 새로운 작품으로 새로운 균열을 만들어낼 것임을 안다.
<카프카 읽기 모임> Ⓒ강성훈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이런 사건은 기대하기 힘들다. 그렇지만, 동네 한 구석에서 책을 파는 작은 서점은 세계를 가로지른 예술의 힘을 믿는다. 아마도 대다수 책방지기가 자본의 경쟁에서 매번 지면서도 이 일을 하는 이유는 경쟁을 이기는 것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돈을 벌수는 없지만, 서점을 운영하는 일이 구조화된 자본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작은 균열과 틈을 만드는 일이라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갑갑한 경쟁 사회에서 삶이 숨 쉬는 구멍을 만드는 일이라고. 무엇보다 책 속에 숨어있는 새로운 삶과 가치를 찾는 여정에 동참하는 일이라고. 한강 작가님의 <채식주의자> 주인공 영혜가 이미 굳건한 체제가 되어 폭력적으로 작용하는 육식의 삶을 거부하고 식물이 되기를 꿈꾸는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