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와 공동체의 관계를 건강하게 이어갈 방법을 생각해 본다.
꿈돌이를 만난 지 어느새 30년이 됐다. 밝은 내일을 꿈꾸게 한 꿈돌이는 대전엑스포를 겪은 이들의 기억 속에 강하게 자리 잡았다. 이후 꿈돌이가 전국적으로 다시 등장한 것은 2020년이었다. 그는 카카오M이 기획한 마스코트 서바이벌 시리즈 〈내 꿈은 라이언〉에 등장해 시청자들의 유년 시절을 상기시켰다. 거기엔 강원도청의 범이와 곰이, 한화 이글스의 위니, 부천시의 부천핸썹 등의 마스코트가 함께 출연했다. 꿈돌이는 지역도, 구단도 아닌 세계가 활동 무대였음을 증명하듯 순조롭게 우승을 차지했다. 콘텐츠가 올라오는 동안 대부분의 댓글은 꿈돌이 혹은 꿈돌이와 함께했던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내 꿈은 라이언 Ⓒ 카카오TV
꿈돌이는 어떤 점에서 호감을 살 수 있었을까? 국내 캐릭터 디자인사의 측면에서 보았을 때 꿈돌이는 언급할 만한 지점이 많은 친구였다. 우선 꿈돌이는 88 올림픽 호돌이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다양한 응용형 이미지들을 개발해 전략적으로 활용한 선례가 됐다. 마스코트의 필요성은 알아도 디자인 분야나 디자인비에 대한 공통된 이해가 없던 시기였다. 꿈돌이를 활용할 디자인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는 그 업무를 설득시키는 과정이 필요했을 것이다. 여러 모습의 꿈돌이 그리고 그로부터 제작된 꿈돌이 통장·뱃지 등은 매체로서의 마스코트 이상의 기능을 하며 보는 이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갔다.
꿈돌이가 있는 대전엑스포’93 포스터(좌)Ⓒ국가기록원, 꿈돌이 응용형(우) Ⓒ 대전마케팅공사
두 번째로는 형태적 참신함과 귀여움을 꼽을 수 있겠다. 꿈돌이의 형태는 공식적으로 “우리의 전통적 상상 세계에 존재해 온 도깨비와 현대 과학 문명을 상징하는 우주 아기 요정이 결합된 모습”1)이라고 소개되었다. 그런데 거기에는 재미있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사실 꿈돌이는 처음부터 디자이너가 의도한 형태가 아니었다. 엑스포 준비위원회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꿈돌이 공모전을 개최했고, 디자인전문위원들이 수월한 심사를 위해 괜찮은 작품과 그렇지 않은 작품을 분류해 둔 상황이었다. 그런데 어느 교수가 괜찮지 않은 작품의 더미에서 지금 우리가 아는 꿈돌이의 원형을 골라낸 것이다. 그렇게 “초등학생이 그린, 오징어처럼 생긴 그림”2)은 다시 전문 디자이너의 손을 거쳐 꿈돌이만의 매력을 탄생시켰다.
이상의 두 특징을 종합하면 캐릭터는 어떻게 개발되는 편이 좋겠다는 거친 결론에 이른다. 첫 번째는 다양한 모습을 개발해 생명력을 불어넣고, 응용 전략을 잘 만들어야 한다는 것. 이는 요즘 캐릭터를 활용한 상품 시장이 계속 커져서 내년에는 국내 캐릭터 IP 시장 규모가 16조 2천억 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과도 연결된다.3) 두 번째는 창의적으로, 귀엽게 잘 그려야 한다는 것. 여기에서 창의적이라 함은 마스코트를 만들 때 강박적으로 차용하는 소재 문제도 의심해 볼 필요가 있음을 뜻한다. 마스코트는 대표성을 지녀야 하고 긍정적 의미를 담아야 하기에 아주 뜬금없는 형태로 만들면 곤란하다. 그러나 일단 매력 있는 모양을 찾느라 ‘오징어’에서 우주 아기 요정이 된 꿈돌이처럼, 약간의 실험 여지가 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꿈돌이가 지금 우리 옆에 있을 수 있는 이유로는 우리 옆에 있기 때문이라는 점을 들고 싶다. 이는 캐릭터 기획과 디자인이 아닌 지속의 측면에서 꿈돌이를 봤을 때의 이야기다. 오늘날 꿈돌이가 호감을 사는 이유는, 무엇보다 그가 우리들의 시간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산리오 상품이 가득한 동네 문구점 Ⓒ 고민경
바야흐로 각자에게 어떤 시간을 떠올리게 하는 캐릭터들의 전성기다. 캐릭터의 활약을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상품으로는 품절 대란을 일으켰던 SPC삼립의 포켓몬빵을 들 수 있다. 포켓몬빵은 1998년 첫 출시 이후 2022년에 재출시되어 43일 만에 1천만 개가 판매됐다.4) 과거엔 남은 용돈을 계산하며 떨리는 마음으로 문구점에서 포켓몬빵을 구매했던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 매장에 있는 것을 다 달라는 기세로 포켓몬빵 사냥을 다녔다. 더불어 지금의 아이들에게는 포켓몬 띠부씰 수집 열풍이 불어, 사도 사도 만족할 수 없는 분위기를 형성했다. 여전한 매력으로 어른과 아이 모두에게 인기가 좋은 또 다른 캐릭터로는 마이멜로디, 쿠로미 등 산리오의 캐릭터를 들 수 있다. “헉! 나 이거 옛날에 진짜 좋아했었는데!” 작은 소품 상점에서 스멀스멀 등장한 산리오의 캐릭터들은 최근 1~2년 사이 빠르게 자리 잡아 이디야, CGV 등과의 콜라보레이션 제품으로 쉴 새 없이 등장 중이다. 이쯤 되니 쿠로미가 구면이라 반가웠던 친구들에게 여전히 쿠로미가 반갑냐고 묻고 싶긴 하다. 여하간 중요한 건 그들이 이토록 소비되는 지점일 것이다.
“폭넓은 팬층과 확고한 팬덤”, 한마디로 “장수 IP”.5) 어느 기사는 캐릭터 라이선스 사업의 첫 번째 흥행 이유로 캐릭터가 살아온 세월 자체를 꼽는다. 30년이 넘은 캐릭터는 누군가에게는 향수를 일으키고, 누군가에게는 신선함을 어필할 수 있어 다양한 연령층을 공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캐릭터나 마스코트를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다소 기운 빠질 수 있지만 무척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캐릭터를 마주할 때 제일 처음 마음을 움직이는 요소가 예쁨이나 귀여움 같은 미적인 차원이라면, 그 후에는 정(情)의 차원이 있다. 캐릭터와 인간 사이에도 시간이 필요하다. 모든 걸 해결해 줄 구원의 캐릭터를 기대하기 전에, 캐릭터와 공동체의 관계를 건강하게 이어가는 방법을 찾는 게 나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2009년에 리뉴얼되어 등장했던 노란색 해치 Ⓒ 서울시
2024년 등장한 ‘해치’와 ‘소울 프렌즈’ Ⓒ 내 손안에 서울
관계에서 가장 문제 되는 행동 중 하나는 회피다. ‘회피’는 책임져야 할 일에 책임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얼마 전 리뉴얼된 서울시의 해치를 보며 그 단어가 절로 떠올랐다. “15년 만에 새 단장”6) 이라는 기사 제목은 무슨 15년 전 해치가 150년이 되어 더 이상 쓸 수 없는 공원이라도 되는 것처럼 표현하는 듯했다. 해치의 생김새는 시각적으로 특별히 신선하지도 않았고, 해태의 특성은 온데간데 없었다. MZ세대를 겨냥한다는 설명은 가상의 MZ세대를 방패 삼아 몇 개의 지적 정도는 회피하겠다는 것으로 느껴졌다. 왜 리뉴얼을 했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아 몇 개의 기사를 더 읽었다. 지난 10년간 노란 해치의 실적이 변변치 않으니 그 책임을 그에게로 돌려 최대한 트렌디하게 바꿨다고 이해될 수 있는 내용들이었다.
네이버 디자인에는 “서울시 담당자가 들려주는 공식 캐릭터 ‘해치’ 리디자인 스토리”7) 제목의 인터뷰가 올라왔다. 댓글들에는 요컨대 일단 해태 같지 않고, 유행따라 이목을 끌려는 ‘공공기관식’ 기획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미우나 고우나 노란 해치가 자기 몫을 하는 사이, 해치를 만든 사람들이 택한 건 대책 강구가 아닌 회피와 리뉴얼이었다. 마스코트를 마주하는 사람들은 그 마스코트를 특정 지표로 알아보면 그만이고, 귀여워서 피식 웃으면 그만이다. 성과가 어떻느니, 캐릭터 활용성이 어떻느니, 그런 건 우연치않게 마스코트와의 느슨한 관계를 형성하는 이들의 영역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들로 인해 지역민들은 기존 마스코트와 한순간 이별을 겪곤 한다. 그 이별 앞의 황당함이 댓글창 곳곳에서 느껴졌다.
떠나보낸 해치를 떠올리는 사이, 전주의 캐릭터도 바꿀 계획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알록달록한 색깔로 나름의 존재감을 드러내 전주 거리에서 만나볼 수 있던 맛돌이, 멋순이와도 헤어져야 할 시간인가 보다. 다음은 무엇이 전주의 친구가 될지 궁금하기도 하고, 완성도는 어떨지 걱정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번엔 마스코트의 수명을 생각해 보자. 갓 태어난 마스코트도 귀엽고, 백 살 된 마스코트도 귀여우면 얼마나 좋을까. 트렌드에 뒤처졌다는 문제의식으로 계속 생명체를 탄생시키고 사업을 만들다 보면, 커지는 건 시민들의 추억이 아니라 피로도다. 방향성이 뚜렷하지 않을 때, 새로움의 추구는 불안의 표현에 불과하다. 마스코트 생태계는 그를 잘 보여주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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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명, 『대전 세계 엑스포, 그 감동과 환희』(서울: 웅진닷컴, 2003), 34.
2) 최은별(편집) 외, 『 새시각 #01 : 대전엑스포'93』 중 “대전엑스포'93 디자인실로부터 ― 디자이너 정석원 인터뷰”(서울: 아키타입, 2021), 160.
3) ““패션부터 식품까지…” 유통가,‘캐릭터 IP’ 협업 확대 왜?”, 뉴시스, 2024년 6월 15일, https://www.newsis.com/view/NISX20240614_0002772916
4) 메타디자인연구실, 『지난해 2022: 디자인 현상과 이슈』(서울: 에이치비프레스, 2023), 169.
5) 반진욱·조동현, “산리오·짱구·티니핑…지갑 탐하는 ‘귀염둥이’ [TREND]”, 매일경제, 2024년 2월 16일, https://www.mk.co.kr/economy/view/2024/118908
6) “서울 캐릭터 ‘해치’ 15년 만에 새 단장… ‘친구들’도 공개”, 내 손안에 서울, 2024년 2월 13일, https://mediahub.seoul.go.kr/archives/2010142
7) “서울시 담당자가 들려주는 공식 캐릭터 ‘해치’ 리디자인 스토리”, 네이버 디자인프레스, 2024년 2월 8일, https://blog.naver.com/designpress2016/223348467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