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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밤에 헤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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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의 연재코너는 편집위원들의 이야기로 채워집니다.

2023년 두 번째는 출판 편집자, 에이치비 프레스 편집장 조용범 님의 글입니다.

 



성냥 세 개를 어둠 속에서 하나씩 켠다.

첫 번째 성냥은 그대 얼굴을 보려고

두 번째 성냥은 그대 눈을 보려고

세 번째 성냥은 그대 입을 보려고 켠다

이 깊은 어둠은 이 모든 걸 내게 상기시키려는 것.

그대를 내 품에 꼭 껴안은 내게.

- 자크 프레베르, 〈밤의 파리〉


언제부턴가 모든 것이 밝혀진 것 같은 이 세상이 재미없어 보인다. 둘째 아이(초6)를 보며 쓸데없는 생각이 들기까지 한다. 이 아이는 앞으로 무엇을 하고 무엇에 가장 기뻐하게 될까? 기대보다는 걱정에 가까운 의문인데, 생성형 인공지능의 유행에 어울리지 못하는 옛날 사람이라서 하는 기우이길 바란다. 그런 바람으로 4차산업혁명이나 챗지피티는 20세기 말 내가 어릴 적 유행하던 노래(3차산업혁명과 정보화사회론)의 리메이크가 아닐까 의심해 본다. 딴생각 말고 세상의 속도에 맞춰 열심히 달리라고, 경주마의 시야를 가리는 차안대 같은 것은 아닐까? 사실 인간이 그렇게 다 알고 있을까? ‘물고기(어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책이 논픽션 베스트셀러가 된 걸 보면, 그걸 나만 몰랐던 건 아닌 모양이다. 빨리 잘 배운다는 인공지능에게 뭘 가르치기도 쉽지만은 않다고 한다. 현실은 현실이 아닌 것으로 많이도 오염되어 있으니까.


과학은 하나가 아니며1) 과학 자체에도 오류가 있음을 깨달아야2) 한다. 밤 산책을 좋아하는 나의 둘째 아이가 별빛과 깜박이는 인공위성 빛을 눈으로 좇다가 질문한 ‘밤하늘은 왜 어두울까?’에 대해 과학자들은 400년 넘게 고민해야 했다. 그 고민 덕분에 문과생 아빠라도 ‘우주가 무한히 팽창하고 있어서 우리에게 오지 않는 별빛이 있기 때문’이라고 대충 답할 수 있었지만, 그 말은 나에게도 아이에게도 아득한 말이다.


빅뱅 이후의 우주가 급속도로 팽창하면서도 일정한 형태라는 걸 유지할 수 있는 건 중력 때문이라고 한다. 내가 왜 이렇게 의심스러운 문장을 쓰냐면, 그 중력이란 주로 암흑물질(dark matter)에서 나온다는 게 지금의 과학이기 때문이다. 1933년 스위스 천문학자 프리츠 치비키가 알아낸 암흑물질이란 존재는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뭐 그래도 좋다) 그게 뭔지 규명된 바가 없다. (이럴 수가!) 게다가 1998년 미국 천문학자 사울 펄무터 팀 등은 암흑 에너지(dark energy)라는 걸 고안해 내야 했다. 여기서 암흑이란 지금의 과학 관측과 이론으로 분명히 존재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그 본질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다는 뜻이다. (맙소사!)


우리는 빛 덕분에 우주를 관측하고 이해할 수 있다. 그렇게 우리가 알고 있는 물질은 전체 우주 영역에서 불과 5%에 불과하다. 나머지 95%는 암흑 에너지와 암흑 물질이다. 우리는 잘 몰라서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게 재미있나 보다. 밤 산책을 좋아하는 그 둘째가 ‘바다는 하루종일 봐도 질리지가 않는다’고 말할 때, 우리는 너울성 파도로 입수가 금지된 강릉 해변에서 다섯 시간째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장어의 생태에 관한 어느 책에서 읽은 구절인데, ‘인간은 깊은 바다에 대해 우주만큼도 모른다.’



나사의 허블 천체 망원경이 포착한 구상성단 NGC 6544는 수만 개의 별로 가득한 모습이다.

이런 이미지는 두 대 이상의 허블 장비와 별도의 관측 데이터를 결합해 만들어진다.  Ⓒ나사 제공



카지미르 말레비치의 〈검은 원〉(1915). 어쩌면 우주의 실제. 위키피디아(퍼블릭 도메인)


디자이너이자 연구자 박고은의 인터랙티브 미디어(관객이 직접 만지거나 참여하는 매체) 작품 〈글자를 입은 소리들이 모인 지도〉는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 출렁이는 파도이기도 하다. 우주, 바다에서 주변으로 눈을 돌려 보니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든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걷기, 헤매기’ 전으로 9월 3일까지 전시)



〈글자를 입은 소리들이 모인 지도〉는 광주의 땅과 길의 이름을 보여주는 작품

하지만 지금은 부르지 않거나 잊힌 옛날 이름들이다.  Ⓒ박고은 제공



우리가 살고 있는 곳, 걷고 있는 길의 이름은 언제 어떻게 지어졌을까?

낯선 이름이 적힌 판을 작품 위에 올려 놓으면 광주 땅의 옛날 이름과 길에 얽힌 이야기가 지도와 함께 펼쳐진다.

왜 이런 이름으로 불렸는지, 지금은 왜 바뀌었는지 생각하다가 내가 딛고 선 땅에 대해서 더 깊이 알게 되기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제공(촬영 : 피스 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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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비롭지 않은 여자들》, 임소연, 민음사, 2022

2)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 곰출판, 2021

#조용범 #밤 #우주 #현실 #연결 #박고은 #인터렉티브 미디어
 섬네일 파일
필자 조용범
조용범은 출판 편집자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IT 및 출판 분야에서 여러 가지 콘텐츠 만드는 일을 하다가 2018년 출판사 에이치비 프레스를 열어 책을 만든다. 에이치비 프레스는 마치 HB 연필처럼 흔히 사용되길 바라며 조화와 균형을 지향하는 출판사다. 매체에 구애받지 않는 흥미롭고 쓸모있는 콘텐츠를 만들려고 하며, 그중 종이책을 가장 잘 만들고자 한다. 첫 책은 박찬용 작가의 《요즘 브랜드》(2018년 11월)고, 최근작은 이건해 작가 에세이 《아끼는 날들의 기쁨과 슬픔》(2023년 5월)이다.
[홈페이지] hbpres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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