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의 연재코너는 편집위원들의 이야기로 채워집니다.
2023년 첫 번째는 소설가, 서점 카프카 대표 강성훈 님의 글입니다.
한 사이트에서 산 물건을 다른 사이트에서 싸게 팔 때가 자주 있다. 그걸 알아차릴 때면 화가 난다. 다시는 그런 호구가 되지 않기를 다짐하고 검색 포털을 번갈아 가며, 또는 검색어를 바꿔가며 물건을 구매한다. 오늘도 플로어 조명을 사는 데 장장 4시간이나 걸렸다. 결제하고 나서도 또 검색한다. 혹여 더 싸고 좋은 것이 있다면, 결제를 취소하고 다시 결제하면 된다. 그러다 나는 멈췄다. 어제도 같은 경험을 했고, 일주일 전에도, 일 년 전에도 분명 똑같은 경험을 반복했다. 어쩌면 미래에도 반복할 것이다. 나는 무엇을 경험했고, 후에 무엇을 떠올릴 수 있을까?
발터 벤야민은 ‘과거는 그것을 구원으로 지시하는 어떤 은밀한 지침을 지니고 있다.’1)라고 말했다. 진보는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어느 순간에 이미 왔고, 그것을 현재에 재현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현재의 경험이 중요하다. 하루만 지나도 지금은 과거가 되기 때문이다. 즉, 지금 경험이 구원의 은밀한 지침이 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현재의 경험을 미래에 반복하며 재현해도 괜찮을까?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경험은 구원을 가리키는 은밀한 지침이 될 수 있을까? 몇몇 과거를 불러내 본다.
다시 불러낸 과거 1
여자 친구와 길을 걷다가 쇼윈도에서 자수가 곱게 새겨진 조명을 봤다. 이 조명을 음악 감상하는 방에 놓으면 왠지 음악이 더 아름답게 들릴 것만 같았다. 바로 들어가 조명을 샀다. 집에 돌아와 사 온 조명으로 방안을 밝히고 음악을 들었다. 방안에 흐르는 음악과 조명에서 뿜어져 나오는 은은한 빛이 잘 어울렸다. 역시, 조명의 가치를 알아본 서로의 안목을 칭찬했다. 저녁 늦게 괜히 인터넷으로 그 상품을 검색해 봤다. 그런데 조명 가격이 인터넷 가격이 훨씬 싸게 팔고 있었다. 그 순간 가게에서 조명을 살 때의 설렘과 흥분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여자 친구와 함께 음악을 듣던 추억까지도 말이다.
가게 주인은 나를 속이지 않았는데도, 나는 속았다는 느낌을 받았고, 가게 주인을 욕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단순히 똑같은 조명을 인터넷에서 싸게 판다는 이유 하나 때문이었다. 이 경험은 나에게 물건을 살 때는 무조건 인터넷 검색부터 하게 만들었다.
그 누구와 관계하지 않고, 오직 모니터 속의 숫자와 이미지, 그리고 누군가 올린 후기를 읽으며 싸고 좋은 제품을 사려고 시간을 보낸다. 그 많은 시간 속에는 타인과 함께하는 경험이 없다. 가성비가 좋은 제품을 사는 행위만 있다. 살면서 가장 많이 하는 행위가 소비인데도 우리는 이 경험을 너무 과소평가한다. 그렇게 내 소비 경험은 검색어로 축소되었다. 정보의 양은 늘어났지만 경험은 좁아졌다.
전주풍남문시장 Ⓒ강성훈 제공
다시 불러낸 과거 2
예전에나 지금이나 조금이라도 싸고 좋은 물건을 사려는 건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장날이면 어머니는 짐꾼으로 나를 데리고 시장에 갔다. 시장에서 직접 눈으로 보고 요리조리 따져보며 샀고, 그 과정에서 지나치는 가게도 있고, 때로는 구매자의 깎기 신공과 장사꾼의 밑지고 장사한다는 역공이 펼쳐지기도 했다. 어머니를 따라다니며 무거운 짐을 드는 보상으로 꽈배기와 호떡을 얻어먹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어머니와 상담 시간이었다.
“나 규석이랑 싸웠어.”
“왜?”
“개가 너무 잘난 척해서요. 그래서 잘난 척하지 말하고 말했더니, 그다음부터 말을 안 해요.”
어머니는 크게 웃으면 나에게 말했다.
“야, 너도 엄청 잘난 척해!”
내가 화가 나서 씩씩거리자, 엄마는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며 말했다. 그리고 규석에게 미안하다, 라고 말하라고 조언했다. 더 깊은 설명은 없었지만 나는 이해했다. 이런 대화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타인을 통해 인식하는 기회가 되었다. 특별히 어머니 말이 정답이 아니더라도,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 대해 말하는 순간 나는 그 사람을 통해서 나를 따뜻하게 인식한다. 어머니와의 장보기는 단순히 싸고 좋은 제품을 사는 소비를 넘어선 뭔가를 덤으로 얻었다.
시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는 싱싱하지 않다고 지나쳤던 채소 가게에 다시 들렀다. 그리고 그곳에서 물건을 샀다. 어머니는 채소 가게 아주머니와 앉아서 서로의 안부를 묻고, 함께 남편들의 사소한 흉을 봤다. 가게 아주머니는 한쪽에서 기다리는 나에게 달콤한 자두맛 사탕을 줬다.
제품이 조금 비싸고 질이 좋지 않더라도 이 가게는 어머니와 나를 속인 가게가 아니다. 욕심이 많은 주인도 아니다. 어머니는 가게 주인의 남편이 도박으로 빚을 져서 싱싱한 채소를 들여놓을 여유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머니와 함께한 시장행은 나에게 어떤 경험이었을까? 달콤함 사탕처럼 타인을 환대하고, 역으로 나를 환대한 경험이었다.
다시 불러낸 과거 3
처음 인터넷 게임을 했을 때였다. 처음 해본다는 말에 친구는 캐릭터 만드는 법을 알려줬다. 캐릭터는 점점 나를 닮아갔다. 친구의 도움 없이 게임을 하게 됐을 때, 나는 다른 캐릭터의 공격을 받았다. 캐릭터끼리 공격은 하면 안 된다는 규칙이 있지만, 캐릭터가 데리고 다니는 부하는 공격이 가능했다. 그 캐릭터는 내가 죽을 때까지 따라다니며 부하로 공격했다. 결국 내 캐릭터는 죽었다. 모니터 너머에서 내가 알지 못하는 누군가가 나를 직접 공격하는 것 같았다. 나는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흥분하면서 분노했지만, 분노의 대상은 없었다. 대상이 없는 분노는 내 주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나의 분노는 다른 사람, 실제 내 주위 사람에게 향했다. 상대가 보이지 않는 게임을 다시는 하지 않게 된 이유다.
서점 카프카 Ⓒ강성훈 제공
다시 불러낸 과거 4
나는 동네 서점에서 책방지기로 일한다. 작은 동네 서점은 인터넷을 검색하지 않더라도 인터넷 서점보다 10% 비싼 제품이 가득하다. 인터넷은 무조건 10% 할인에, 5% 마일리지, 그리고 책 배송까지 무료이다. 내가 책방 주인이 되기 전까지는 힘들게 차를 타고 와 10% 비싼 책을 사는 수고로움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신기하게 그 수고로움을 즐겁게 하는 손님이 있고, 그 손님 덕분에 서점이 운영된다. 그들에게는 소비가 단순히 가성비 제품을 고르는 행위가 아니다.
매번 전화로 주문하고 책을 받으러 오시는 손님과 대화한 적이 있었다.
“인터넷으로 사면 저렴하고 집 앞까지 배달해 주는데, 정말 감사해요.”
“아니에요. 제가 더 감사하죠. 오늘 길에 시장 구경도 하고 오래된 건물도 보고요. 그리고 카프카 마룻바닥 밟을 때 나는 소리가 정말 좋거든요. 저는 이게 남는 장사에요.”
책을 사는 소비가 주이고 다른 일은 덤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덤이야말로 주체와 연결된 진정한 행위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손님을 통해 내가 얼마나 관계가 사라진 소비에 함몰되었는지 깨달았다. 내가 왜 화를 냈고, 여자 친구와의 좋은 추억을 내팽개쳐 버렸는지도 말이다.
에마뉘엘 레비나스는 주체성을 ‘타인을 영접하고 대접’2)하는 행위를 통해서 만들어진다고 봤다. 타인과의 대면과 인식이 곧 주체 형성의 일차적 조건이다. 그렇다면 일차적 조건이 사라진 우리의 경험은 어떤 주체를 만들어 낼지, 어떤 왜곡을 만들어 낼지 곱씹어봐야 한다. 우리가 어떤 경험을 반복하고 있는지, 타자 없는 경험이 어떤 나를 만드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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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발터 벤야민, 『발터 벤야민 선집 5: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 폭력비판을 위하여 / 초현실주의 외』, 최성만 역, 도서출판 길, 2008
2) 강영안, 『타인의 얼굴-레비나스의 철학』 , 문학과 지성사, 2005, 4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