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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한 해 동안 《온전》을 함께 만들어나간 편집위원 네 분과 편집장이 모여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지금 하지 않으면, 사라져버릴 이야기들의 설 자리가 되어준다는 것, 연말이란 시기의 독특한 역할입니다. 한 해 동안 인상 깊었던 작업, 행사의 회고, 2022년 문화예술계의 경향성, 《온전》의 역할과 내년에 다뤄봄직한 토픽에 관해 즐겁게 대화했습니다.

 



어떤 작업, 작품, 행사를 보았나요?


허영균 : 잘 지내셨죠. 오늘은 일 년 동안 함께 해주신 편집위원 분들과 올해 어떤 중요한 문화예술 이슈가 있었는지 소회를 나누는 원고로 꾸리려고 합니다. 창작자이자 관객으로서 주목했던 작업이나 좋았던 이벤트가 있었는지 얘기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박재용 : 연말이 되니까 잡지들에서 결산하면서 올해를 마무리하는 문장을 하나씩 꼽거나 신년호에 실릴만한 소설의 글귀를 요청하는 일이 많네요. 전주국제영화제에 상을 받았던 단편 중 네 분이서 같이 만든 영상 작업이 있었는데, 오프라인으로 만난 적이 없다가 영화제 출품을 계기로 한국에서 처음으로 만나셨대요. 올해 마주친 젊은 창작자분 중에 이런 식으로 작업하시는 분이 많더라고요. 《온전》도 지역성이라는 걸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전주에 있는 독자들에게도 이런 작업을 알려주면 좋을 것 같아요. 온라인은 누구나 접속할 수 있는 건데 전주문화재단의 매체이기 때문에 서울 사람들이 잘 안 보는 듯한 이상한 느낌을 받았거든요.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수상작 <분더카머 10.0>  ⒸJEONJU Intl. Film Festival


허영균 : 중요한 지점이네요. 전주 소식만을 다룰 것 같아서 안 보는 걸까요?


박재용 : 온라인 문법 때문이 아닐까요? 서울의 작은 프로젝트도 어떤 해시태그, 리스트, 인스타 스토리를 통해서 퍼져 나가는데 그 경로를 뚫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편집위원들이 각자의 네트워크로 해야 하는 몫이기도 하겠지만요.


허영균 : 만족도 설문조사 같은 걸 해보고 싶은데 어떤 지역에서 어떤 방식으로 어떤 키워드에 연동돼서 열리는지를 체크해볼 필요가 있겠네요. 내년이면 횟수로 3년 차니까요.


박재용 : 한 달에 한 번 <BeAttitude>라는 웹진에 글을 쓰고 있어요. 왜 제게 글을 맡기냐고 했더니, 너의 글을 사람들이 많이 클릭한다고 명확하게 데이터가 말해주기 때문이다, 라고 하더군요. 구글 애널리틱스로 어떤 키워드로 어떤 사람들이 오는지를 면밀하게 보고 계시더라고요. 그런 방향을 시도해보면 좋지 않을까요.


허영균 : 좋습니다. 제람님. 중요했던 작업이나 인상 깊었던 문화예술 행사가 있을까요?


제람 : 아무래도 제 요즘 관심사인 비거니즘과 접근성 이슈를 다루거나 일부로 도입한 문화예술행사가 생각할 거리를 많이 주었어요. 처음에는 두 주제가 별개라고 생각했는데 이 둘을 접목시킨 전시나 강연이나 작업을 주목하고 있어요. 더이상 비거니즘과 접근성을 선택의 차원이 아니라 공동의 과제로 삼는 작업을 응원하고 있어요.


허영균 : 한 시절 느슨한 연대 등의 표현으로 정신적 혹은 이슈적으로 창작자들이 모이는 일에 몰두하던 시기가 있던 것 같아요. 재용님 말씀대로 비대면으로도 충분히 정서적이고 지적인 교류를 통해서 작품을 만들어내는 게 요새 경향인 것 같고요. 제람님께서 말씀하신 지점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떤 약속의 기준이 높아지면서 보편의 범위가 넓어지고 저변이 깊어진다는 생각이 들어요. 비거니즘도 그렇고 접근성도 이전에는 옵션에 불과하던 것이 이제는 기본적으로 포함되어야 하는 것이 되기도 하고요. 보편의 기준이 점점 섬세해진다는 걸 느꼈어요. 이런 걸 통해서 결국 저도 조금씩 좋은 사람이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보편성의 성숙함에 대해서 같이 말씀 나누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올해 제람님은 제가 느끼기에는 큰 작업이라고 해야 할까요? 중요한 작업을 하셨잖아요. 회고해주실 수 있을까요?



<19호실로부터> 입구 풍경  Ⓒ제람 강영훈 제공


제람 : <19호실로부터>라는 이름으로 제주에서 숙박형 전시를 하고 있어요. 11월 19일부터 한 달간 하고 있고 거기 별채 관리동에서 지내고 있어요. 하루에 한 사람만 들어와서 1박 하는 전시예요. 전시 공간 안팎에서 자기다움에 대해서 경험할 수 있는 장치들을 두고 있습니다. 아까 영균님의 말씀이 큰 배움이었는데 보편이라는 개념이 확장된다는 거. 한 사람 한 사람이 묻히지 않고 반짝이며 존재할 수 있다는 것. 예컨대 잘 듣지 못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설치된 사운드 작업에 텍스트를 음향기기 밑에다 두기도 하고요. 활동 보조인이 없으면 물리적으로 혼자가 될 수 없는 분께서 이번에 도전해보고 싶다면서 이틀을 예약하기도 하셨어요. 접근성을 고민하며 어떻게 하면 이동형 경사로나 스펀지로 편안하게 다닐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도 배움이었고요. 여성분께서 낯선 곳에서 막연하게 혼자 있다는 느낌이 두렵다고 하셔서, 사선 방향에 앞구르기 세 번 정도 하면 나오는 별채에 늘상 누가 있다고 전해드렸어요. 귀찮게 하지 않고 늘 도움을 주는 사람이 있다는 거, 또 쥐나 바퀴벌레가 나오면 방역하는 사람이 있다는 거. 그게 우아한 예술 활동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안전한 감각 안에서 시간 보낼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을 하고 있고 내년 상반기에는 기록집으로도 나와요. 예술 행사는 대개 예술계 종사자가 향유하신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그런 분이 거의 없었어요. 주부, 사회복지사, 선생님, 대학생.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하게 오시는데 그래서 반응이 더 재미있는 거예요. 보편의 확장, 또 예술이라는 경계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고 한층 넓은 범위에서 교감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가능성도 만드는 것 같습니다.


허영균 : 안전이라는 말과 보편이라는 말이 닮은 말처럼 느껴져요. 요새 다양성과 포용성에 관한 이야기가 많잖아요. 최근에 어떤 예시를 들었는데, 우리가 어떤 파티를 여는데 모두 다 올 수 있도록 설정해놓는 것을 다양성이라고 하면 포용성은 그렇게 실제로 찾아온 사람들이 여기를 즐길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물론 시혜성과는 나누어서 고민해야겠지요. 우리의 시소가 조금씩 바뀌는 지금이 바람직하다고 느껴요. 바라던 시기들이 찾아오는 것 같아요. 태건님도 올해 중요하게 생각했던 문화예술 행사나 작업, 작품에 관해 이야기 해주실 수 있을까요.


 

 

<한 뼘 미술관 - 월간 그리움> 포스터  Ⓒ박태건 제공


박태건 : 장르 간 협업이 많았던 것 같아요. 전주의 문화통신사라는 데가 있는데요. 거기에서 <한 뼘 미술관 - 월간 그리움>이라는 프로젝트를 했어요. 예전에 목욕탕이었던 공간을 활용해서 작은 미술관으로 만들었어요. 매달 다른 프로젝트로 진행됩니다. 시각예술작가가 그림을 그리면 문학 작가가 가사를 써요. 그런후에 음악가가 작곡하고 노래를 입혀서 영상으로 만드는 프로젝트였어요. 또 작년에 이어서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예술로 사업을 했어요. 전주문화재단 오디오북 사업에 선정되어서 시를 쓰기도 하고, 시립교향악단에 계신 누님과 함께 도서관에서 음악과 시낭송, 토크가 있는 행사도 했네요. 생각해보니 협업은 늘고 본업인 순문학 작품 발표는 줄었네요.


허영균 : 자발적인 협업이 많다고 느끼시는 건가요, 아니면 사업 안에서 제시된 방식으로서의 협업이 더 많다고 느끼시는 건가요?


박태건 : 둘 다인데요. 예술가가 자발적으로 모여서 으쌰으쌰 하는 분위기는 많이 사라졌고 공공기관에서 제공하는 계기가 필요한 것 같아요. 하지만 재미있거든요. 이를테면 예술로 사업은 타 장르 예술가하고 무조건 한 달에 다섯 번 세 시간은 모여서 협업을 하고 자기 씬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공유를 해요. 그게 좋은 휴식이자 아이디어를 충전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허영균 : 제람님의 <19호실로부터> 작업도 협업의 개념이라고 봐도 될까요?


제람 : 맞습니다. ‘여성’의 ‘자기다움’이 무엇일지 그리고 이를 어떻게 하면 ‘안전’하게 감각할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냐를 고민하며 한 해 동안 활동을 이어갔어요. 다양한 협업자와 만들고 배운 시간이었어요. 중간 지점에서의 우리의 생각은 그거예요. ‘여성’이 누구인지에 관한 확정된 정의는 없고, 자연스럽게 ‘여성’의 공통 감각이라는 거는 없다. 그리고 ‘안전’은 수동적이거나 방어적인 개념으로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사적인 투쟁과 적극적인 무언가일 수 있겠다는 거였어요. 생각의 전환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어요. 각자의 장기를 갖고 모인 협업을 넘어 서로 이야기 나누고 함께 만들어가면서 깨닫는 시간이어서 이전의 협업과 달랐다고 생각해요.


허영균 : 재미있어요. 여성으로서의 나의 공격성은 어느 정도일까? 타인한테 피해를 줄 가해성이 어느 정도 되냐는 걸 역산해보면 그만큼 나의 비안정성과 취약성을 구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번에 재용 씨와 저도 한 공간을 꾸리게 되었어요. 혼자보단 뭐든지 n분의 1씩 하는, 여럿이서 뭔가를 해나가는 것에 더 의의를 둔다고 얘기해주셨거든요. 비슷한 맥락에서 저희의 생각이 묶여가는 것 같아요. 현진님은 어떠셨어요?


임현진 : 생애주기에 관심을 가지게 된 해였던 것 같아요. 나는 할머니가 되었을 때 어떤 모습일까. 여전히 신나게, 재밌게 살 수 있을까 고민을 하기 시작했거든요. 주변의 할머니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종종 작품에서 생애주기를 보듬어내는 이야기를 발견하면 반가웠어요. 최근에 인스타그램에서 ‘우야다 스튜디오’의 작업을 즐겨 보고 있는데, 고정관념과는 좀 다른, 발칙하고 열정적인 할머니들의 모습을 일러스트로 그린 작업들이 주된 내용이에요. 타투를 멋지게 한 할머니라던지, 해변에서 비키니를 입고 맥주를 병째 마시는 할머니, 따뜻하고 열정적인 할머니들의 시리즈를 보면서 어쩐지 미래에 대한 위안을 얻기도 했어요. 할머니들이 행복한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고 바라기도 하면서요.



우야다 스튜디오 인스타그램  Ⓒ임현진 제공



2022 문화예술계에 짚어볼 경향은 무엇일까?


허영균 : 요즘은 서울이라는 브랜드 파워가 확연히 높아지면서 케이팝이나 한류로 묶이는 관광업을 지역 상품으로 개발하려는 노력이 보이고요. 지원의 척도를 보면 어떤 방향성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합니다. 최근 경향으로는 SF라는 것이 소재로서 서서히 등장하다가 본격적으로 제작되는 느낌을 받았어요. 특히나 공연예술계는 전반적인 유행과 항상 다른 길로 갔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경향을 보면 닮아가고 있다고 느껴요. 다른 세계로 가고자 하는 이슈가 연극계에도 반영되는 게 재밌다는 생각을 했고요. 몇 년 전에는 아트앤테크라고 해서 예술과 기술의 융합에 대한 사업도 많았는데 그게 다음 이슈로 이어지지 않는 느낌을 받았어요.


임현진 : 메타예술의 접근을 많이 발견하게 되는 것 같아요. 메타예술이라는 엉뚱한 말을 사용했지만, 사실은 예술의 목적, 방법론, 의의를 더 넓은 시선에서 바라보는 것 자체를 예술의 내용으로 삼는 작업들이라고 설명할 수도 있겠네요. 예를 들어 제가 공동운영단으로 일하고 있는 삼일로창고극장에서는 올해 ‘극장활용법’이라는 사업을 진행했어요. 극장의 존재의 이유를 리서치를 탐구하고 극장의 공간을 다르게 살피기도 했고, 극장이 누군가를 환대하기 위한 방법들을 연구했습니다. 전년도에 진행했던 ‘불필요한 극장이 되는 법’이라는 사업의 연장선상에 있기도 했는데, 극장이라는 존재에 대한 고민들을 더 많은 이들과 함께 구체화하고자 했어요. 비슷한 관점에서 신촌극장에서 했던 제너럴쿤스트의 ‘대극장짓기’라는 공연 역시 극장의 규격화가 지니고 있는 불완전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었어요. 일종의 극장 비평이라고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본질적으로는 예술의 이유에 대해 살피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요.



대극장짓기  Ⓒ제너럴쿤스트, 신촌극장


박재용 : 최근에 <언폴드 엑스(Unfold X)>라는 전시가 있었어요. 어떤 내력으로 예산을 확보하는지 봤더니 금천예술공장에서 2010년대 초반부터 진행한 <다빈치 크리에이티브>라는 프로그램과의 연관성을 언급하더라고요. 최근엔 적극적으로 해외 기관과 MOU를 맺는 단계까지 됐어요. 현 정부의 문화 정책이 그런 K-콘텐츠, 4차 산업혁명과의 융합이라 지원이 그쪽에 집중되고 있어요. 아르코 미술관도 올해 융합 페스티벌을 진행하고 있고. 그래서 미디어 작업하시는 분들이 귀해졌어요.


허영균 : 아트앤테크의 결론은 늘 비슷했다고 생각해요. 예술은 기술의 언어를 배워야 하고 기술은 예술의 언어를 알아야 하니 중간에 있는 어떤 매개자 역할이 있어야 한다. 그 중간 역할을 해줄 사람들을 어떻게 찾고 교육시키고 성장시킬 것인가에 대한 논의에 집중하는 사업은 많지 않았던 거 같아요.


박재용 : 최근에 아르코에서 융합 캠프를 진행했어요. 기술자와 예술가를 50명씩 부르고 며칠간 캠프를 하며 팀을 만든 다음에 피칭해서 그중 몇 분은 해외리서치트립을 갈 수 있게 하는 행사였어요. 아는 작가분이 꽤 보이길래 어떻게 오셨냐고 여쭈었더니 코딩할 줄 아는 미술작가 말고 진짜 코딩이 업인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좀처럼 만날 기회가 없으니까. 제람님도 4K 화면을 쓸 수 있는 타이포그래피를 만드시면 러브콜을 받을 거예요.


제람 : 안 그래도 저 역시 그 캠프에 참가할까 고민했어요. 왜냐하면 기술 분야의 전문가들을 만날 기회가 없으니까요. 아날로그적인 작업만 했다가는 왠지 설 자리를 잃을 것 같은 느낌도 있고요. 어쨌든 기금이 움직인다는 건 집중하고 주목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요. 어떻게 예술과 기술을 녹여낼 수 있을 것인가 사례를 많이 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이제껏 간간히 봤던 예술과 기술의 융합 작업은 대체로 어색해보이긴 했거든요. 시대극이었던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에 등장한 현대의 파리바게뜨 간접광고를 위해 끼워 맞춘 ‘불란셔 제빵소’를 보는 기분이랄까요? 더 자연스러운 방법은 뭐고 어떻게 잘 융합한 콘텐츠를 만들 수 있을까 그런 고민하던 참입니다.


허영균 : 올해 초에는 NFT 얘기 많이 했잖아요. 저희 매체에서도 관련 기사를 실었었고요. 지금은 어떤가요?



웹진 《온전》 제1호 NFT 관련 기사  Ⓒ웹진 《온전》 편집부


박재용 : 시장적으로는 어려운 상태 같은데 여전히 관련된 비즈니스는 있어요. 유닉스 개발자분과 아라리오 갤러리 기획자분과 몇 차례 토론하면서 느낀 건 NFT는 잘못이 없다는 거예요. 그걸 미술 작품으로 사 고파는 사람들이 잘못된 생각을 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고요. 미술품 관리 정보를 NFT화 시켜서 여러 나라의 미술관이 긴밀하게 동기화하는 시도를 하면 좋을 거 같은데. 아무래도 팔릴 것 같은 것에 집중하는 느낌이었어요.


허영균 : 작가 입장에서는 NFT에 참여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박재용 :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부캐놀이 정도로 가볍게 해보는 게 좋겠다, 정도로 접근하시는 것 같아요. 극단적인 사례를 들어보자면 얼마 전에 유명한 컬렉터가 프리다 칼로의 미술 작품을 천만 달러에 산 다음에 그걸 공개적으로 불태우고 1만개의 NFT를 발행했는데 4개만 팔렸어요. 현재는 멕시코 당국에서 수사하고 있다는데요. 그게 지금 상황인 것 같습니다.


허영균 : 온전한 오프라인 축제가 재개되면서 여기에도 변화가 있었던 거 같아요. 각자의 방식으로 축제를 만들던 사람들이 3년간 코로나를 경험하며 세세한 변화도 눈에 띄었던 것 같아요.


박태건 : SF가 대세가 되었죠. 리얼리즘이 사람들에게 통용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판타지적인 요소가 다시 부각이 되거든요, 그만큼 요즘엔 탈출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축제 이야기를 하셨는데 최근에 지자체에서 축제 준비 자문을 가면 꼭 들어가는 게 미디어 파사드하고 가상 현실이에요. 대중들은 드론쇼 등 스펙타클한 요소를 보고 싶어하고 전통적인 문화 콘텐츠를 향유하는 쪽으로는 관심을 많이 안 갖는 것 같아요.


박재용 : ‘이세계’라는 키워드로 특집을 해봐도 재밌을 것 같아요. <재벌집 막내아들>도 그렇고 몇 년 전부터 이런 장르가 유행하고 있고 SF를 가지고 오는 거랑 떨어져 있지 않은 것 같아요. 영화나 드라마에만 국한되지 않고 미술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것 같고요. 태건님 말씀처럼 먹고살기 힘들고 현실이 너무 괴로우면 사람들이 아예 다른 세상으로 가버리려고 하는 것 같다는 거랑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아요.


허영균 : 왜 그럴까요. 노력에 대한 가치를 두기 힘든 상황이라서 그런 걸까요?


박태건 : 병영에서 독서코칭을 하고 있는데 장병들에게 물어봤어요. 천국이 어떻다고 생각하냐고요. 그랬더니 답변이 ‘하루 종일 휴대폰 하는 게 천국’이라고 그러더라고요. 천국에 대해서 사람들에게 물어보면은 잘 몰라요. 천국하면 떠오르는 게 하얀 공간에서 흰옷 입고 은쟁반에 과일 쌓여 있고 할 일 없이 웃으면서 서 있는 모양. 그런데 지옥이 뭐라고 생각하냐 그러면 정말 구체적이에요. 팔팔 끓는 용광로가 있다든지 아니면 온종일 노동만 하고 있을 거라든지 지옥에 대한 이미지는 구체적이라는 거죠. 그건 천국은 상상이고 지옥은 실제처럼 느껴서 그러는 지도 몰라요. 지금 사는 게 지옥이라는 거죠.


박재용 : 충분한 사유없이 말하다간 뭇매를 맞을지도 모르지만 SF나 이세계물의 범람은 거꾸로 상상력의 빈곤 때문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현실 문제를 생각하기 어려우니 아예 존재하지 않는 곳으로 가버리는 거죠. 작업하시는 분이 들으면 엄청 화내실 수도 있지만요. 너무 직접적인 걸 보여주기엔 불편하고 또 들어야 될 사람들은 안 들을 것 같고. 그래서 아예 5천 년 뒤 같은 걸 상상해 버리는 건 아닐까 생각도 드네요.



내년에 다뤄봄직한 콘텐츠들과 《온전》 회고


허영균 : 더 짚어볼 게 있을까요. 프랑스에서도 한국 주간이 있었고 카타르 월드컵에서 BTS 정국도 멋진 모습을 보여주셨죠. 그런데 독일에서 컨템포러리 시어터 아시아를 중심으로 포럼을 하는데 한국에 대한 조명이 빠져 있더라고요. 한국이 막 세계에서 주목을 받는 느낌인데 아시아에서의 한국과 밖에서 바라보는 한국과 아시아 사이에 차이를 느껴요. 광범위하긴 하지만 다음에 다뤄보고 싶습니다.


제람 : ‘아시아’라는 상상의 지역과 공동체에 관한 관심이 늘어났는데 이게 개인적인 관심이라기보다는 흐름이라고 생각해요. 어렸을 때는 일본에 대한 열등의식이 있었는데 학교에 와서 보니 90년대생 이후로는 그런 게 없는 거예요. 나를 어떤 좌표에 두느냐에 대한 감각이 다른데 흥미롭고 신선하기도 해요. ‘아시아’라는 공간이나 공동체가 서구에서 만들어놓은 어떤 대상화, 객체화된 상상의 범위일 수도 있는데, 내가 아시아 사람이라고 정체성을 가지면 그걸 통해서 문화가 파생될 수도 있고 집단적인 행동이 될 수도 있잖아요. 최근에 인천아트플랫폼도 아트선재센터도 그렇고 아시아에 대한 새로운 정의와 다양한 접근이 예술계 안에 있는걸 보면서 이런 작업이 많이 있으면 좋겠다, 더 많이 배우고 싶다고 생각해요.


허영균 : 내년에 다뤄 봐도 좋을 것 같아요. 특히 서부권 국가에서 아시아하면 인도가 항상 먼저 제시되는 것 같거든요. 그런데 한국에선 일단 아시아 하면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생각하니까. 내셔널리티에 대한 것도 우리가 내년도에 발견할 수 있는 주제인 것 같네요. 전주도 자기 지역성을 고유하게 콘텐츠로 사용하는 곳으로서 국제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도 들거든요. 마무리로 올해 저희 온전 회고를 하면 좋을 것 같은데요. 《온전》에서 필요하고 좋았다고 생각하는 기사 내용이 있었는지, 매체로서 《온전》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요.


임현진 : 《온전》이 제시하려 했던 또렷한 주제와 관점들, 그러면서도 다양한 목소리들을 담아내는 태도가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편집장님의 글이 매 회차의 방향성을 다정하게 읽어내주어서 전체의 흐름을 읽어낼 수 있었고요. 새로운 필진들을 찾아나가는 토론 과정도 정말 흥미로웠어요. 세상에 이렇게 멋진 분들이 많다니! 내년에는 예술의 경계 안팎을 오고가며 일어나는 협업에 대해서 다뤄보면 어떨까요. 다원예술의 정의가 다양한 장르간의 혼합에 가까웠던 것으로부터 예술과 예술이 아닌 것과의 교류, 매개, 연결 등으로 확장되고 있다고 느끼는데, 예술과 예술이 아닌 분야의 협업에 대한 관점들을 살펴보고도 싶어요.


박태건 : 올해 키워드 중 하나가 ‘또 다시 일상’인 것 같아요. 일상적인 내용을 바라보는데 예전하고 다른 지점이 있는 것 같아요. 봄은 봄인데 예전의 봄이 아니다. 과거와 다른 낯섦을 발견하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코로나 이후에 어떤 문화적인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는데 그걸 《온전》에서 스케치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재용 : 이번 호에 소개될 손꼽힌님의 원고가 무척 기대됩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는 이유는 어떻게 보면 《온전》에서 섭외하지 않을 것 같은 종류의 필자를 섭외했으니까요. 문화예술계가 아니라 콘텐츠로서의 문화로 공을 받는 사람 섭외를 하고 싶었는데 연말이 되어서야 드디어 그게 이뤄졌어요.


허영균 : 저도 기대하고 있어요. 문화예술 정책 시사지라는 것에 마음을 쓰고 있었던 것 같아요. 이슈를 쫓아가거나 이슈 메이킹을 하는 매체라기보다는 전반적으로 문화예술에 관한 정책과 시사하는 바를 곁들여서 읽을 수 있는 기사여야 한다는 생각에 무게를 두었어요. 작년보다는 훨씬 안정감 있게 이루어졌던 것 같아요. 물론 내부에서 아영님이 힘써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죠. 비교적 이상적인 비율로 다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년에도 그런 포지션을 유지하면서 균형감을 가져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독자의 요구와 필요를 정확하게 타겟팅 할 수 있는 매체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해야겠어요. 홈페이지 개선을 통해서 시각적인 접근도가 좋아진 건 맞는 것 같아요. 해시태그 통일 등 더 많이 읽히기 위한 노력을 같이 더 해보고 싶고요. 전주세계소리축제 등 그간 덜 살펴봤던 부분도 보고 싶네요.


박재용 : ‘전주에 사는 예술 전공을 하고 싶어 하는 고등학생 ○○씨의 이야기’ 이런 식의 완전히 현장 종사자가 아니더라도 씬에 진입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 같은 거를 들어보면 좋지 않을까요? ‘전주국제영화제 자원봉사를 하러 파주에서 와서 3주 동안 살고 있는 누구’ 이런 접근도 좋겠고요.


제람 : 편집위원 섭외 연락을 받았을 때 처음엔 당황했어요. 문화, 정책, 시사. 이런 타이틀이 무거웠어요. 그런데 막상 다양하고 균형 있게 풀어내는 걸 보니까 저도 주변에 같이 한 번 읽어보자고 할 수 있었어요. 재미있으니까요. 개인적으로 재용님이 카셀 도큐멘타에 다녀오시면서 전주에 어떻게 접목하면 좋을지 너무 구체적인 제시를 하지 않고 여지를 줬던 게 좋았어요. 팬덤에 관한 부분을 이반지하를 경유해서 풀어주신 남웅 평론가님의 글도 좋았어요. 두루두루 좋았고 새로운 독자가 유입되는 게 반갑기도 했어요.


허영균 : 저도 그 기사 기억에 남아요. 제람님이 처음 열어주셨던 연재 원고도 의미 있었고 그것을 출발로 편집위원들의 색깔로 2022년에 잘 채워간 것 같아서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은한님이 독자로서 꽤 《온전》을 읽어주셨다고 생각하는데요. 혹시 독자로서의 간단한 한마디 청해 들을 수 있을까요?


김은한 : 즐겁게 잘 읽고 있고 제법 다양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느껴져서 저한테는 종합적으로 다양한 인사이트를 받을 수 있어 좋습니다. 전주의 문화예술공간에서 일어나는 흥미로운 행사들을 더 잘 느낄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허영균 : 감사합니다. 어느 정도 내년 목표가 정해진 것 같고 서로 잘했다고 칭찬할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19호실로부터 #보편의 확장 #문화통신사 #우야다 스튜디오 #메타예술 #아트앤테크 #또 다시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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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 박재용
박재용은 큐레이터이자 통번역가, 필자로 주로 동시대미술 현장에서 활동한다. 큐레이터, 프로듀서로서 <토탈리콜>(일민미술관, 2014), <The United Paradox>(Portikus, 2015), 제5회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 2016-17), 현대미술가 카데르 아티아의 <이동하는 경계들>(2018), 국립현대무용단 10주년 웹아카이브 등을 기획, 제작했다. 최근 출간된 번역서로 <현대미술, 이렇게 이해하면 되나요?>(2022), <무슨일선집 1>(2021) 등이 있으며, <아트인컬처>, <The Financial Times> 등 국내외 매체에 현대미술과 관련한 글을 기고한다. 시각문화의 일부이자 역사적 산물로서의 현대미술에 관심을 갖고 연구 중이며, 미술서가 ‘서울리딩룸’을 운영한다.
[인스타그램] @publicly.jaey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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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 박태건
박태건은 시인이자 문학박사다. 민족문학사연구소와 대안문화연구소에서 지역 문화에 대해 공부했다. 저서로 『이름을 몰랐으면 했다』, 『익산 문화예술의 정신』, 『봄, 기차』, 『나그네는 바람의 마을로』 등이 있으며 공저로 『마을, 오래된 미래를 담다』, 『익산, 도시와 사람』, 『익산, 종교화합의 성지를 가다』, 『전북의 재발견』, 『전북문화지도』, 『전북인물사전』, 『강을 거닐다』, 『유적 따라 이야기 따라』 등이 있다.
[이메일] madangje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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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 임현진
임현진은 독립 기획자, ‘서울아트마켓’ 협력 감독이자 ‘포항거리예술축제’ 프로그래머로 일하고 있다. 도시·공간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여러 축제, 예술단체들과 함께 작업한다. 대표 작업으로 <창작랩 프로젝트 이야기 北>, <비오는 날이면, (파전이 생각나)>가 있다. 공연을 하며 만난 세상을 이야기하고, 재미난 질문들을 찾아내는 것이 즐겁다.
[인스타그램] @myunz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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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 제람 강영훈
제람 강영훈은 제주를 기반으로 하는 시각예술활동가로 작지만 의미 있는 이야기를 조명하여 누구나 자기답게 존재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만드는 데 관심이 있다. 성소수자의 자긍심을 담은 한글 최초의 전면 색상 서체 ‘길벗체’를 만들었고,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군 복무 중 처벌과 감금 등 국가폭력을 경험한 이들의 증언을 담은 설치 및 출판 작업 ‘You come in We come out - Letters from asylum’, 제주에 온 예멘 사람들과 사귀어 배우고 경험한 바를 영상, 전시, 강연, 워크숍, 출판 등 다양한 형식의 작업으로 표현하여 관객/독자의 생애주기와 이해도에 맞는 소통을 시도하는 ‘암란의 버스’ 프로젝트를 지속하고 있다.
[인스타그램] @jera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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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김은한
김은한은 매머드머메이드 명의로 2015년부터 매년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신작을 발표하고 있다. 작고 작가와의 공동창작이라 우기며 1인극을 만들고 있다. 고약한 악질 연극을 만드는 ‘불가 버티고’로도 활동한다. 쉽고 즐거워서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작고 좋은 연극을 추구한다.
[인스타그램] @mammothmerma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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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웹진 《온전》 편집부
[이메일] jjcf_run927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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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 허영균
허영균은 웹진 《온전》 편집장, 공연예술출판사 1도씨 디렉터이다. 문학과 공연예술학을 공부했다. 연극과 무용을 만들고 그에 대한 글을 써오다 기획의 영역으로 반경을 옮겼다. 퍼포먼스성을 기반으로 하는 여러 창작 활동을 모두 공연의 일부로 보고 출판과 공연 기반의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일을 한다. 삼일로창고극장 운영위원, 웹진 예술경영 편집위원 등을 거쳐 현재 예술경영지원센터의 《더아프로》의 편집장을 동시에 맡고 있다.
[인스타그램] @1doc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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