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이라는 오픈소스 - 서사의 공동체
음악듀오 그믐은 김한나와 박성미 2인으로 구성되었다. 가야금의 ‘금’과 소리 ‘음’자를 결합한 단어로 그믐은 문자 그대로 ‘가야금 소리’를 뜻한다. 2016년 12월 결성, 올해로 5년 차를 지나고 있다. 가야금이 가지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탐구하며 하고 싶은 음악을 하자는 일념 하나로 이어지는 팀이다. 그믐은 최소 3인으로 이루어지는 가야금 앙상블의 일반적인 구성에서 벗어나, 최소한의 구성으로 최대한의 가야금 소리를 끌어내는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가야금 연주자로 느껴온 기존 연주법의 한계를 뛰어넘는 가야금 연주의 지평을 넓히려는 시도다.
Ⓒ음악듀오 그믐 제공
많은 실험적인 젊은 국악 창작자들이 활동하고 있지만, 그믐이 주목되는 이유는 ‘주법에 대한 연구’ 덕분일 것이다. 새로운 악기 편성, 실험적 작곡, 공연 연출의 창의성, 타 장르와의 협업 등 전통을 새롭게 하는 코드는 다양하지만, 가야금 연주에 있어 ‘타악기적 주법’을 시도한 작업 드물기 때문이다. 2020 서울문화재단 예술창작지원사업 선정작인 25현 가야금 프로젝트 no.1 <타랭>이 바로 그것이다. ‘타악기적 주법’은 악기의 다양한 부분을 타점으로 사용하여 소리로 담은 그믐의 실험적인 주법이다. 여타 국악기에 비해 음량이 작고, 키(Key) 조율이 어려운 악기의 한계를 주법을 통해 해소하여 가야금 연주법의 새로운 지평을 실험하는 작업이었다.
25현 가야금 프로젝트 no.1 <타랭> Ⓒ음악듀오 그믐 제공
25현 가야금 프로젝트 no.1 <타랭>은 악보집 제작은 물론 음반 발매도 이루어졌는데, 음반 제작은 텀블벅을 통해 진행하였다. 악보집은 ‘가야금 타악 악보’의 제작이라는 점에서 그 완성도를 떠나 인상적인 결과를 남겼다.
25현 가야금 프로젝트 no.1 <타랭> 악보 Ⓒ음악듀오 그믐 제공
그믐의 또 다른 주요 작품으로는 연주극 <달각달각>이 있다. 2018 경기문화재단 지역 예술지원사업 선정작으로서 가야금의 악기로서의 한계를 타파하려는 그믐의 첫 번째 시도였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극’의 성격을 띠고, 스토리와 인물을 배치한 일종의 음악극이다. 그믐의 기획공연으로 강한나와 박성미는 연주자이면서 동시에 퍼포머로 무대를 꾸렸다.
연주극 <달각달각> Ⓒ음악듀오 그믐 제공
25현 가야금 두 대를 한 명이 연주하는 <50현 가야금>, 악기 한 대를 마주 보고 두 명이 함께 연주하는 <4 Hands-가야금>, 악기에 이물(異物)을 장착하여 다양한 소리를 발생시키는 <Prepared-가야금> 등의 작품도 그믐의 실험적 행보를 보여준다.
50현 가야금 | 4 Hands-가야금 Ⓒ음악듀오 그믐 제공
그믐은 2인 협업 체제로, 두 창작자가 머리를 맞대고 멜로디 라인과 아이디어를 공유한다. 잼의 형식으로 현장에서 즉흥곡을 창작하기도 하고, 반대로 악기 없이 악보를 그려가면서 곡을 먼저 쓰는 방식도 택하고 있다. 두 명의 예술가가 팀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서로의 협업과 합의 그리고 피드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끊임없는 대화와 조율을 통해 하나의 곡, 한 편의 공연을 완성해 나간다.
가야금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악기의 발전은 온전히 연주자들의 필요에 의해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맨 처음 고안된 풍류(정악)가야금에서, 악기통과 줄 간격을 좁혀 가야금만의 속주를 할 수 있는 악기인 산조가야금, 나아가 7음음계를 모두 낼 수 있는 25현 가야금까지 연주자들이 그들의 필요에 맞게 악기를 개량해온 것이다. 우리가 전통이라 부르는 것들은, 그 시대 예술가들의 고민과 실험이 반영된 유연한 생명체인 셈이다. 이 점을 인지하는 순간 한계는 가능성으로 확장된다. 연주와 연주법, 연주의 내용, 연주를 선보이는 방식에 있어 새로운 주법과 방식을 발견하며 실용적인 국악의 실험을 지속하고자 하는 것은 연주자로의 갈증을 해소하고, 창작자로서 나아가려는 시도다. 나아가 그믐의 활동이 전통악기와 우리 음악이 동시대 예술의 한 가운데에 서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