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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전통 무용에 제동을 건 ‘댄스 브레이크’
제1호 활성화_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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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이라는 오픈소스 - 서사의 공동체

 



국악의 돌풍이 매섭다. 이전에는 연행되는 종목과 이를 앞 세대로부터 전수하여 다음 세대로 이어주는 예인의 이름들이 드높여졌다면, 2021년 현재 동시대 국악의 장은 각양각색의 그룹들이 자기의 개성을 맘껏 뽐내는 형태로 펼쳐지고 있다. 믿고 듣는 ㅇㅇㅇ, 찾아 듣는 ㅇㅇㅇ와 같은 수식어가 달라붙는 이들 음악에 대중들은 기꺼이 귀를 기울인다. 유튜브 플랫폼의 알고리즘은 힙하면서도 ‘한국적’인 느낌에 합치하는 이들 사이 관계를 귀신같이 포집해 대중들에게 제공한다. 이 글에서 필자는 대중음악 수용자의 한 사람으로서, 동시에 안무 활동을 하는 무용가로서, 이 동시대 국악이라고 불리는 현장의 한 장면에서 춤이 어떻게 추어지고 있는가를 생각해본다.


<삼고무>, 이세승  Ⓒ이강물(남산예술센터 제공)


뮤지션 박민희, 최혜원의 2인 그룹 해파리(HAEPAARY)가 발표한 <소무-독경>은 국가무형문화재 종묘제례악을 모티프로 한 곡이다. 이 곡의 공연에서 눈길을 끄는 지점은 중후반 간주에 뮤지션들이 악기 앞으로 나와 서로 열을 맞추고 춤을 춘다. 두 명은 모두 같은 동작을 행하고 있지만 각자 양손에 든 소품은 다르다. 박민희는 간척(干戚, 방패와 무기), 최혜원은 약적(籥翟, 피리와 꿩깃털)을 들고 있는데, 이는 각각 무무(武舞), 문무(文舞)를 지시한다. ‘댄스 브레이크’라고 불리기도 하는, 간주에 짜여진 안무를 보여준 후에 이들은 언제 춤을 췄냐는 듯 다시 뮤지션의 역할로 돌아가서 곡을 마무리 짓는다. 해파리 멤버들의 발언을 살펴보면 이 장면을 연출한 것이 간주에 춤을 추고 싶었고, 그저 ‘퍼포먼스’일 뿐이라고 겸양의 답을 하지만 과연 이것이 그저 ‘퍼포먼스’일까?


<소무-독경>, 해파리(HAEPAARY)  Ⓒ국립극장


무무와 문무가 포함되는 일무(佾舞)는 말 그대로 줄을 세워 추는 춤이라는 뜻을 지닌다. 일무를 연행할 때 함께 대형을 형성하는 무용수들은 적게는 4명에서 많게는 64명으로 구성된다. 무용학자 서정록에 따르면 일무에서 특히 64라는 숫자는 ‘주역’의 64괘와 조응한다.1) 주역의 기호 체계에서 하나의 괘는 여섯 개의 효가 층층이 쌓여서 이뤄지는데, 각 층의 효는 두 가지 중에 하나로 결정된다. 이 두 가지 효가 바로 양효( ___ )와 음효( _ _ )이다. 다시 말해 음과 양이 섞이고 여섯 층으로 쌓여질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가 64괘이므로, 이는 우주 원리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일무의 방향에서 좌는 양, 우는 음을 상징한다고 한다. 무무가 보통 우에서 좌로 움직임을 하여 음에서 양으로 흐른다고 할 수 있다면, 반대로 움직이는 문무는 양에서 음으로 흐른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무무의 소품, ‘간척’의 측면에서 살펴보면 오른손에 든 무기는 정의를, 왼손에 든 방패는 자비를 상징한다. 이쯤 되면 일무가 그야말로 온갖 상징의 결정체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소무-독경>, 해파리(HAEPAARY)  Ⓒ국립극장


춤의 형성, 또는 안무에 있어 상징은 필연인가? 미국 기호논리학의 선구자 퍼스(Charles Sanders Peirce, 1839-1914)의 기호 분류에 따르면, 기호는 도상, 상징, 지표(각각 icon, symbol, index)로 나뉜다. 이 중에서 상징은 다른 두 가지에 비교되며 임의적인 특성을 가지는 것으로 설명된다. 이를 쉽게 이해하기 위해 많이 드는 예가 신호등이다. 신호등의 빨강, 노랑, 초록은 각각 정지, 주의, 진행을 나타내는데, 이것들 사이의 관계는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와 문화에서 그렇게 약속한 것뿐이라는 이야기다. 이를 전제로 다시 춤을 이야기해본다면, 상징적 춤은 사회와 문화 맥락 하에서 임의의 약속에 의해 그 행위와 의미가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나아가 도상적 춤, 지표적 춤도 있지 않겠느냐는 물음이 자연스레 떠오를 수 있겠지만, 이에 대한 답은 읽는 이들의 경험이 줄 것으로 생각한다.


이어지는 또 다른 물음, 그렇다면 춤은 기호인가? 이 물음을 여기저기 던져볼 때, 춤을 바라보는 갖가지 관점들의 차이가 드러날 것이다. 하나의 춤이 기호라면, 이 춤은 어떠한 의미를 근거로 두고 있을 것이다. 반대로 춤이 기호가 아니라면, 이 춤은 근거 없는 몸짓이 된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근거 없음을 ‘비지시적’ 또는 ‘비참조적’이라는 말로 바꾸어 본다면, 동시대 춤에 대한 이야기들에서 어째서 그토록 ‘수행성’이 줄기차게 솟구쳐 나오는가가 이해될 수 있다. 독일 공연학자 피셔-리히테(Erika Fischer-Lichte, 1942-)의 유명한 책 『수행성의 미학』에서는 수행성(performativity) 개념을 미국 철학자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 1956-)를 인용하며 설명하는 부분이 있다. 재인용 하자면, “‘수행성’은 그 자체로 ‘극적인 것’과 ‘비지시적인 것’이라는 이중의 의미를 지닌다.” 피셔-리히테는 이 버틀러의 문장에서 나아가 ‘수행’이 ‘자기 지시적’인 것과 같다고 주장한다.2) 우리는 근거 없음이 ‘비지시적’인 것으로 도약하고, 한발 더 나아가 ‘자기 지시적’인 것으로 착지한 것을 목격하고 있다. 수행성의 체현, 하나의 퍼포먼스를 펼칠 때 위와 같은 지시성에 대한 우회는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는 방법이 돼버렸다.


다시 해파리의 춤에서 비롯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위 내용을 적용해보자. 해파리의 댄스 브레이크에서 나타난 춤은 그저 ‘퍼포먼스’였을까?


전통과 유희의 게임을 펼치는 국악 예술가들은 그들의 성장에서 숱하게 가면을 교체해왔다. 때로는 전통이라는 가면이 반강제적으로 씌워지기도 하고, 어떤 때는 그 가면이 얼굴에 빈틈없이 달라붙어서 가면이 얼굴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윽고 얼굴 가죽이 벗겨지는 것을 감수하더라도 기존의 가면을 벗고, 이들은 자신이 선택한, 또는 자신이 만든 가면으로 교체하기 시작했다. 이 가면의 변신술 중에는 전통 가면을 뒤집어쓰는 방법도 있다. “가면 뒤집기의 몸짓과 함께 역사의 의미는 모두 사라진다. 그러나 삶의 의미가 반드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역사와 노는 것 자체가 의미 부여의 방법이 될 수 있다.”3) 맨얼굴을 잃고, 마스크라는 가면을 쓸 때도 우리는 춤과 놀 수 있다. 춤을 통해 몸과 노는 것은 이 시간, 동시대에 의미를 던지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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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Jung Rock Seo, Korean Dance Through The Ages, 민속원, 2019, 134쪽

2) 에리카 피셔-리히테, 『수행성의 미학』 김정숙 옮김, 문학과 지성사, 2017, 51쪽

3) 빌렘 플루서 『몸짓들』 안규철 옮김, 워크룸 프레스, 2018, 142쪽

#춤 #국악 #해파리 #소무-독경 #종묘제례악 #일무 #퍼포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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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이세승
이세승은 현재 독립안무가, 공연연출가, 무용교육자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예술 종합학교 무용원에서 안무를 전공했고, 이론 공부를 이어가고 있다. ‘컨택 즉흥’(Contact Improvisation)을 다양한 사람들과 공유하는 집단 ‘쌍방’을 동료들과 함께 조직했다. 주로 큰 역사에서 작은 무용사를 오가는 리서치를 기반으로 하며, 작업 참여 구성원 사이에서 지평적 협업을 지향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대표작으로 한국무용의 섬세성을 움직임에 집중해 풀어낸 <한>(2020), 역사적 현대무용의 군무 형식에 대한 화답인 <불의 연구>(2019), 무용 저작권 이슈를 퍼포먼스 형식으로 다룬 <삼고무>(2019) 등이 있다. 2021년 하반기에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안무가 LAB”에 참여하여 탈식민 국가의 공통 정서로서 ‘원한’의 창발을 다룬 <원한의 고리>(가제) 작업을 전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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