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진태원은 「역량으로서의 장애, 관계로서의 돌봄」(장애인 권리예산 투쟁에 연대하는 마포-신촌 학술단체 모임 학술 토론회: “역량으로서 장애” 기조강연문)에서 장애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안합니다. 그는 역량이란 “문제로 정의된 사람들이 그 문제를 다시 정의할 수 있는 힘”이라고 말합니다. 철학자인 그는 이 정의에서 보편성에 대한 질문으로 나아갑니다.
“보편성이라는 것이 자연적으로 주어져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것임을 말해줍니다. 더욱이 보편성의 사회적 구성은 조화롭게, 아무런 갈등이나 다툼도 없이 누구나 모두 인정할 수 있는 중립적인 기준이나 절차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갈등적이고 심지어 폭력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보편성은 그것의 성립 조건으로서 적대와 폭력을 함축합니다. 새롭고 진정한 보편성이란, 아무런 문제가 존재하지 않았던 곳에서 문제가 드러날 때, 지금까지 문제로 여겨지지 않았던 것이 문제로 출현할 때 시작됩니다. 곧 지금까지 누군가에 의해 문젯거리로 여겨졌던 이들, 다른 이들과 평등한 이들로 간주되지 않고 무언가 부족하거나 비정상적인 이들로 여겨지고, 차별과 종속의 대상이거나 배제의 대상으로 간주되었던 이들이, 이런 취급은 부당하다고, 나 또는 우리는 비정상적인 것도 열등한 것도 아니며, 차별과 종속의 대상이 되어 마땅한 것도 아니라고 주장하고 나설 때, 진정한 보편성이 등장하게 됩니다.”
전주한벽문화관 베리어프리 수어연극 <사라지는 사람들>, 농인 · 청인배우 10명 출연 Ⓒ전주문화재단 제공
보편성에 대한 검토는 장애를 정신적 신체적 손상이나 그에 따른 능력의 결여나 결핍으로 이해한다면 과연 장애인의 범주에서 자유로운 이들이 누가 있겠는가 라는 의문으로 나아갑니다. 우리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면 상당기간 우리는 장애를 지닌 채 살아간다는 것, 그 시기를 지난다고 해도 우리가 마냥 자립적으로 살아가는 것은 아닙니지요. 인간의 삶이란 끊임없이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한 삶이며, 많은 이들의 돌봄 속에서만 인간은 인간답게 그리고 자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역량으로서의 장애예술”은 진태원의 이러한 문제의식에 동의하면서 출발했습니다. 결여나 손상으로서의 장애를 넘어 치료적 효과를 넘어 그리고 예술의 힙한 개념에 한정하지 않고, 새로운 관계와 새로운 세계를 재구성하는 장애예술에 대한 여러 이야기와 현장을 담고자 했습니다. 특히 장애예술의 실천들이 예술계 담론에 한정되지 않고 세계를 재구성하고자 할 때 지역은 그 구체적인 삶과 예술의 현장이라는 점에서 전주를 비롯해 여러 지역에서 활동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전주한벽문화관 베리어프리 수어연극 <사라지는 사람들>, 농인 · 청인배우 10명 출연 Ⓒ전주문화재단 제공
“지금 여기의 어떤 곤란함, 어떤 딜레마, 실패의 경험, 이런 것들을 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장애예술인들과 계속 협력하면서 그 길들을 모색해가는 것이 장애예술의 역량이 아닐까 생각해요. 어려움을 나눔으로써 길을 찾아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예술의 영역 안에, 예술 활동 안에서. 장애예술을 접근하다 보면 포함되지 않는 사회 문제가 없는 것 같아요. 장애예술이 그걸 다 마주하고 있는 중요한 현장인 걸 다시 발견하게 됩니다.”(이진희)
독자 여러분을 ‘장애예술’의 무궁무진한 세계에 초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