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일곱 살에 소설가의 꿈을 꿨다.
그러니까 대학을 졸업하고 전주에 있는 한 신문사에 입사하던 때였다. 조금 늦은 꿈이었을까.
낮에 출근하고 돌아오면 집안에 틀어박혀 단편소설을 썼다. 한두 시간씩 소설을 쓰고 나면 그달에 나온 신간과 시집을 읽었다. 월화수목금을 그런 루틴으로 보냈다. 물론 하루에 한 문장도 쓰지 못하는 날도 많았다. 그러나 밤이 깊도록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나면 하루가 뿌듯하게 느껴졌다. 주말이면 치명자산에 오르거나 근교의 절을 찾아갔다. 버스를 타고 소양 송광사까지 가기도 했다. 그렇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것, 그것만 한 기쁨은 없었다.
퇴근해서 일 년 동안 쓴 단편소설을 문예지 신인문학상에 응모했다. 이 정도면 당선작이라고 생각하고 계간지에서 올 전화를 기다렸다. 기다리는 시간 역시 마음을 설레게 했다. 하루하루가 기다림으로 인해 즐거웠다. 미리 당선 소감까지 생각하며 고마워할 사람들을 떠올렸다. 하지만 전화는 오지 않았다. 뒤늦게 떨어진 걸 알고, 그날부터 서점에 들러 내가 응모한 계간지를 기다렸다. 당선은 물 건너갔으니 본선에 올랐는지 보기 위해서였다. 본선에도 못 올랐으면 어떡하지. 너무 자만했던 것일까. 그간의 나를 되돌아보며 얼마를 기다렸을까.

마침내 서점에서 내가 응모한 계간지를 보게 되었다. 계간지를 집어 든 순간 가슴이 뛰었다. 본선에도 오르지 못했다면 소설을 그만 써야 하는 건 아닐까.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계간지 소설평을 훑다 중간쯤에 내 이름을 발견하고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아 다행이다. 이 정도면 소설을 써도 되겠다고 안도를 했다. 당선은 못 했지만 그에 준하는 기쁨이랄까. 그건 당선과는 또 다른 기쁨이었다. 하나의 가능성을 봤다고 할까. 즉석에서 계간지를 사서 집에 들어와 꼼꼼히 읽었다. 심사위원들이 지적한 소설의 단점을 찾아 고쳤다.
그때부터 다시 몸과 마음을 가다듬었다. 전보다 책을 읽는 권수를 두 배로 늘려 소설을 읽었다. 소설 배경으로 삼을 공간을 찾아 더 적극적으로 전주 일대를 답사했다. 하지만 첫 회사를 다닌지 오 년 만에 서울로 이직을 했다. 전주에서 오 년간의 신문사 생활을 마치고 새로운 신문사로 옮긴 것이다.
서울 생활은 전주와 다르게 바빴다. 전주에서는 늘 느긋하게 걸어 다녔는데, 서울에서는 늘 뛰어다녔다. 수많은 사람과 수많은 차를 보는 것만으로 어느 땐 숨이 막혔다. 한가롭게 걸어서 출퇴근하던 때와 달리 버스를 이용하다 보니 여유도 없었다. 순간 다시 전주로 내려갈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떠나온 곳으로 돌아갈 순 없었다. 하루에 두 번씩 버스를 타고 한강을 건너다니면서 이곳에 뿌리를 내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신문사 일이 끝나고 나면 다시 집안에 틀어박혀 글을 쓰고 주말이면 소설을 공부하러 다녔다. 하지만 공부를 하러 가는 날보다 술을 마시고 소설을 공부하는 동료들과 수다를 떠는 날이 더 많았다. 그땐 그런 술자리가 좋았다. 밤이 깊도록 술을 마시며 소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그렇게 몇 달을 보내고 문예지에 소설 응모를 했다. 이번에도 떨어졌다. 낙심할 만도 한데, 워낙 낙천주의적 성격이다 보니, 다음에 기회가 오겠지 하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런 반복되는 날들이 어느 순간 종지부를 찍었다.
문예지 두 곳에 열흘 사이로 등단한 것이다.
처음 연락이 온 곳은 ‘문학사상’이었다. 그리고 열흘 후에 연락이 온 곳은 ‘작가세계’였다.
십여 년이 훌쩍 넘어 꿈이 이뤄진 것이다.
그때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작가세계 심사위원이 두 번을 전화했는데 받지 못한 것이다. 문예지에 응모하고도 잊어버린 것이다. 될 거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한 것이다. 다행히 심사위원의 세 번째 전화를 받았다. 심사위원 선생님이 이번에 전화를 받지 않았으면 당선을 취소하려고 했다면서 농담을 했다. 전화를 끊고 등단했다는 기쁨에 혼자 미친 듯이 동네를 걸어 다녔다. 뒤늦은 당선에 두 배의 기쁨이랄까.

지금도 종종 내가 살았던 ‘전주시절’을 그리워한다. 꿈을 꾸며 보냈던 곳이라서 전주는 내게 더욱 애틋한 공간이다. 꿈이 이뤄지기 전의 공간. 소설의 뿌리가 내려진 공간. 소설의 텃밭이 되었던 공간. 내 소설 속에서 전주와 내가 살았던 진안이 등장하는 이유였다.
이제와 돌이켜보면 스물일곱 살 때만큼 봄날이었던 적은 없었다. 사람들도 푸르고 세상도 푸르고, 산과 들까지 푸르렀던 스물일곱. 문제는 늘 우리는 지난 뒤에 그 시절이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 역시 당시에는 그렇게 그 나이가 푸른 나이인 줄 알지 못했으니까.
나는 그렇게 스물일곱 살에 나의 봄을 전주에서 만들었고,
조금 늦은 나이에 꿈을 이루게 됐다.
그런 의미에서 꿈은 조금 늦게 꿔도 괜찮지 않을까?
남들보다 조금 늦게 가도 되지 않을까.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나만의 길을 가다 보면 꿈에 닿지 않을까.
일단 내일이 오기 전에 오늘 밤, 그대들도 꿈을 꿔라.
평생 지워지지 않을 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