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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비평적 팬덤을 상상하기
제4호 예술과 브랜딩 그리고 문화창조자로서의 팬_2022년 3월
내용 SNS 공유 +

SNS를 통해 전시 일정과 동선을 맞추는 일은 이제 어색한 일이 아니다. 미술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갤러리와 미술관 외에도 작가와 기획자, 컬렉터와 평론가 계정을 팔로우하여 전시장을 사전 답사하고 그들의 작업을 확인한다. 적극적인 사용자라면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과 DM을 주고받는다. 많은 SNS 중에서도 이미지가 주로 유통되는 인스타그램은 동시대 미술의 소식을 빠르게 접한다는 기능적인 효용을 갖는다. 이렇게도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이미지를 집적하고 서로 간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구조는 현대미술이 다루는 이미지의 체제, 가상과 실제의 위계가 흐려지는 지점과 공명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말하자면 SNS를 통해 미술 소식을 유통할 뿐 아니라 저변을 구성하는 주목 경제와 이미지 유통의 구조가 인식과 감각을, 몸이 행하는 수행과 시간을, 재현과 전시의 방식을 다르게 재편한다.

 

정보의 범주는 미술계로 좁혀지지 않는다. 다수의 사람들은 여느 작가의 소식보다 방탄소년단 RM이 방문한 전시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인다. 미술을 애호하는 유명인들이 특정 전시를 방문하는데 너머 그들 스스로 미술 활동을 참여하며 해외 유수 경매행사와 페어에 초대받는다. 작품이 고가에 팔린다는 뉴스는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다. 설령 이들이 미술계 뉴스의 일부라고 할지라도 주목할 점은 미술 접근이 아카데믹 교육과 담론의 울타리 안에만 더 이상 갇히지 않는 것이다. 대중적 호응의 기저에 작동하는 유명세와 팬덤은 미술의 유통에 개입하고 많은 경우 비평적 소양을 압도한다.

 


구글에서 ‘RM’과 ‘전시’를 검색하면 흥행과 관련한 기사들이 먼저 쏟아진다.  Ⓒ남웅 제공

 

당연히 SNS는 미술의 유통을 미술계의 닫힌 울타리로만 관심과 호응을 가두지 않는다. 거꾸로 유명세와 팬덤이 공인과 연예인에만 한정하지도 않는다. 소위 ‘인플루언서’와 ‘네임드’로 부르는 이들 중에는 기존의 미술작가들 또한 적지 않게 포진한다. 그들은 주류 갤러리와 국공립 미술관의 호출을 받으면서도 본인 계정에 작업뿐 아니라 자신의 관계와 취향이 반영된 이미지를 올린다. 사용자의 캐릭터와 미감을 큐레이션하고 노출하는 SNS 특성상 대중들은 그가 누구를 만나고 누구와 친한지, 미술 작업뿐 아니라 그의 관심사가 무엇인가를 확인하며 그의 미감과 취향을 알 수 있다. 그것은 확장 가능한 작품 해석과 이해를 제공한다.

 

그렇기에 본 지면에 특정 작가를 표본 삼아 인기와 팬덤을 분석하는 것은 도의적으로 옳지 않을 수 있다. 다분히 그의 작업만으로 이야기할 수 없는 영역이며, 팬덤의 배경에는 그의 사사로운 관계와 취향이 깃들어 있을 것이므로. 가십으로 소비될지라도 그의 유명세는 작업에 대한 대중의 반응을 이끈다. 이를 순수미술의 전복이나 하이브리드 등의 포스트모더니즘적 개념으로만 설명하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세태를 파악하는 영리한 작가들은 다른 동료 작가뿐 아니라 연예인과 일인미디어를 비롯하여 다방면의 아티스트와 사적이고 공적인 관계를 맺는 동시에 기업과 협업을 하는 중에도 미술가로서 거리두기와 비평적 형식의 갱신을 놓지 않는다. SNS의 여론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적당히 발을 담그고 동시에 거리를 두는 처세와 태도가, 톤과 매너가 요청되는 것이다.

 

미술과 관련하여 SNS를 바탕으로 형성되는 팬덤은 작가로서 역량만을 따질 수 없으며 거꾸로 작가의 역량을 작업 내적 범주로 한정할 수도 없다. 대중들은 그의 작업 너머 관계와 취향에 호응한다. 그것은 작가 개인 너머 그가 소속되어 있고 누릴 수 있는 자원과 그가 활동하는 인프라에 대한 선망이기도 하다. 대중들은 그의 미감뿐 아니라 그가 걸쳐 있는 미적 공동체를, 소속되어 활동하는 사적인 크루(crew)와 네트워크를, 그가 행사하는 영향력까지도 선망의 대상으로 삼는다. SNS로부터 적당히 거리를 두면서 숨김과 드러냄을 영리하게 풀어내는 처세와 더불어 사사로운 활동까지 미적 컨텐츠를 생산하는 점은 소비함으로써 생산하는 오늘의 성원들에게 더없는 매력자원일 수 있다. 물론 그것은 기울어진 관심경제 속에서 많은 미술인들에게 피로로 다가오기도 한다. 소식을 공유하기 위한 SNS의 기능은 거꾸로 소식을 따라가고 흐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수시로 접속해야 하는 부담이 되기도 한 것이다.

 

미술은 문학과 음악, 공연 등 다른 예술장르에 비해 애호가들은 많지만 어떤 팬덤이 형성되는지 파악하기 쉽지 않다. 서사보다 개념을 다루는 점이 낮지 않은 문턱이 될 것이고, 단순하지 않은 형식은 미술사적 배경이나 전문적인 이론을 요구한다. 그럼에도 여기서 오늘의 팬-타이(fan-tie)를 형성하는 문화생산자로서 역할을 꼽아본다면 컬렉터들에게 그 사례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이들에게 작품을 구매하고 수집하는 행위는 단지 투자와 소장의 목적 너머 작가뿐 아니라 갤러리, 미술기획자와 평론가들과도 관계를 맺는 행위로 연결된다. 이들의 작품 구매는 연결의 효과뿐 아니라 작가를 지원하는 채널이 되기도 한다. SNS 계정을 운영하며 자신의 취향이 깃든 전시와 작품을 소개하거나 최근의 전시들을 아카이빙한다. 예의 기록은 그의 동료뿐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도 미술의 경향을 파악할 수 있는 지표가 된다. 때때로 ‘영 컬렉터’로 호명되는 이들은 애호가의 역할 너머 전시를 기획하고 강단과 갤러리에서 다른 미술 애호가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소양을 나누기도 한다.

 

2021년 8월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에이라운지 갤러리에서 한 달 간 열린 컬렉터 릴레이전 《컬렉션: 취향의 발견》 포스터. 이준혁, 박주미, 장문태 세 명의 컬렉터들이 릴레이로 자신이 소장한 작품들을 바탕으로 전시를 기획했다.

Ⓒ에이라운지 갤러리 제공

 

최근 코로나19로 인한 락다운 속에 미술투자 붐이 다시 한 번 일면서 작품을 수집하고 유통하는 시장과 인구가 확대되는 상황은 주목할 만한 변화이다. 하지만 이들이 연결성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소비자로서 역할 외에 문화생산까지 이어지는가는 다른 차원의 질문일 수밖에 없다. 이들은 전시 소식과 방명록에 가까운 전시 인증샷 너머 어떤 문화적 생산을, 일테면 어떤 비평과 해석에 기반 한 2, 3차 생산을 하고 있는가. SNS에 기대어 만들어지는 공론은 차라리 토론을 통해 이견을 확인하고 좋은 합의점을 찾기보다 관심과 주목을 우선으로 하지 않는가. 더구나 SNS를 바탕으로 형성되는 네트워크는 대체로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30·40대 작가 네트워크와 그들에게 호응하는 이들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히토 슈타이얼의 언어를 빌려 그와 상관없이 명명한다면, 눈인사에 가까운 빈약한 결속은 빈곤한 팬덤, 납작한 공동체에 가깝지 않은가.

 

이는 미술가의 작업에 대한 열광보다도 그의 주변적인 자원과 작업환경, 보다 정확히는 그 표상과 이미지에 대한 관심이기도 하다. 그것이 ‘작가의 팬덤’으로 글을 청탁받았음에도 팬덤의 현상으로만 가둬두는데 만족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특히 최근 ‘대체 불가능한 토큰’으로 부르는 NFT(Non-Fungible Token)가 확장하는 상황에서 팬덤의 위상은 기존의 성격과는 달라지고 있지 않은가. 얼마든지 복제와 유통이 가능하다고 생각되어온 디지털 자산에 오리지널리티를 부여하고 이를 암호화폐로 거래하는 환경은 미술작품이 기존 유통해온 주체와 다른 성원들이 상이한 미감과 환경을 만들어낼 것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다. 유통시장이 이전과 다른 만큼 작품을 구매하는 주체 역시 기존 컬렉터와 다른 구성과 소속을 가질 것이며, 작품의 물성과 미감, 유통형식이 다른 만큼 기존의 미술담론 또한 올곧이 적용할 수 없는 상황은 가치척도의 기준을 불안정하게 만든다. 그 속에서 구매자들은 작업 자체의 내재적 형식성보다 작품과 작가를 둘러싼 주변적인 정보와 여론, 유명세에  영향 받을 수밖에 없다. 특정 작가의 이름을 올린 마켓플레이스에 입장해서 그의 작품을 구매하는 행위는 작가와 물심양면의 결속 관계를 만들며 새로운 팬-타이를 형성한다.

 

하지만 아이돌 팬덤도 단순히 좋아요를 누르는 수준의 추종만 하지는 않음을 기억하자. 우리가 계속해서 물어야하는 것은 팬덤 기저에 존재하는 구성원들의 역동이 아닐까. 이들은 대체 어떤 끌림에 감응하고 무엇을 필요로 하기에 팬덤을 만들고 참여하는 것일까. 인적 네트워크와 협업 가능한 풀의 확보는 오늘의 예술을 생산하는 이들에게 필요한 자원이다. 새로운 환경에서 어떤 비평적 담론이 만들어지는가를 묻는 것은 뒤늦은 질문임에도 져버릴 수 없다. 현상 너머 자원과 인프라가 기울어진 조건을 포착하고 변화하는 작가의 태도와 방법론을 살피며, 보다 나은 제작과 네트워크 환경을 만들고 제공하라고 요구하는 실천들은 비평의 오랜 역할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팬덤 안에서 비평을 나누고 담론을 만들어내지 말라는 법도 없다.

 

가령 매우 예외적이지만 우리는 팬덤 자체를 생산적 역동으로 삼는 태도를 이반지하/김소윤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 지배적 규범 뿐 아니라 퀴어적 언어의 예민함과 복잡함을 가리지 않고 꼰대 한남 아재의 허세와 허풍을 견지하며 관객을 ‘하대’하는 태도는, 외려 사람들에게 호응을 얻는다. 다시 말해 관객들은 그로부터 자신들의 기대를 가뿐하게 무시하고 어긋 내리라는 오염된 태도 자체를 기대하는 것이다. ‘감히 너희가 나를 기억하기보다는 너네는 그냥 나를 외워야 할 거’라고 말하는 초과치의 당당함은 기실 삶의 프레임을 강제하는 사회로부터 체념과 회의가 내면화된 정조에 바탕 하는 바, 추종 집단의 문법과 그들의 욕망뿐 아니라 자신이 드러내고 싶지 않을 어두운 지점까지도 섬세하게 살피지 않는다면 예의 뻔뻔함은 금세 무너지고 만다. 팬덤은 이반지하의 ‘브랜드’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로서 하나의 역할극과 게임을 수행하지만, 예의 문화적 효과는 기성 사회와 인권운동이 무겁게 생각하고 회피해온 영역들을 어쩌라는듯 개입한다. 형성된 팬덤을 두고 소위 ‘퀴어 커뮤니티’와 같은 특정 집단에 국한한 것이라는 협소한 관점도 없지 않지만 2021년 출간한 그의 에세이집 『이웃집 퀴어 이반지하』가 알라딘 독자선정 올해의 책 4위로 랭크된 사실을 차치하더라도, 팬덤 자체를 작업적 장치로 삼아 제 서사에 침잠하지 않으며 팬덤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브랜드를 구축해가는 방법론을 하위 장르의 문화로만 치부하는 것은 좁은 식견일지 모른다.

 

이반지하 유튜브 채널 ‘이반지하엔터테인먼트’(이미지 출처 : ibanjiha.com)  Ⓒ남웅 제공

 

팬덤 문화는 시장 체제에 개입하지만 동시에 예속된 환경에서 구성된다. 특정 작가와 작업에 대한 열광이 하나의 현상처럼 발생한다면, 비평은 팬덤의 현상을 포착하는데 나아가 그 배경과 맥락을 살핀다. 일테면 SNS를 통해 확산하고 생산되는 이미지 트렌드를 살피면서도 그에 추종하며 미디오커가 되기보다 SNS의 유통환경이 어떻게 나의 관계와 일상을 재구성하며 미적 판단에 개입하는가를 직시하고 이를 형식적으로 갱신할 수 있는 방향을 제안한다. 그 과정에 비평적 동료는 네트워크의 일원으로서 기본적으로 작가에게 필요한 자원과 지원이 무엇일지 판단할 수 있다. 미술계에 국한하지 않은 미술 주체를 발굴하고 연결할 수 있으며,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네트워크를 확장하여 다양한 관계의 형식들을 창안할 수 있다. 더러는 공공기관과 미술관, 갤러리와 사업체를 향해 네트워크의 기회를 요구할 수 있고 네트워크의 인프라로부터 작업의 형식을 구현하고 작업의 방법론과 그 해석을 미술 외적 영역으로 확장해 적용할 수 있다. 그렇게 관심과 소비 속에 비평적 동료를 모색하는 것이 비평적 팬덤을 이야기하기 위한 기초 작업이 아닐까. 좋아하는 작가의 전시를 찾아다니며 방명록을 남기고 인증샷을 찍으며 작품구입을 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건 비평적 관심과 참여를 위한 방식들을 마련하는 것이 아닐까 말이다.

#현대미술 #SNS #팬덤 #팬-타이 #영 컬렉터 #NFT #이반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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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남웅
남웅은 미술·시각문화 평론을 비롯한 다양한 글들을 쓰고 있다. 미학과 예술학을 공부했고 현재 성소수자, HIV/AIDS, 소수자 난민 인권 활동 등을 하고 있다. “동성애자 에이즈 재현에 관련된 논의 - 에이즈 위기부터 오늘의 한국사회까지”를 주제로 삼은 평론으로 2011년 제4회 플랫폼 문화비평상 미술비평부문을 수상하고, 2017년 “오늘의 예술 콜렉티브 - 과거의 눈으로 현재를 보지만, 얼마 동안 빛이 있는 한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로 제2회 SeMA-하나 평론상을 수상했다. 공저로는 『감염병과 인문학』(2014), 『메타유니버스 : 2000년대 한국미술의 세대, 지역, 공간, 매체』(2015), 『한국의 논점 2017』(2016)이 있다.
[이메일] 0123te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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