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동생 만세는 춤을 추는 사람이다. 어릴 때부터 춤을 췄고, 살면서 만난 대부분의 공간에서 만세는 춤을 추는 사람으로 소개되거나 기억되곤 한다.
댄서라고 소개하지만, 충분히 춤을 추지 않는 것, 아니 춤을 출 수 없는 것, 그것은 커다란 무력감을 동반한다. 한국은 만세의 춤을 자꾸만 조여왔다. 대안학교 출신의, 무용학교 입시에 유용한 교육을 받지 않은, 당장의 생계가 아무래도 중요한 댄서에게 춤을 출 수 있는 공간은 한정적이었다.
Ⓒ성지윤 제공
만세는 학교에 가고 싶어 했다. 충분히 훈련하고 교류하며 자유롭게 성장할 공간이 필요했다. 그렇지만 학비를 생각하면 쉽게 선택할 수가 없었다. 대신 여러 프로젝트에 합류해 공연을 올리곤 했는데, 작업자의 포지션으로 공연을 하는 것은 늘 부담이었다. 스스로 부족함을 발견하는 와중에도 결과물을 내야 했기 때문이다. 자존감을 굳건하게 세워서 흔들리지 않는 댄서가 되고 싶었다. 그럴 때마다 교육을 받고 싶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시간을 들여 입시를 준비한 사람들과 만세의 몸은 무척이나 달랐다. 만세의 주특기는 ‘만딩고’ 댄스이다. 서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의 전통춤을 주로 추는 무용 단체 ‘쿨레칸’에서 활동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학교에 가려면 발레나 현대무용을 배워야 했다. 입시시험의 종목이 그렇다. 학원에 다녀보려 하니 최소금액이 아르바이트 한 달 치 월급이었다. 학원비로 몽땅 내버리면 생활을 할 수가 없었다. 모든 학원에 전화를 걸어 조금 더 저렴한 금액에 다닐 수는 없는지 알아보았지만, 번번이 거절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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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력감과 우울함이 찾아오는 빈도가 잦아졌다. 그러던 중에도 만세는 틈틈이 외국의 대학교와 아카데미에 지원했다. 코로나19로 해외 댄스 아카데미 대부분이 오디션을 영상 서류접수로 진행하고 있었다. 오랜 고배 끝에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독일 베를린의 댄스 스튜디오 ‘d.a.r.t’에 합격을 한 것이다.
‘d.a.r.t’는 프로 댄서 혹은 무용과를 졸업한 댄서들이 트레이닝을 하는 곳이다. 그런 곳에 합격하다니, 연달아 불합격 소식을 듣던 와중 눈이 휘둥그레지는 소식이었다. ‘더 이상은 못 추겠다’라는 생각이 들 때까지 춤을 추고 싶다던 만세에게 ‘많은 사람이 지쳐서 나간다. 끈기와 열정이 있는 사람을 원한다.’라는 소개 문구를 붙인 댄스 아카데미에서 연락이 온 것은 여간 신나는 일이 아니었다.
기쁨도 잠시, 만세의 어깨는 부담으로 짓눌리기 시작했다. 팬데믹 시기에 독일에서 장기체류를 할 수 있을지, 숙소는 어떻게 구할지, 영어 공부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의 끝은 늘 돈 걱정이었다. 그렇게나 고대하던 합격 소식은 되려 만세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입학까지는 약 3개월이 남았고, 유학에 필요한 돈을 마련해야 했다. 내가 공장에 들어가 쉬지 않고 일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만세도 그렇게 마련된 돈을 편하게 받지 않을 사람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근심 가득한 만세 앞에서 내가 불현듯 외쳤다.
“후원을 받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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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심은 필요하지 않았다. 우리 남매는 꽤 지쳐있었던지라, 같이 움직여줄 친구들이 필요했다. ‘조금만 도와줄래?’라는 부탁에 기다렸다는 듯이 발 벗고 나선 까르, 화경, 소라는 기획과 공연에 선수들이었다. 순식간에 만세의 유학을 알리는 글이 올라갔다. 프로젝트를 테마로 하는 음악과 뮤직비디오가 만들어졌고, 후원콘서트를 준비했다. 그렇게 ‘만세! 유학 가자!’ 모금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모두의 마음은 같았다. 춤 보석 만세가 어처구니없는 현실에서 깎여나가지 않을까 마음 졸였는데, 만세를 부르는 학교가 있다니 온 마음을 다해서 도와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만세야, 더 이상 유튜브 보면서 입시 준비하지 마. 네가 한국에서 흘리는 눈물이 너무 아까워. 독일에서 너의 춤을 찾고 든든한 동료들을 만나. 돈 걱정은 하지 마. 우리가 모아볼게.
순식간에 800만 원이 넘는 돈이 모였다. 만세는 입금자목록을 확인할 때마다 눈물에 젖었다. 다를 바 없는 상황에서 고군분투하며 살고 있는 친구들의 쌈짓돈이 차곡차곡 모여있었기 때문이다. 농담 반 진심 반으로 “돈 많은 어른들에게 후원해달라고 하자”라고 한 것이 무색하게, 곁을 지켜주던 친구들의 마음만으로 목표액의 80퍼센트가 채워졌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만세와 춤으로 연결된 친구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프로젝트를 후원했다. 아프리칸 댄스컴퍼니 ‘따그’의 유리 그리고 훌라 댄서 하야티는 춤 수업 수강권으로, 커피를 만드는 퍼커션 연주자 고고산산은 직접 내린 커피로 후원금을 모으는 것에 합세했다. 얼굴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SNS에서 소식을 듣고 콘서트에서 나눌 음식의 재료를 지원해주거나 필요한 집기를 빌려주었다. 사진과 영상을 하는 친구들은 개인 작업에 바쁜 와중에도 카메라를 들고 와 콘서트 현장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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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를 위해 과정을 희생하는 것에 익숙하던 나와 만세는 의아했다. 즐거운 과정은 결과 또한 만들어내는구나. 유학은 만세가 가는데 십시일반의 기적을 지켜보며 더 큰 희망을 품고 가는 후원자들이 보였다. 이 넘치는 응원은 모두 어디에서 오는 걸까? 이 사랑을 받아도 되나? 후원콘서트에는 만세가 처음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소식을 듣고 응원하러 왔다고 했다. “초면에, 응원합니다”라는 말에 울고 웃으며 모금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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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세가 베를린으로 간 지 4개월이 흘렀다. 그곳에서의 만세는 어쩌면 한국에 있을 때보다 더욱 외로울지도 모르겠다. 그럴 때마다 친구들이 한 말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보답할 생각은 하지 말고, 네가 그토록 하고 싶었던 것, 배우는 것에 집중하라고. 우리의 후원은 네가 그동안 사력을 다해 춤을 춘 것에 대한 믿음 그 자체라고. 지금 받은 사랑과 응원의 감각을 잘 기억해두었다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도울 준비가 된 사람이 되자고.
‘만세! 유학 가자!’ 프로젝트에서 용기를 얻은 것은 비단 만세뿐만이 아닐 것이다. 상호부조의 기적을 아는 삶과 그렇지 않은 삶은 확연히 다를 것이라 믿는다. 우리의 모금 프로젝트를 지켜본 사람들이 각자 마음에 비슷한 모양새의 씨앗을 품었으면 좋겠다. 그 씨앗의 이름은 다양할 것이다. 어떤 이름으로 어떻게 싹틔워지든, 더 많은 우리를 불안으로부터 지켜줄 울타리가 되어줄 것이다.
만세의 베를린 유학 자금 모으기 프로젝트는 linktr.ee/lets.go.manse에서 더욱 상세히 살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