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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새로운 배리어프리 영화에 관한 상상 : 음성해설
제15호 역량으로서 장애예술_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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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리어프리 영화는 단지 장애인을 위한 맞춤형 서비스 차원뿐 아니라 영화의 새로운 형식을 예고하는 영화론이라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기존 방식의 한계점은 뭘까. 이미 만든 영화에 사후적으로 덧입히는 배리어프리 작업은 완성도 면에서 아쉬울 수밖에 없다. 음성해설은 들어갈 틈이 너무 부족하고, 자막해설은 청각적 감각을 번역하는데 한계가 있으며, 수어자막은 어쩔 수 없이 화면 일부를 가리게 된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뭘까? 영화의 기획 단계부터 배리어프리 요소를 고려해서 제작하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배리어프리 요소는 영화의 부가 서비스가 아니라 영화 구조를 지탱하는 핵심적 역할을 하게 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영화를 비롯한 모든 컨텐츠가 지금 당장 새로움을 추구할 수는 없다. 포괄적 접근성을 위해 기존 방식의 배리어프리 작업도 여전히 중요하고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또 기존 방식을 충분히 연구해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단순한 미학적 목적만으로는 새로운 배리어프리에 관한 상상도 불가능하다는 점을 먼저 일러두면서, 음성(화면)해설에 중점을 두고 새로운 방식을 살펴보고자 한다. 



 ‘피아노 프리즘’ 포스터 Ⓒ오재형 제공


1. 인물 대사에 음성해설을 포함하기


음성해설은 전맹 시각장애인을 기준으로 제작한다. 즉 오로지 청각으로만 가능한 영화로 재구조화 시키는 작업이다. 그런데 기존 방식처럼 이미 만들어진 영화에 음성해설을 입히면 그만큼 여백이 없어져 답답해진다. 또 오디오에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음성해설 목소리가 제3자의 위치에 있는 것도 완성도 면에서 아쉬운 대목이다. 이를 해결할 방법 중 하나는 각본 단계부터 주인공 대사에 음성해설 요소를 넣는 것이다. 

넷플릭스 영화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에 이 같은 방식이 잘 나타나 있다. 등장인물은 '굳이' 상황을 묘사하면서 극을 진행시킨다. 기존 극영화와는 다른 특유의 연극적 느낌을 준다. 자신의 행동이나 상황을 객관의 언어로 설명하는 낯설고 묘한 감각이다.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자신의 속마음을 내뱉기도 하는데, 이는 주관적 감정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음성해설의 대원칙을 뛰어넘는 역할까지 자연스럽게 수행하게 된다는 점에서도 인상적이다.  

다큐멘터리라면 기존 내레이션에 음성해설 요소를 섞어서 대본을 쓰면 어떨까? 내가 연출한 영화 <피아노 프리즘> 후반부에서 이를 시도했다. 자조적인 에세이 형식의 말을 내레이션으로 내뱉으면서 중간 중간 행동과 상황 묘사를 곁들였다. 이런 발화 방식이 변주되고 발전된다면 어떨까. 음성해설을 처음부터 통합된 언어 구조로 섞는다는 것은 영화 문법을 재구성하는 새로운 음성언어 모델로 자리 잡을 수도 있다. 


‘인사이드 아웃’ 포스터 Ⓒ오재형 제공


2. 음성해설에 캐릭터 부여하기

통합적 관점에서 기존 음성해설의 약점이라면 영화 속 인물행동을 '구구절절'하게 설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구구절절 그 자체를 주요한 음성해설 컨셉으로 삼으면 어떨까? 구구절절을 하나의 수다쟁이 음성해설 캐릭터로 심어놓으면 어떨까? 성수연 배우가 연출한 연극 <B BE BEE>에서 이런 번뜩이는 설계를 했다는 발표 사례를 들었다. 마치 영화 <인사이드 아웃>의 아이디어와 비슷하다. 관찰예능처럼 한 인물의 행동에 여러 자아를 가진 음성해설 캐릭터를 영화 내부에 배치한다. 가령 인물이 분노할 때만 등장하는 음성해설 나레이터가 있고, TMI를 연발하는 수다쟁이 내레이터가 등장해 음성해설도 하고 캐릭터로서의 위치성도 가진 두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스트레인저 댄 픽션’ 포스터 Ⓒ오재형 제공


3. 상호작용하는 음성해설


음성해설을 고유한 성격을 가진 캐릭터로 설정하는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영화 <스트레인저 댄 픽션>이 흥미로운 힌트가 될 것 같다. 이 영화에서는 어떤 정체불명의 목소리가 영화 초반부터 주인공 행동을 묘사한다. 마치 음성해설과 비슷하다. 하지만 이 내레이션은 주인공의 귀에 직접 들린다(!) 그 목소리는 상황묘사를 넘어 주인공의 미래까지 예측하게 된다. 당황한 주인공이 이 환청(?)의 정체를 찾는 내용이다. 이처럼 음성해설이 영화에 깊숙하게 관여하며 등장인물과 상호작용한다면 음성해설은 더 큰 영화적 상상력을 불러일으킬 접근성 요소가 될 것이다. 

 

​광주극장에서 열린 무성영화 ‘청춘의 십자로’ 무대 Ⓒ오재형 제공


4. 변사의 부활


"아, 눈물 없이는 볼 수 없고..." 로 시작하는 변사의 멘트를 유심히 들여다본다. 1920-30년대 무성영화 시절, 변사는 영화와 관객을 적극적으로 연결하는 매개자였다. 변사는 인물의 대사뿐 아니라 장소와 행동을 묘사하고 맥락에 따른 감정까지 해설했다. 음성해설의 시초는 바로 변사가 아닐까? 나는 접근성 관점에서 변사의 부활과 재해석을 제안한다. 변사는 건조한 제3자의 객관적 해설자가 아닌 적극적으로 영화를 해석하는 주체였다. 또 변사는 영화의 보조적 장치가 아니라 그 자체로 영화의 일부였다. 변사의 능력과 인기에 따라 영화의 흥행마저 좌우된 경우도 많았다. 음성해설이 단순한 정보전달 번역이 아니라 2차 창작의 영역(팬을 몰고 다니는)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주목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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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미지 썸네일 이미지
필자 오재형
주요 연출작으로는 피아니스트로 변신하는 자전적 이야기를 다룬 <피아노 프리즘, 2021>,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던 어머니의 일생을 다룬 <양림동 소녀, 2022>, 더 아름답게 살고 싶은 장애 무용수의 삶을 그린 <소영의 노력, 2024>이 있다. 부산국제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등에서  상영한 이력이 있다. 배리어프리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이메일] owogu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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