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과 ‘연결’을 전제로 하는 예술 활동은 코로나19의 장기화에 따라 뿌리부터 흔들리는 경험을 했다. 일부는 무너지고, 일부는 훼손되었지만, 예술가와 예술계는 새로운 방식의 시도, 기술의 적용, 연대와 협력을 통해 스스로 재건하는 방식을 배웠다. ‘어쩔 수 없는’ 선택들은 예술의 근본을 돌아보게 하였고, 지켜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들을 일러주었다. 이 글은 코로나19를 통해 예술가와 예술계가 획득한 새로운 조건과 기술에 관한 대화를 정리한 것이다. 미디어아트, 공연예술, 공간 운영자의 입장에서 경험과 예측을 바탕으로 예술과 기술의 융합을 위한 중간 매개자의 필요, 예술가가 기술을 강요받지 않고 주체적인 창작 활동을 이어갈 방법 등이 화제가 되었다.
2020년과 2021년, 경험한 것과 바뀐 것
허영균(본지 편집장, 이하 허영균) : 안녕하세요. 전주문화재단 웹진 《온전》의 편집장 허영균입니다. 약 2년째 코로나19의 영향 아래 있습니다. 때때로 암울함과 참담함을 느끼면서도 그에 못지않은 깨달음과 배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온전》 창간호의 주제를 ‘활성화’로 정한 것은 이 고된 시간 속에서도 새롭게 발견한 것들이 있고, 이것이 침체한 예술을 약동시키는 힘이 되리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지금 이 시간을 긍정의 눈으로 함께 점검하기 위해서 선생님들을 모시게 됐습니다. 함께 해주셔서 무척 고맙습니다. 자기소개와 함께 인사를 부탁드립니다.
| |
|
|
| |
왼쪽 첫 번째부터 허영균, 김소라, 허대찬, 김주원 Ⓒ안호영 제공
허대찬(미디어문화예술채널 앨리스온 편집장, 이하 허대찬) : 미디어문화예술채널 앨리스온(aliceon.net)의 편집장 허대찬입니다. 앨리스온은 2004년 활동을 시작한 매체로, 미디어아트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웹진이자 네트워크, 콜렉티브입니다. 저는 미술이론 전공을 기반으로 미디어아트와 디자인 분야를 연구했고 이를 기반으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기술이 인간, 문화와 연결되었을 때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는가 그리고 그 결과가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에 집중해왔습니다. 최근 제주문화예술재단에서 3년 연속 사업으로 융복합교육 기획 및 운영과 실행 관련 활동과 더불어 현대자동차 제로원(ZERO1NE)에서 크리에이터와 함께 기술과 접목된 문화예술 혹은 창작활동 전문 멘토로 활동 중입니다. 최근에는 가상현실이라는 또 하나의 세상이 밀접하게 다가오면서 그 안에서 벌어지는 여러 활동이 어떤 식으로 발현되는지 바라보는 중입니다. 네트워크 공간에 대한 감흥과 미감 자체가 많이 변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김소라(아트컴퍼니 두루 극작가, 이하 김소라) : 2009년 극단 두루를 창단하여 운영하는 김소라입니다. 전주에서 활동하며 뮤지컬, 판소리극 등 음악을 활용한 창작극을 만들고 있습니다. 2016년 신진예술가로 선정된 후 지역에서 뮤지컬 활동을 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2017년 서울에서 아르코한예종 뮤지컬창작아카데미 포스터를 보고 본격적으로 뮤지컬 공부를 시작했고, 다가오는 9월에 우란문화재단에서 공연을 앞두고 있습니다.
김주원(배우·삼일로창고극장 운영위원, 이하 김주원) : 배우 김주원입니다. 삼일로창고극장 공동운영단으로 활동하고 있기도 합니다. 배우라는 정체성보다는 기획, 연출 등 포지션의 제약 없이 자유롭게 창작하는 편입니다. 극장 등 공간 운영에 관심이 있고, 극장의 안과 밖에서 사람들이 함께 존재하는 방식을 자주 생각합니다. 코로나19 이후 새로운 담론과 입장을 원하는 요구가 무수히 있었습니다. 오늘 서로 다른 공간과 지역에서 활약하시는 분들을 만나 기대가 됩니다.
허영균 : 사스, 메르스 등 이전에도 코로나19 같은 전염병이 있었습니다. 코로나19의 차이는 극장, 미술관, 공연장 등의 예술이 감염의 결정적인 매개가 될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합니다. ‘극장, 전시장은 위험한 공간’이라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 것이죠. 코로나19가 생각보다 길어지면서, 이에 대응해서 다양한 경험치를 각자의 자리에서 쌓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김주원 : 저의 삼일로창고극장 공동운영단의 임기와 함께 코로나19가 시작되었습니다. 많은 기대를 품고 활동을 시작했는데, 소규모 그리고 저자세로 기획 프로그램을 상상하고 진행해야 한다는 점에서 어려움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에 익숙해져 버렸죠. 극장을 운영하는 입장이 아니었다면 창작자로서만 이 시기를 겪었을 것이고 그랬다면 지금과 같은 온도와 태도로 코로나19를 바라보긴 어려웠을 듯합니다. 매일매일 각종 지침과 속보, 공문들을 확인하며 줄타기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허대찬 : 우선 외부에서의 변화를 이야기해볼 수 있습니다. 기술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많은 담론이 있었지만, 오늘의 이 상황이 대중들이 그것을 피부로 체감하게 된 시발점이 된 것 같습니다. 기술, 변화가 우리를 매혹해서 끌어당겼다기보다는 코로나19가 떠민 상황이라는 점이 재미있습니다. 교통과 통신이 이렇게 발달해있지 않았다면 코로나19는 지금처럼 퍼지지 않았을 거로 생각합니다. 그 발달한 통신망과 매체 덕분에 팬데믹 대처를 위한 지침들이 일상 깊숙이 다가오기도 하였고요.
이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쏟아졌기 때문에 우리는 패닉을 겪었습니다. 서로 만나선 안 된다는 것이 주된 지침이었기 때문에 공연을 비롯한 예술 활동의 결과물을 만나는 것이 원칙적으로 차단이 됐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너무나 뻔하지만 어쩔 수 없이 택한 해결책은 두 가지, 하나는 영상 제작이고 하나는 가상공간에서의 행사였습니다.
코로나19 상황의 초반에는 미술관에서의 전시를 다룬 방식으로 큐레이터가 전시장을 순회하며 도슨트 촬영을 하는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호흡도 길고, 정말 지루했죠. 가상 전시 또한 미술관의 전시장 공간을 3D 스캔을 하거나 전시장을 촬영한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이런 결과물이 과연 실제 현장에서의 전시 경험을 몇 퍼센트나 따라갈 수 있을까요? 작년까지는 핑계와 변명이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내년에는 달라져야겠죠. 다음 단계를 위한 준비가 당연히 필요하고 문화예술계는 이미 그런 준비를 시작해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신우(독립 프로듀서, 이하 김신우)1) : 코로나19가 발생한 이후 일차적으로는 모든 공연예술가가 공연의 핵심인 일시성과 현장성, 현존감을 어떻게 영상과 스크린으로 번역해낼 수 있을까의 과제에 직면했고, 그 과정에서 무력감을 느끼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지난 1년 반 동안 만난 대부분의 작가들이 영상으로 촬영되고 스트리밍되는 결과물을 만족스러워하지 않았어요. 특히 신체의 움직임이 중요한 공연에서는 그 운동성을 카메라가 포착해내기 어려웠고, 사운드의 몰입감이 중요한 공연에서는 각 관객이 작품을 관람하는 장소의 음향 환경을 컨트롤 할 수 없다는 어려움이 있었어요. 작가마다 어떤 전략들을 찾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영상 촬영, 편집, 사운드 구현에 관한 고민이 활발해진 것으로 알고 있어요.
하지만 언제나 마찬가지로 어떤 예술가들은 아예 주어진 틀에서 벗어나서 탈출구를 찾아내는 것 같고, 프로듀서로서 그것을 옆에서 함께 지켜보고 지원하는 것이 즐거운 시간이기도 했어요. 예를 들어 마텐 스팽베르크라는 스웨덴의 안무가의 4인조 무용 작품을 옵/신 페스티벌에 초청하려고 했는데 코로나19가 발발했어요. 팬데믹 상황에서 온라인/스크린을 경유하지 않고 가능한 연결 방식에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다가 다음과 같은 구상이 나왔어요.
“4인조 무용 작품을 만든다. 2명은 베를린에, 2명은 서울에 있다. 춤은 두 도시의 공원이나 길거리, 광장 등 코로나19로 제약을 받지 않는, 사유화되지 않은 공공장소에서 펼쳐진다. 각각의 퍼포머는 서로 다른 스코어를 받는데, 단순한 시퀀스의 반복으로 이루어진 이 스코어 4개가 합쳐져 하나의 완성된 안무가 된다. 한 시간 남짓의 이 안무는 때로는 네 명의 군무이기도 했다가, 때로는 솔로, 듀오, 트리오로 변주된다. 공연은 서울과 베를린에서 완벽히 동시에 시작하고 동시에 끝난다. 서울에서는 해 질 녘 즈음인 오후 5시에 시작하고, 베를린은 해가 뜨는 아침 9시에 시작한다. 관객, 혹은 행인들은 근처에 붙여져 있는 QR 코드에 접속해 스트리밍 되는 음악을 들을 수는 있지만, 베를린에서 춤을 추고 있는 무용수들의 모습은 볼 수 없다. 네 명이 함께 춤을 추는 모습은 오직 퍼포머와 관객의 상상 영역에 남는다. 물리적으로는 ‘단절’되어 있는 존재들 간의 정신적인 연결망이 지구를 가로지르는 스케일로 확장된다.”
좀 뜬구름 잡는 얘기처럼 들릴 수 있지만, 코로나 시대라고 해서 모든 것이 실시간으로, 온라인으로 연결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다른 방식의 대면과 연결을 고민하는 것, 우리가 알던 것과는 다른 시공간, 다른 감각의 경험을 만들어내는 것도 예술가의 역할일 수 있을 것 같아요.
마찬가지로 극장이나 미술관이라는 고정된, 그 자체로 어떤 위계이자 표준이 된 예술 공간들을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였어요. 옵/신 페스티벌 2020은 한강의 난지마리나나 용산 가족공원, 문을 닫은 밀가루 공장(대선제분), 덕수궁처럼 열린 공간에서 열렸어요. 똑같이 극장을 쓰더라도 무대와 객석이 아니라 계단이나 바깥 벤치, 창고 같은 곳에서 관객과 퍼포머가 1:1로 만나는 식의 경험을 만든 작가도 있었어요. 코로나19가 아주 많은 장을 닫았고 분명히 예술의 장이 좁아진 것은 틀림없지만, 동시에 그 틈 사이로 예술을 위한 새로운 장들이 열릴 가능성을 엿봤다고 생각해요.
허영균 : 100% 공감합니다. ‘대처로서의 예술’은 이미 지나간 것 같아요. 대안, 대안을 넘어선 형식적 발견, 새로운 예술의 틈들이 발견되고 있는 듯합니다.
돌아온 전성기 또는 기술 강요의 시대
허대찬 : 약 3~4년 전부터 융복합이라는 키워드를 많이 썼습니다. 가상의 기술을 이용하여 문화예술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며 많은 지원금과 투자가 쏟아졌고 그만큼 그에 대한 집중과 실행은 가속되었습니다. 하지만 대세는 되었지만, 유행 이상이 되지는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2000년 즈음에도 우리나라 IT 산업이 강조되면서 미디어아트의 유행이 찾아왔습니다. 현재가 그 현상의 재림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때처럼 놓쳐버릴 것이냐 혹은 제대로 판을 조성하여 또 다른 흐름을 잡아낼 것인가라는 기로에 놓여있습니다.
허대찬(미디어문화예술채널 앨리스온 편집장) Ⓒ안호영 제공
허영균 : 제 경험에 비춰보면 중간자가 없어서 생기는 일들인 것 같습니다. 기술 전문가와 예술가들이 이런 유행 현상 속에서 잠깐 만났다 헤어지길 반복하고 있으니까요. 누군가 연결을 해주었기에 만났고, 스스로 서로를 만날 수 있는 길은 묘연하죠. 하나의 유행이나 경향이 현상에 멈추지 않고 계(界)안에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중간 단계의 매개자들이 필요합니다. 기술 영역의 전문가들에게는 예술에 최소한의 흥미가, 반대로 예술가들은 기술에 대한 이해가 조금이라도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기관의 지원사업이나 정책에 의해 일시적으로 뭉쳤다 헤어지기 때문에 지속하긴 어렵죠. 두 영역을 동시에 이해하고, 양측에서 플레이할 수 있는 사람들이 길러지지 않는다면 반복될 일이 아닐까요?
김신우 : 기술 기반 예술이 몇 년 전부터 정부의 기조에 따라서 집중적으로 추동되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 것 같아요. 하지만 그런 대규모 지원사업들이 성과가 좋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갑자기 쏟아지는 기금 때문에 단기간에, 일회성으로, 인위적으로 매칭된 기술자와 예술가들의 협업 프로젝트들이 성과를 낼 수 있는지도 의문이고요. 만약에 정말 이 모든 자원의 투여가 유의미한 궤적을 만들어내려면 훨씬 더 장기적인 접근이 필요할 것 같고, 그 지속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획자나 기관과 같은 중간 매개자의 역할이 필수적이에요.
하지만 또 동시대 예술가들이 기술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모종의 필연성도 분명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오늘날 이미 기술은 어떤 독립된 분야가 아니라 일상의 모든 영역에 깊숙이 녹아 있는 것이고, 사회, 정치, 경제, 문화 전 분야의 문제를 바라봄에 있어서 기술의 문제를 간과할 수 없으니까요. 중요한 지점은 예술이 기술을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 혹은 기술을 이용해서 또 다른 스펙터클을 만드는 것에만 머무를 것이냐, 아니면 기술을 수단으로 삼아 다시금 기술과 관련된 여러 문제를 비판적으로 성찰할 것이냐의 문제인 것 같아요. 올해 3월 저희가 복합문화예술공간 행화탕에서 개최한 <가상정거장>에서는 후자의 작가들에 조금 더 집중해보았어요. VR부터 인공지능, 로봇, 다양한 기술 매체를 사용하는 작가들이 모였지만, 공통적으로는 기술이라는 문제를 통해 우리가 오늘날 살아가는 현실과 사회에서 관계 맺는 방식을 어떻게 다시 볼 수 있을까를 질문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어요.
허대찬 : 여러분도 이 현상 속에 필연적으로 엮여있으실 거로 생각합니다. 코로나19를 해결하기 위해 기술은 거의 강제적인 해결책으로 제시되니까요. 공연도, 전시도, 창작 활동도 영향을 많이 받으셨을 겁니다. 평소에 관심이 있던 분들은 괜찮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폭력적으로 기술을 배우고 받아들여야 할 시기였을 것 같습니다.
김소라 : 코로나19 이전에도 창작자들에게 폭력적으로 다가오는 정책은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무료공연을 해야만 하는 것이요. 공연이 자생적으로 살아남을 가능성이 거의 없을 만큼 관의 개입이나 지원이 대다수인 현실이 코로나19를 통해 더 강해졌다고 생각합니다. 관의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기술’이 적용된 공연을 해야 한다는 것이 강압적으로 느껴졌습니다. 공연예술은 현장 안에서 주고받는 에너지와 시너지 효과가 있습니다. 현장성 없이 기술과 영상을 통해 공연예술의 미덕을 획득하는 것은 창작자로서 참 어려운 일입니다. 창작자 관점에서 기술은 공연을 보완하지만,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4차 산업혁명 이후에 지원을 많이 준다는 이유로 기술 융합 관련 공연을 기획하고 준비했지만, 창작자로서는 자괴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저 자신이 기술을 잘 모르기 때문에 작품에 적용하기가 쉽지 않기도 합니다. 작년에 한국과학창의재단의 지원을 받았지만, 우주과학 기술을 소화하지 못한 채 이야기를 만들다 보니 소비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코로나19가 끝나고 극장이 다시 문을 열 때까지 기술이 아닌 새로운 대체재를 발견할 수 있을까 확신할 수 없어 고민하는 처지입니다.
허영균 : ‘기술을 강요받는’ 현실이라고 볼 수도 있겠는데요. 창작자와 예술계는 이런 상황을 어떻게 인지하고 통과하고 있을까요? 특정한 사업에 참여하거나 좀 더 큰 단위의 지원을 받기 위해, 내 창작의 결과 다르더라도 기술을 접목해야만 한다면, 그럴 땐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궁금합니다.
김소라 : 영상화도 비슷합니다. 공연 현장에만 있던 사람이니 영상 작업자들과 만날 기회가 거의 없었고, 지역이라는 특성이 더해져 인맥으로 겨우 영상 촬영가를 구하는 형국이거든요. 저의 경우, 전주 문화방송 라디오 방송작가 근무 시절 알고 지냈던 촬영감독을 섭외했는데 막상 협업해보니 영상과 공연의 문법이 너무 다른 것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지막 완성본을 보면서 너무 아쉬웠던 기억이 납니다. 서울에서도 많은 뮤지컬이 영상으로 공개되고 있는데, 뮤지컬 영화를 기대하고 본 사람들은 실망했다는 평이 많았습니다. 음향도 좋지 않고요. 반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서울로 공연을 보러 가지 않아도 원하는 공연을 접할 기회가 생겼다는 점에서 장점도 있는 것 같습니다. 지역에서는 뮤지컬 배우를 구하기도 쉽지 않거든요. 서울에서 활동하는 배우들을 캐스팅해서 연습하고, 지역으로 내려와 공연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때면 왜 전주시민의 세금을 가지고 중앙의 배우들을 캐스팅하느냐는 공격이 있습니다. 내부를 살펴보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거든요. 기술 부문도 당연히 그렇습니다. 외부에서 전문가를 섭외해야 하고, 숙박비 및 체류비 등 제반 비용도 많이 듭니다. 지역의 기술 인프라를 구축하지 않으면, 코로나19로 인해 요구받는 기술과의 융합, 영상화 작업은 어렵습니다.
김주원 : 배우일 때는 참여하는 공연의 회차가 축소되거나 하는 결정을 받아들이기가 쉬웠습니다. 한편 제가 공연을 제작하게 될 때는 그런 결정에 좀 더 민감해졌습니다. 고려해야 하는 부분도 달랐고요. 코로나19 이후 가장 많이 해야 했던 선택은 몸집을 줄이는 것이었습니다. 김소라 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미디어와 기술 관련 지원사업이 많아졌고 지원금을 받기 위해 그간 관심과 구력이 있는 것처럼 지원서를 작성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죠. 한 우물만 파서는 절대로 제작비를 조달할 수가 없어서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있는 척을 해야 하는 상황도 가끔 슬픕니다.
허영균 : 드라마투루그라는 포지션이 자연스러워진 것처럼, 시노그래퍼라는 역할이 익숙해진 것처럼 예술에서의 기술 영역 포지션도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아가지 않을까요? 강제적인 선택에서, 옵션으로, 그리고 당연한 역할로서 예술에서의 기술(자)의 비중이 커갈 것 같습니다.
코로나19 시대, 수용자도 변했다.
김소라 : 수용자 역시 코로나19 역시 많이 바뀐 듯합니다.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작품을 유튜브에서 틀자 조회 수가 1,000만이 넘었거든요. 퀼리티 높은 공연을 무료로 볼 수 있고, 그간 보기 어려웠던 공연들이 영상으로 쏟아지면서 관객의 눈이 순식간에 업그레이드되었습니다. 이렇게 눈이 높아진 관객 앞에, 지금 나의 작품 – 요구에 의해 영상화해야 했던 작품을 내보일 수 있을까? 관객들은 이 공연을 볼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기술과 어떻게 융합하더라도, 관객의 마음을 훔칠 수 있는 서사와 이야기가 없다면 기술은 그냥 기술에 그치는 듯합니다. 2019년 광주에서 일명 ‘무역 활극’이라 소개하는 공연을 본 적이 있는데요. ‘기술의 총집합’이라고 홍보했지만, 저도 다른 관객들도 집중은 딱 10분까지였습니다. 기술이 반복적으로 사용되다 보니 흥미도 없고, 이야기와 의미상으로 맞닿지도 않았습니다. 기술보다 이야기가 먼저고, 기술보다 내용이라는 원초적인 교훈을 얻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코로나19 이후 예술에 대한 모욕적인 댓글을 많이 봤습니다. ‘생존과 직결되지 않는 예술’이라는 입장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그렇기 때문에 예술이 계속되어야 한다는 역설적인 답을 주기도 했습니다.
허대찬 : 인간다움을 위해 필요한 것이 의식주만은 아니니까요. 그들의 논리라면 유튜브와 공중파 방송은 뉴스만 나오면 되는 겁니다. 사람들은 즐길 걸 필요로 하면서도 왜 예술가들에게만 항상 딴지를 걸까요. 이런 현상이 누적되면서 공연과 전시의 시간은 점점 짧아지고 있습니다. 알려진바 시청자의 평균 집중 시간은 약 10분이라고 합니다. 유튜브 콘텐츠와 웹드라마도 점점 짧아지고 있고요. 앞서 잠깐 언급했지만, 미술관의 영상 콘텐츠도 처음에는 2시간짜리의 업로드에서 출발했지만, 지금은 이들의 성향을 이해해 그 길이가 점점 짧아지고 있습니다. 의미 있는 변화지만, 제 생각엔 그럼에도 ‘2시간짜리 공연’이 존재하는 것은 중요한 부분인 것 같습니다.
허영균 :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작업이 영상화되면서 관객의 지평을 넓힌 것 같습니다. 하나의 영상물을 볼 때 ‘시청자가 될 것인가, 관객이 될 것인가’는 굉장히 다른 자세인데요. ‘보는 사람’이 결정할 태도입니다. 어떤 입장에서 보느냐에 따라 똑같은 영상물일지라도 ‘짤, 콘텐츠, 작품’ 등 각기 다르게 소비됩니다. 코로나19는 관객의 경험치를 높였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 것 같습니다. 관객의 주체적 선택이 다양해진 것은 코로나19가 창작자와 관객 양쪽에 가져온 긍정적인 영향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주원 : 관객도 창작자도 극장도 관도 움직이지 않는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 제가 가장 두려워하는 부분인 듯합니다. 앤드류 로이드 웨버도 유튜브에 영상을 푸는 시대에 누가 나의 공연을 보러 극장에 와줄까요? 최근 국립극단이 ‘온라인 극장’이라는 이름으로 녹화된 영상을 풀거나 실시간으로 공연을 송출하기도 했는데 동시 접속자가 3천 명이었습니다. 3천 명이 실시간으로 공연을 본다는 것은 굉장히 고무적이었습니다. 실시간으로 댓글도 달리는데, 처음 연극을 보는 사람들도 꽤 많았습니다. 유튜브나 실시간 송출을 통해 관객 접근성이 무척 좋아졌고, 공연장에서는 다른 집중력으로 공연을 보겠지만 ‘관객의 수가 늘었다’는 감각은 좋은 듯합니다.
김주원(배우·삼일로창고극장 운영위원), 김소라(아트컴퍼니 두루 극작가) Ⓒ안호영 제공
허영균 : 무료공연이나 유료공연이냐에 따라 또 갈릴 부분이긴 합니다만, 실시간 영상 공연이 미지의 존재였던 관객을 실제로 만나게 해준 것만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실시간 채팅을 통해 창작자들은 관객들의 솔직하고 거침없는 속마음을 직관할 수 있기도 하고요.
허대찬 : 실제로 만났을 때 비대면보다 더 많은 정보를 교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눈 맞춤도 할 수 있고, 보디랭귀지도 사용할 수 있고요. 특히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나 미팅 시에 어쩔 수 없이 비대면으로 할 수밖에 없는 아쉬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게 충격이었던 점 중 하나는 실수요자들의 입장은 달랐다는 지점이었습니다. 비대면 교육이나 미팅에 전혀 아쉬움이 없고 오히려 만족도가 높았습니다. 비대면 강의에 대한 학생 만족도가 90%가 넘었습니다. 지금 교육을 받는 세대는 태어나면서 온라인이 익숙해져 있고, 네트워크상에서 무언가를 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로서는 대면해야 하는 상황이 오히려 부담스러운 거죠. 전화는 물론이고 카톡조차도 부담스럽고, 대신 나의 가상 아바타를 이용해서 메타버스에서 만나는 것이 편한 거죠. 코로나19로 인해 극단적으로 나뉘는 세대 간의 특성과 차이를 우리는 어떻게 다루어야 하나. 이것이 저의 다음 과제로 떠올랐습니다.
김신우 : 흥미롭다고 생각하는 다른 지점은 다원적인 우주를 상상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에요. 우리는 지금까지 유니버스(universe)라는 말이 함의하는 것처럼, 인간을 중심에 두고 하나의 현실, 하나의 우주만을 상정해왔잖아요. 인간중심주의 적인 세계관이 많은 폭력을 낳았고, 코로나19와 같은 큰 위기를 발생시키기도 했고요. 그런데 로블록스 같은 게임이나 비트코인이 보여주듯이 이미 우리의 삶에는 여러 현실이 중첩되어 있고, 수많은 레이어들의 가상현실이 있는 것 같아요. 어떤 가상의 현실들은 그동안 사회를 지배해왔던 위계나 구조에 균열을 내고 있기도 하고요. 최근에 재밌게 본 사례는 마인크래프트에 구축된 ‘검열 없는 도서관(https://www.uncensoredlibrary.com/en)’이에요. 전 세계에 검열된 책들, 언론의 탄압을 받은 이들의 글을 모두 모아놓은 어마어마한 규모의 가상 도서관이고, 실제로 접속해서 책을 읽을 수 있어요. 이번에 가상정거장에서 했던 <에란겔: 다크투어>도 비슷한 맥락에서 현실에서 불가능한 연대나 공공의 감각을 만들어보려고 했던 시도였어요. 배틀그라운드는 100명의 플레이어가 접속해서 최종적으로는 1명만 살아남는 서바이벌 슈팅 게임이에요. <에란겔: 다크투어>는 한 명만 살아남는다는 게임의 룰이 설사 불변이라고 할지라도, 그 안에서 플레이어들이 ‘우리는 다른 룰에 따르겠어’라고 마음을 먹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실험해보는 프로젝트였어요. 총을 쏘거나 수류탄을 던지는 대신 같이 에란겔 섬의 풍경을 구경하고 산책하고, 무기의 역사에 관한 렉처를 듣는 식이었어요. 끝에는 전원이 생존해서 한 지점에 모여 다 같이 춤을 추며 종말을 맞는 것을 목표로 했어요. 중간에 총에 맞은 사람도 있고 차에 치인 사람도 있었는데, 그때 서로 심폐소생을 해주면서 최종 집결지까지 모이는 과정에서 비록 “가상”의 현실이지만 변화의 감각, 연대의 감각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허영균 : 그동안 상대적으로 흐릿했던 ‘관객’이 진정한 공연의 일부임이 증명되는 시기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이 시대의 극장은 움직일 수 있다는 관점도 기억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안방과 거실에 TV가 놓여 있고, 부모님이나 형제 등 타인이 고른 채널을 봐야 하는 것과 나 스스로 채널과 플랫폼을 골라서 보는 감각은 완전히 다르니까요.
김소라 : 공연을 해야만 출연료가 지급된다고 해서 꾸역꾸역 영상으로 공연을 한 적이 있는데요. 제일 힘들어하는 건 역시 배우였습니다. 관객 없이 호흡을 주고받는 게 쉽지 않다고 했습니다. 배우들이야말로 관객의 소중함을 엄청나게 느꼈을 것 같습니다. 또 관객의 존재가 공연의 질적 차이를 만든다는 것도 다 같이 확인하게 됐습니다.
허영균 : 또 ‘공간’ 다시 말해 미술관이나 극장의 권위도 달라진 것 같습니다. 영상으로 보기에 좋은 전시와 공연을 송출하게 되면 ‘어떤 장소에서 하느냐’와 같은 조건의 무게가 줄어드는 것 같아요. 국립극장이니까 좋은 영상물을 만든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영상 전시가 최고다 등 ‘공간’의 위상이 영상물의 완성도를 보장해주지 않는 어쩌면 아주 짧은 시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영상작품의 완성도에 따라 지방에서 만들어진 것이냐, 서울에서 만들어진 것이냐는 중요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기술 적용의 현실적인 문제들
김소라 : 내가 이야기를 쓰고 메타휴먼으로 가상 배우를 섭외해서 맵핑을 통해 TV 화면으로 송출하는 작업을 해보고 싶어서 찾아보니 견적이 8,800만 원이 나왔습니다. 기술 융합에 있어서 이런 ‘단가의 차이’도 꼭 짚어봐야 할 문제인데요. 지원금을 받는다고 해도 기술 파트의 예산이 상대적으로 높아서 그 외 창작자들이 사용할 수 있는 예산은 정말 적습니다. 이걸 버틸만한 창작자가 누가 있을까요? 기술 적용, 융합이 강조될 때 결국 자본의 존재감이 더 커지고 창작자들은 자본에 더욱 휘둘릴 수밖에 없습니다.
허대찬 : 요즘 많이 활용되는 시청각적 표현 방법인 프로젝션 매핑은 처음에는 정말 비쌌죠. 근래 매드매퍼(madmapper)나 vvvv 등 전문 툴이 생겨서 창작도 훨씬 쉬워졌고 이것을 쏘기 위한 프로젝터 가격도 매우 저렴해졌어요. 그만큼 대중화, 산업화되었다는 뜻이기도 해요. 이 기술이 계속 빠르게 발전해나가는 상황에서 예술과 접하는 순간에는 결국 기술이 주도권을 가질 수밖에 없어요.
게다가 사람들의 눈높이도 <어벤져스> 같은 블록버스터를 표준으로 하고 있고요. 상상도 할 수 없는 규모의 자본과 인력으로 만들어진 이런 결과물과 똑같은 문법이나 완성도로 평가되어야 하는 것도 난감할 겁니다.
기술의 자주화, 독립성도 주의 깊게 바라봐야 할 지점입니다. 기술과 자본은 함께 가는데 그 안에 인간은 없는 것 같아요. 기술계는 인간이 종사하지 않는 곳이 되어가는 것 같기도 하고요. 컴퓨터, ai의 발달도 인간을 위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기술은 반드시 목적을 전제로 탄생하는 데 그 목적과 다른 효용과 의미를 만들 수 있을까요?
허영균 : 올해와 내년의 예측과도 연결되는 질문인 것 같습니다. 허대찬 님은 코로나19 이후 정말 많이 ‘불려 다닌다’라고 하셨는데요. 지금 이 시점의 ‘니즈’를 정확히 짚어주는 대목인 것 같거든요. 어떤 분야에서, 어떤 주제로 불려가시는지 궁금합니다.
허대찬 : 제일 많은 것은 강의입니다. 문화예술 현장에서 일하는 분들, 행정가들의 융복합 분야와 기술 관련 이해를 높이기 위한 교육이 트렌드입니다. 근래에 과하게 표현하자면, 막무가내로 예산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융복합 프로젝트 지원해라, 융복합 기술 사용해라, 기술 매체 창작 분야에 써라' 등등이요. 그런데 막상 예산을 받아 집행해야 하는 실무자분들은 이와 관련해서 이해도를 갖추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 갭을 메우고자 일종의 자문과 강의 요청이 많습니다.
융복합이라는 말을 꺼내고 무언가를 제안하고 모이는 것은 어렵지 않게 가능합니다. 다른 분야의 사람들이 억지로 모여서 창의적인 무언가를 만들어야 하는 것은 순간적으로는 가능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서로 가지고 있는 언어와 개념이 너무 달라서 서로 충돌하고 의견이 갈립니다. 똑같은 주제를 두고, 똑같은 언어로 이야기했는데 시간이 지나 체크해보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융복합은 가능한가?’라고 묻는다면 대답은 가능하다 입니다. 다만 그 준비 단계가 정말 길어야 합니다. 최초의 언어를 만들고 개념을 통일해 가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해요. 문화예술계 사람들은 강제적으로 기술을 맞닥뜨려야만 했잖아요. 그것이 현실이라도 좋은 방향으로 가져가려면 충분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허영균 : 필요에 의해 이해를 위한 예열 없이 바로 출발해버린 상황인데요. 창작자로서의 고민은 예술은 기술을 필요로 하는 건 맞아요. 그런데 사실 기술 영역이 예술을 필요로 할까요?
허대찬 : 예술 쪽에서는 연관관계를 만들려고 하는데, 기술 쪽에서는 취사선택이죠. 꼭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허영균 : 짝사랑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강제적으로 맺어진 부부의 연인데 심지어 한쪽은 관심도 없어 슬픈 사이.
제1호 기획 좌담 Ⓒ안호영 제공
김소라 : 관객들과 소통하기 위한 기술이 무엇인가 고민하는 것은 얼마든지 하고 싶습니다. 다만 조금 피로하긴 합니다. 이 피로감을 느끼고 뭔가를 배운다고 해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합니다. 예전에는 배우들이 구현해주었던 것들이 지금은 기술에 의지해야 하고, 그것이 나의 가슴을 뛰게 하지 못할 거라는 느낌이 들 때 슬퍼지기도 합니다. 관객들의 눈은 이미 높아졌고, 많은 것들은 예전과 같을 수 없습니다. 지금 어린이 공연을 하나 준비하고 있는데, 가상현실에 갇힌 아이가 거기에서 탈출하는 이야기입니다. 2,200만 원 지원금을 받았는데요. 이걸로 구현할 수 없어서 작가와 고민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이메일 주소를 처음 만들고, 이메일을 보내는 과정이 어려웠지만, 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는 것처럼 공연에서의 기술도 공부한다면 곧 그렇게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창작자로서의 고민은 관객들의 높아진 눈높이를 어떻게 맞출 것인가가 제일 큽니다.
허대찬 : 창작자들이 기술이나 가상현실에 대한 강박을 가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새로운 세대들이 가상현실에 너무 익숙하고, 온라인 공간의 미감을 갖고 있다는 특징은 있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그들에게 그것만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고 알려줄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가상공간과 물리 공간 모두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인간이 가진 멋진 현실이니까요. 다만 창작자들에게만 과도하게 집중되는 요구는 줄어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기관이나 언론에서 왜 예술창작이, 현장에서의 예술 경험이 의미가 있는지 계속 이야기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그들의 책임이죠. 유튜브 <널 위한 문화예술>은 현대미술을 다루는 대중 채널인데 현재 구독자가 10만이 넘습니다. 게임이나 대중음악, 영화와 같은 다른 대중문화의 입장에서는 정말 미미한 수치이지만 우리나라 현대미술 분야에서는 전대미문의 사건이에요. 새로운 채널의 가능성이 열린 거예요. 이런 중간적 매체들 대중에 좀 더 가까운 쪽에서의 노력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창작자들에게만 이 시기를 극복하는 과제가 무겁게 주어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김주원 : 예술과 기술 사이에서 사실 뒤처지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지만, 한편으로 코로나19 이후 무의식적으로 요구받기도 한 것 같습니다. 저는 1차 백신접종을 했는데, 접종하면 숨구멍이 열릴 줄 알았어요. 그런데 접종 후에도 감염될 수 있고 델타 변이도 등장했습니다. 상상하지 못한 것들이죠. 이건 개인의 몫이 아니에요. 예술도 마찬가지 같습니다. 전주에 올 때 제가 KTX 역방향을 타고 왔는데요. 물살이 밀려들 때 그 거꾸로 서 있는 사람도 필요한 게 아닐까? 그게 예술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시대의 예술이 왜 필요하냐. 연극이 왜 필요하냐는 질문도 굉장히 많이 받았기 때문에 더 본질적인 고민을 많이 하게 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김소라 : 시대에 대한 통찰이나 사유를 전달하고, 공감하게 하는 것이 예술가의 책무라고 한다면 지금은 과도기라고 생각합니다. 어딘가에 완전히 편승하기도 어렵고, 그걸로 제대로 된 결괏값을 얻기도 힘들고요. 어떤 기술을 획득해야 하느냐보다 지금 시대에 필요한 이야기가 어떤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 제 역할인 것 같습니다.
김신우 : 코로나19로 인해서 기술이 모두에게 피해 갈 수 없는 조건이자 반드시 대면해야 하는 과제처럼 되었습니다. 모든 예술이 기술의 문제에 천착할 필요는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대면해야 한다면 그 조건에 억지로 끌려가는 것보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일이 중요한 것 같아요.
허대찬 : 연결의 문제, 특히 다른 취향, 다른 관점, 다른 세대 등 사회집단의 연결이 중요합니다. 지금의 알고리즘 사회는 확증 편향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만 보게 되면 그것만 계속 추천받게 되고 나의 세계는 이 알고리즘 이끄는 데로 향하게 되어있습니다. 아무리 중요한 문제여도 닿을 방법이 없어지는 상황은 문제를 초래합니다. 가능성이 스테리오타입이나 특정 유형으로 정착되는 문제적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자본과 연계된 집단이 자극적인 방법으로 사람들을 유도하는 것을 환기하며 다시금 우리 자신을 바라보며 사람을 연결하려는 노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술을 대하는 나를 우선 바라봐야겠지요.
허영균 : 저 개인적으로는 코로나19 이후 정말 많은 개념의 변화를 맞이했습니다. 그전까지는 설명하지 못했거나 설명할 필요가 없었던 문제들을 깊이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고요. 오늘 이야기했던 관객, 수용, 공간, 연결 등의 이슈가 모두 해당합니다. 이번 좌담은 코로나19로 우리가 처음 마주하게 된 고민과 그것을 해결하고 적응해나가는 과정에서 새로이 얻은 통찰을 나누는 시간이었습니다. 긴 시간 함께 깊이 있는 이야기 나누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좀 더 시간을 쌓아 이야기를 더 진전시키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
1) 독립 프로듀서 김신우는 좌담 이후, 서면 인터뷰 형식으로 본 지면에 함께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