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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트로토피아의 시대를 디자이너들의 눈으로 들여다 본다. 


“역사는 지난 시간의 반복이 아니라 하루하루 새로운 오늘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이 글의 결론을 첫 문장으로 쓴다. 로버트 파우저의 책 『도시는 왜 역사를 보존하는가』 서문에서 발견한 문장이다. 그런데 나는 이 말을 먼저 들었고 책을 읽은 건 나중이다. 


한옥마을시설팀 디자이너 김시종은 이와 똑같은 말을 했고, 그 증거는 그가 디자인한 한옥마을 꽃담이며 벤치며, 심지어 교통통제 안내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주로 자료 기록 데이터를 들여다보며 하루를 보낸다.”는 최은별은 디자인 연구자다. 그가 동료 연구자, 디자이너, 작가와 함께 발표한 책과 전시 들은 두 가지 면에서 독특하다. 하나, 그는 역사학자가 아닌데 역사를 쓴다. 둘, 그가 쓰는 역사는 현재와 닿아 있을 정도로 가깝다. 한 가지 더 말하자면, ‘디자인 연구자’란 존재 자체가 한국엔 희귀하다.


디자이너이자 작가인 박고은은 “현재와 과거 사이에서 사라진 시간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네덜란드 아인트호벤에서 석사논문 주제로 ‘한국의 근대 건축’을 다뤘고 이를 보완해 『사라진 근대 건축』(2022)을 출간했다. 광주의 사라진 지명을 주제로 한 인터렉션 작품 〈글자를 입은 소리들이 모인 지도〉(2023)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전시했다. 그런데 요즘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볼 수 있는 그의 전시는 ‘실시간’이다. 〈감각축적〉(2024)은 미술관에 그의 작품을 보러 온 관람객의 움직임을 데이터 삼아 시시각각 변화하는 작품이다. 사실 살아가는 모든 존재의 지금은 즉시 과거로 사라지고 있다는 이야기같기도 하다. 실시간으로 사라지는 모습이 선명하다.



 13호 좌담회 사진  Ⓒ 손하원 제공



조용범: 지난해 웹진 온전 9호에서 가려져 있던 사실, 진실 등을 밝혀내는 예술의 역할·힘에 대한 이야기들을 주제로 이야기할 때, 제가 편집자 역할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번호에서는 레트로, 복고가 유행을 넘어 생활, 문화, 산업 전반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시대에 주목해 보려고 합니다. 이 자리에선 디자인 분야에서 과거의 시간이나 사건을 테마로 활동해 온 전문가들의 성과를 소개하고 오늘날 과거를 대하는 사회적 경향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지 등을 들어보려고 합니다.


김시종: 저는 전주시 한옥마을사업소에서 디자인 업무를 보고 있습니다. 큰 설계부터 작은 시공 업무까지 디자인 관련된 저의 일은 범위가 넓습니다. 예를 들면, 근처 태조로에 보시면 한전 배전함이 있어요. 도로변 인도를 걷다 보면 가끔 마주치는 배전함들은 그냥 회색의 정방형 물체죠. 그런데 한옥마을은 전통 문화가 중심이 되는 장소이기 때문에 거기 어울리는 디자인을 고안할 필요가 있습니다. 고민 끝에 색은 나무 느낌의 브라운 계열, 약간의 전통 장식을 붙여 옛 소목 가구 느낌을 살리는 방향으로 개발 중입니다. 열 가지 중에 한 가지 일입니다. (웃음)


박고은: 저를 소개할 때 우선 그래픽 디자이너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도시, 건축 같은 분야에도 관심을 두고 있어서, 관련된 리서치에 기반한 데이터를 다루는, 시각화하는 그래픽 디자인 작업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최근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를 오픈했어요. 〈감각축적〉이란 작품은 센서를 활용해 센서와 웹 카메라 데이터를 활용해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가공해서 시각화해서 보여주는 드로잉 툴 같은 스크린 형태로 제작했습니다. 요약하면 전시, 연구, 디자인 클라이언트 일을 함께 하면서 지냅니다. 


최은별: 디자인 연구자 최은별입니다. 이번 주에 종강을 하면서 박사 수료가 됐습니다. (웃음) 동시대, 주로 근과거를 포함하는 디자인 역사·문화를 연구하고 있어요. 이러한 연구를 주로 공동으로 진행해 출판과 전시로 발표하는데, 저는 기획과 편집 일을 주로 맡습니다. 기록을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할 수 있는 『새시각』 시리즈 1권에선 1993년 대전 엑스포를, 2권에선 백화점을 다뤘습니다. 『새시각』이 비정기적인 연작이라면, 『지난해』는 연간 프로젝트로 현재와 맞닿아 있는 가까운 과거를 약간의 거리감을 두고 기록합니다. 이 책은 1년 전에 있었던 디자인계를 중심으로 한 사건이나 이슈나 현상에 주목해 아카이빙하고 비평 에세이를 담아 만드는 책입니다. 세 권째 만들었고, 올해 4권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한옥마을의 원경과 근경. 디자이너 김시종의 일터이기도 하다. Ⓒ 제공 김시종 



 

최은별이 동료 연구자들과 함께 기획하고 집필한 『새시각』시리즈 1권은 ‘93 대전엑스포’를 탐구했다.  제공 아키타입

  

박고은은 네덜란드 에인트호벤 디자인대학에서 쓴 석사논문을 바탕으로『사라진 근대 건축』을 썼다. 

문화부의 창작지원금 선정작이기도 하다.  제공 박고은


조용범: 『새시각』 시리즈엔 ‘고고 디자인학 연구’라는 설명이 붙어 있습니다. 고고학 하면 옛 것들을 찾아낼 때 부딪히는 어려움을 떠올리게 하는 말인데요. 비교적 가까운 과거에 대한 연구에 그런 말을 붙인 이유가 궁금합니다.

최은별: 『새시각』이란 책에 좀 더 분명한 방향성을 드러내는 슬로건이나 이해를 돕는 말이 필요했어요. 고고 미술사학이란 말처럼요. 디자인 대학에서 흔히 ‘디자인 역사문화’, ‘디자인사’ 같은 과목명을 쓰는데, 이런 말이 일반 대중에겐 잘 와닿거나 손에 잡히는 것 같지 않아요. 그걸 대체하면서도 재미와 의미를 담을 수 있는 말로 ‘고고학’이 눈에 들어왔어요.

조용범: 디자인 분야는 역사적인 연구, 학술적인 부분은 타 분야에 비해 부족하지 않나요? 디자인은 작업이라는 느낌이 더 가깝잖아요. 디자이너가 뭘 더 만들어야 되고, 더 아름답게 해야 되는 쪽으로 더 많이 치우쳐져 있는 것 같아요. 실제로 대학에서도 그렇지 않나요? 연구보다는 실무 위주로요.

최은별: 연구라고 하더라도. 이론이나 역사·문화보다는…. 실질적인 작업, 프로젝트를 많이 하죠.

조용범: 사회가 디자인을 이용하는, 대하는 시각이 즉각적인 결과 위주이다 보니 ‘고고학’이란 말도 그에 대한 감각적인 반응이란 생각도 듭니다. 이를테면 그런 고고학적 이야기들, 즉 엑스포나 백화점 같은 근대성의 상징적 주제들을 다루면서 오늘의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요? 

최은별: 엑스포와 백화점은 오늘의 시점에서 다뤄볼 만한 하다는 미시적인 이유와 거시적인 이유가 같이 느껴졌어요. 『새시각 1』권 주제인 엑스포는 1993년, 제가 그때 만 2세 였거든요. 그래서 거의 생애 첫 기억 중에 하나가 엄마 아빠와 엑스포를 갔었던 거였죠. 그 스펙터클 때문에 어린 나이에 남게 되는 몇 개의 기억들이 있잖아요. 그중에 하나였던 것 같아요. 이 책을 기획할 당시 88올림픽과 관련해서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큰 전시가 열렸고 사회적 담론도 형성되며 주목이 많이 되고 있었어요. 그런데 93년 엑스포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았어요. 왜 이렇게 대접이 다를까? 또는 우리가 기억하는 게 왜 이렇게 다를까? 그럼 엑스포라는 건 그때 한국 사회에서 어떤 것이었고, 지금 우리가 돌아볼 때 그 엑스포에 투영하고자 했던 것들이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주는가? 그런 문제를 자료를 토대로 해서 다뤄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기획했죠. 『새시각 2』권 주제인 백화점 같은 경우 1990년대나 2천년대 초반 당시 소비문화의 홍수 속에서 처음으로 백화점에 들어가서 안내양이 눌러주는 엘리베이터를 타보고, 10층까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 보고, 엄청나게 많은 쇼윈도를 구경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에서 자리 잡은 소비문화나 그 공간 자체의 맥락 등을 얘기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 역시 신시가지 아파트라고 하는, 그러니까 1980년대에 지어진, 대규모의 계획 도시. 그런 곳에 살고 있는데, 보통 한복판에 다 백화점이 자리하거든요. 목동, 상계동, 압구정동….

조용범: 계획의 일부로서 큰 쇼핑 센터가 포함이 되어 있죠.

최은별: 그 기억이 되게 크게 남아 있는데다, 지금도 전철역과 연결된 백화점을 통행로처럼 드나들며 살고 있기 때문에 더 가까운 일상으로 느꼈던 것 같아요. 거기에 더현대처럼 우리가 기존에 생각했던 백화점과 다른 느낌의 백화점이라는 건물들이 등장하면서 지금쯤 한번 우리에게 백화점이 무엇이었나를 다뤄볼 만하겠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새시각』 2권은 백화점은 우리에게 무엇이었고 무엇인가 묻는다.  제공 아키타입


조용범: 말씀 중에 엑스포 같은 경우는 올림픽 만큼 역사적으로 대접을 잘 못 받는 것 같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최근 한국 사회에 있었던 엑스포 유치를 위한 강한 열망과 노력을 생각해 보면 아이러니합니다. 이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쉽게 잊혀질 거였는데…. 그에 비하면 93년 엑스포가 무엇을 남겼는가에 대해서, 이후에 리뷰는 제대로 되었나 의문입니다.

최은별: 저보다 (나이가 많아) 93년 엑스포에 대한 기억이 구체적이고 뚜렷하실 것 같은 조용범, 김시종 님께 여쭤보고 싶습니다.

조용범: 김시종 선생님과 저는 X세대죠. (웃음)

김시종: 네. 그렇죠. 말씀 중에 그래, 그랬지 하고 생각이 들었던 게 있어요. 88올림픽을 계기로 우리 나라 자체가 급성장도 했고. 그리고 디자인 쪽으로도 많이 업그레이드 된 것 같은데…. 저도 그때를 떠올리니 호돌이를 참 많이 그렸구나 싶어요. 호돌이 그리기 대회에서 상도 받았고요. 호돌이 전에는 뭘 그렸는지 아세요? 마징가를 그렸어요. 다락방에서 숨어서 마징가를 그렸어요. 어른들이 싫어하셨으니까요. 그런데 호돌이가 이슈가 되면서, 눈만 돌리면 호돌이 캐릭터가 보이고, 뭔가 디자인이나 디자이너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생기고 주목도도 높아진 게 아닌가 합니다. 그런데 93엑스포는 솔직히 말해서 88올림픽 만큼의 임팩트는 없었어요. 대중적이지는 않았다고 생각해요. 

조용범: 93엑스포 마스코트 꿈돌이도 별로 인지도가 높지 않았는데 최근에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서 재발견되는 일이 있었죠.

박고은: 저도 기억하는 첫 국가 행사는 93엑스포였어요. 마스코트 꿈돌이를 저는 그 당시에 되게 좋아했거든요. 그 디자인을. 그래서 집에 꿈돌이 저금통도 있었어요.

조용범: 저는 지금 다시 보니 새로웠어요. 호돌이처럼 기존 생명체(호랑이)가 아니라 도깨비와 외계인이 결합된 모습이란 개념도 멋져요.

박고은: 최근 서울시청 광장에 꿈돌이가 있거든요. 보셨어요? 엄청 귀여운데…. 대전을 대표하는 캐릭터로 광장에 와 있습니다.


과거와 현재 사이를 부지런히 오가는 디자이너의 생각과 일에 관하여.


조용범: 가까운 시간일수록 더 기억이 선명해야 될 것 같지만…. 올림픽과 엑스포의 예를 봐도 그렇고…. 어제 먹은 점심이 잘 떠오르지 않듯이 꼭 그렇지는 않거든요. 그런 입장에서 아주 가까운 과거에 대한 첫 번째 역사 정리라고 할 시리즈로서 『지난해』라는 기획을 최은별 선생님을 포함한 메타디자인연구실에서 진행하며 매년 출판하고 계십니다. 아까 말씀을 해주셨었고요. 한 1년 정도 지난 이야기들을 매번 쌓아가고 있는데 그것들이 또 어떻게 살아남고 사라지는가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계신지?

최은별: 일부러 ‘이게 어떻게 됐지?’ 하며 추적하면서 지켜본다기보다는…. 그냥 문득 문득 마주치잖아요. 그러면 ‘이거 1년 만에 망했구나’ 아니면 ‘이거 더 이상 특별하지 않을 정도로 흔해졌구나’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죠. 예를 들어 『지난해 2022』에서 슈퍼말차 얘기를 했어요. 그때는 슈퍼말차가 혜성처럼 등장해서 브랜딩의 세계를 막 잠식하고 있는 그 상황이 엄청나게 폭압적이라고 할 정도로 큰 현상이었는데…. 지금은 슈퍼말차의 그 도상들이 너무나 흔해지고, 당연해지고…. 우리 발에 치이는 것 중에 하나로 익숙해졌잖아요. 제가 오히려 눈여겨보고 싶어 하는 건 다음 책이에요.


 

왼쪽부터 『지난해 2020』, 『지난해 2021』, 『지난해 2022』.  제공 최은별)


조용범: 책에서 어떤 브랜드의 색깔과 서체 디자인이 급속도로 퍼지는…. 그런 유행의 속도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하시곤 합니다. 다소 비판적인 입장인 경우를 보게 되는데요. 복고풍 유행의 속도도 굉장합니다. ‘다 뉴진스를 베끼고 있다’며 소속사 대표가 불만을 터트린 일이 있었는데, 같은 맥락으로 보면 절반은 맞더라도 결국 틀린 얘기죠. 복고풍은 밈(meme)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전파된 지 오래인 게 사실이죠. 과거와 관련된 작업과 연구를 하시는 입장에서 그런 복고풍 유행에 대해서 남다르게, 예민하게 받아들이시는 부분도 있을 것 같고요. 또 작업에 영향을 미치는 부분은 없나요?

김시종: 저 같은 경우는 한옥마을 안에서 경관 디자인을 하다 보니까 복고풍이라고 하는 것은 그냥 몸에 배어 있고, 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어요. 그냥 자연 발생적인, 자연 발생적이면서도 전통이 묻어나는 그런 디자인을 한다고 생각이 들어요. 예를 들어서 통나무로 만든 여물통 아시죠? 그 여물통을 거의 그대로 화분으로 만들었어요. 다른 데서라면 거리의 화분을 대개 플라스틱으로 만들죠. 그런데 우리는 실제 통나무를 잘라 몇 동강을 내서, 속을 파고 거기다가 초화류(금잔화)를 심어서 담 밑에다가 설치를 해보자 했어요. 5년 전부터 시작된 일입니다. 한옥의 처마와 담장의 높이, 그 아래 낮은 지면 가까운 곳에서 보이는 초화류의 색상 등을 총체적으로 풍경이라고 봅니다. 이 풍경을 어떻게 하면 아름답게 보이게 할까 생각하면서 디자인하는 게 제 일이에요.  

길가의 화단 같은 경우 주변으로 사람들이 자주 다닙니다. 그러다보니 식물들이 죽는 겁니다.그래서 울타리를 만들기로 해요. 이럴 때 일반적으로는 철제 울타리로 뚝딱 지어 출입만 막잖아요? 그런데 한옥마을에서는 전통적인 대나무 취병을 하기로 합니다. 그런데 기본적인 발상은 전통적이되 설치와 관리가 용이할 필요가 있겠죠. 이럴 때 제가 좀 더 연구를 해서 개발하는 데 역할을 합니다. 저의 일에서 복고풍이란 그렇게 발현되곤 합니다. 


  

전주 한옥마을의 자연스러운 풍경은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중앙초등학교를 두른 사계절 꽃담을 가리키고 있는 김시종 디자이너.  제공 최은별


조용범: 요즘은 전통과 과거의 스토리텔링이 많은 사람들에게 호소력이 있는 시대인 것 같아요. 그래서 유행을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과거에 기반한 연구 작업을 해오신 세 분의 입장에서 요즘 그런 복고풍 유행에 대해서 어떻게 이해하시는지. 또 작업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도 궁금합니다. 아네모이아(Anemoia)라는 신조어가 상징하듯이, 젊은층이 경험하지 않은 과거를 그리워하는 경향마저 꽤 구체적인 실체입니다.

박고은: 신기한 현상인 것 같기는 해요. 대중문화 분야에서…. 그동안 대중문화 분야에서 축적을 해온 것들을 돌이켜볼 여유가 생긴 거죠. 저희 세대든, 아래 세대든… 30~40년 아카이브 된 나름의 것들을 돌이켜보고, 스스로 되씹고, 재활용/재사용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그게 흥미롭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2000년대가 정말 암흑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돌아오지 않을거라고 생각했는데 결국은 거기까지 돌아오더라고요. 2020년대 들어서는요…. 그런 현상들이 흥미롭다고 생각했고. 그러면 2020년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것도 한 20년 30년 뒤에는 또 다시….

최은별: 그런데 앞서 2010년생들이 1990년대로 돌아가고 싶다고 그런다잖아요? 지그문트 바우만의 책 중에 유명한 『레트로토피아』가 떠올랐어요. 유토피아는 원래…. 그러니까 서구에서의 유토피아는 아직 오지 않았고, 미래고, 도달할 수 없는… 그러니까 도래하지 않는 건데요. 동양 사람들은 원래 과거를 희구하는 게 정상이거든요. 요순 시대가 좋았고, 옛 시인의 글을 따라야 한다는 게 기본값이죠. 

그런데 레트로토피아가 소환하려는 과거는 실제했거나 내가 겪어 본 과거가 아니라 가상의 과거를 유토피아적으로 향수하고 소비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게 이 포스트 모던 시대의 특징인 것 같아요. 뉴진스란 그룹은 그게 아이덴티티인 것 같았어요. 요즘 시티팝도 유행이죠. 1980~90년대에 진짜로 들었던 한국 사람 그렇게 많지 않은데 들으면 다 향수가 느껴지잖아요. 그랬을 리가 없는데도요. 사람들이 과거를 그리워한다고 하는 게 진짜 그때가 완벽하게 멋진 시대였어서가 아니라 아무리 비참하고 정말 폭력이 난무하고 야만적인 과거였더라도 지금과 상반되는 무언가를 찾아낼 수 있으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경제적 고통이나 그런 불만 사항들이나 이런 걸 상쇄할 수 있는 뭔가를 찾아낼 수 있으면 다 가져와서 레트로로 삼을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독일 통일 후에 동독에 대한 향수 현상이 있었거든요. 오스탈기라고 하는데요. 노스탈기(노스텔지어)와 오스트(동쪽)이라는 독일어를 더해 오스탈기 현상이 있었다고 해요. 심지어 슈타지(동독 국가보안부) 호텔도 있었대요. 한국으로 치면 안기부 콘셉트의 호텔 같은 거죠. 말이 안 되죠, 그런 걸 그리워한다는 게. 통일 이후에 생긴 불만을 해소하는 데 실제로는 돌아갈리 없는 과거의 어떤 상황도 콘텐츠로 소비할 수 있게 되었다는 거예요. 결국은 과거에 있었던 무언가를 소비재로 만들 수 있으면, 소비할 수 있는 무언가로 변환을 해낼 수 있으면 다 복고적인 콘텐츠로 기능할 수 있는 거죠.

조용범: 역사를 콘텐츠나 관광 자원화했을 때 어느 정도까지 상업적일 수 있고, 또 소비 할 수 있는가에 대해 묻고 싶게 됩니다. 박고은 님은 『사라진 근대 건축』이라는 책에서 서울의 네거티브 헤리티지들이 너무 쉽게 사라진 게 아닌가 하는 문제 제기를 하고 있는데요. 박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오늘의 이상적인 바람직한 도시 풍경은 역사와 어느 정도 또 어떻게 관련을 맺는 게 좋겠다고 생각을 하시나요?

박고은: 소개해 주신 것처럼 『사라진 근대 건축』은 1900년대 전후에 지어졌다가 사라지거나 지금은 원래 용도를 알 수 없게 잊혀진 건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모은 책인데요. 사라진 근대 건축물들이 네거티브 헤리티지라는 이유로 상대적으로 쉽게 철거가 되었다는 리서치 결과를 이야기를 하고 있는 책이에요. 그래서 네거티브 헤리티지라는 건물 그 자체만을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게 아니라, 그 건물과 건물 주변에 얽힌… 그 건물과 공간을 직접 경험한 사람들이 공유하는 기억을 기록하고 싶었다라는 게 더 정확한 설명일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객관적인 과거의 정보를 제공하는 뉘앙스가 좀 더 있는, 역사적인 건축물들이어서 이 리서치를 시작하지는 않았었고요. 시간이랑 기억이 쌓인 공간이라고 보는…. 도시를 그러한 공간들이 얽혀 있는 곳이다라고 생각해서 관심이 생겼던 리서치 소재였습니다. 그래서 결국 수집하고 싶었던 것은 이 도시 주변에 얽혀 있는 기억들, 이야깃거리들이었다고 하겠습니다. 

제가 느끼기에는 서울이든, 국내 어느 도시들이든 상대적으로 축적되어 있는 이야깃거리가 부족한 편입니다. 도시의 이야기가 좀 더 풍성해지게 할 수 있으면 좋겠다라는 동기가 나름은 있었어요. 엄마, 아빠와 길을 걸을 때 ‘엄마, 아빠가 여기 명동 역에 와가지고 무슨 카페에 가서 미팅을 했어’ 이런 이야기가 저는 항상 재밌게 들렸거든요. 그런데 남아있는 공간들이 많지 않아서, 서로 다른 시간대를 경험한 여러 세대들이 공유할 수 있는, 같이 공감하고 향유할 수 있는 매개체로서의 공간들이 많이 남아있지 않은 게 항상 아쉬웠어요. 요즘 우리 주변의 공간을 보면 20대들이 모이는, 점거하고 있는 것 같은 곳들이 있어요. 저도 부모님이랑 같이 다니면 부모님이 그런 데는 또 들어가기 어려워하시는 거예요. 들어가면 안 될 것 같은, 세대가 나눠져 있는 것 같은 경험을 종종 했어요. 저의 리서치는 사회 공동체라고 할 수 있는 모두가 기억을 공유할 수 있는 공간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차원에서 이뤄지기 시작했어요.

조용범: 『사라진 근대 건축』의 리서치 결과를 보면 네거티브 헤리티지는 쉽게 배제된 경향을 나타냅니다. 반면 조선이나 그 이전의 콘텐츠들은, 특히 조선이 집중적으로 복원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역사들이 하나만 선택되지 않고, 중첩이 되어서 마치 지층처럼 그렇게 쌓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디자이너라면 어떤 해법이 있을까요?

박고은: 저도 요즘 관심 있는 주제이기는 해요. 제 요즘 관심사 중 하나가 고려나 삼국시대 유적지들이에요. 백제 문화는 어디 갔을까? 왜 백자 테마파크는 조선풍으로 지어졌을까?

김시종: 근대 유산이 많이 없어지는 이유 중에 하나로 지우고 싶은 기억이란 점을 들게 됩니다. 우리의 근대기는 일제강점기와 겹쳐지니까요. 그래서 될 수 있으면 조선을 찾게 되는 면이 있겠죠. 사실은 한옥마을도 일제강점기와 관련이 있습니다. 그당시 전주부성을 일제가 철거하면서 성곽 안쪽에 주거지가 형성되기 시작한 거죠. 경기전 앞 전동성당 기초도 훼손된 성벽으로 이뤄져 있지요.

조용범: 한옥마을이 관광지로 성공한 이유에는 건축이나 문화재 자체보다는, 이곳이 들려주는 이야기와 더 깊은 관련이 있지 않을까요? 

김시종: 한옥마을의 경쟁력은 아직 한참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작년에 1500만 관광객이 다녀가셨고 앞으로 2천 만명을 바라본다는데, 아직 그 정도 그릇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런 면에서 디자인 쪽에서 개선해야 할 점을 찾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북촌 한옥마을이나 경주의 천년고도 문화유산과 다른 입장이라는 점을 잘 봐야 합니다.

조용범: 그런 면에서 오히려 상당히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시종: 『론리플래닛』의 아시아 관광명소 선정 이후 몇 번의 계기가 있었고, 행정적으로도 꾸준히 노력을 기울였어요. 한옥마을 활성화를 위해 문화시설을 신축하고 문화 이벤트를 기획하고… 여기에 예산 투자도 많이 했지요. 한옥마을이 그냥 뚝딱 만들어진 게 아니에요. 한옥마을을 하면서 사람들이 그냥 여기저기 걸을 수 있는 공간들이 많이 늘었어요. 관광객과 시민들이 좋아하시는 면인 것 같습니다.


  

2023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전시〈글자를 입은 소리들을 모은 지도〉. (사진 제공: 피스 피스 ⓒ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조용범: 요즘은 걷기 좋은 곳들이 많은 사랑을 받고 있죠. 길과 관련해 박고은 님은 광주에서 옛지명 관련해서 작업하셨죠? 전체 전시의 테마가 ‘걷기, 헤매기’였는데요.

박고은: 2023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전시에서 광주 지역에 사라지거나 잊혀진 오래된 땅의 지명들을 리서치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공간의 좌표로서 지면은 재미있는 요소예요. 저는 지도를 원래 좋아하고 『사라진 근대 건축』도 단행본과 함께 웹사이트 버전이 있거든요. 지도 기반 위에 제가 리서치했던 이야기를 공간 좌표 위에 놓은 웹사이트가 있는데 지도를 다루다 보면 그 요소로서 지명이 또 중요한 디자인 요소잖아요. 그래서 지명들도 왜 이런 맥락이 의미를 갖게 됐을까라는 게 궁금하던 참이었는데…. 마침 광주 지역에서 현재 지명이 아니라 사라진 것들을 테마로 리서치를 하고 있었어요. 그 역사적인 맥락은 앞에 이야기 나왔던 거랑 같은 맥락이기는 한데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현대의 지명들은 대부분 한자어잖아요. 그래서 그렇게 정착이 된 지가 사실은 100년밖에 안 됐다라는 게 재미있는 발견이었어요. 저는 그래서 사라진 지명들을 100년 전에 사람들이 말로 하던, 구어로 이야기하던, 진짜 토박이들만 쓰던 한글 지명들을 모아 작업을 했습니다. 〈글자를 입은 소리들을 모은 지도〉라는 작업입니다.

조용범: 앞서 건축물보다는 이야기에 더 주목한다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글자를 입은 소리들을 모은 지도〉 작업에서 그 말씀의 맥락이 잘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전주 한옥마을의 봄날.  제공 김시종


조용범: 역사를 무대로 한 디자이너로서의 앞으로의 계획. 그리고 오늘의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앞으로 어떻게 남게 될 것인가? 드러나게 될 것인가? 끝으로 두 가지를 여쭤보고 싶습니다.

박고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앞으로 어떻게 남게 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봤어요. 제가 경험한 과거 중 2000년대는 문화적으로 볼 것도 없고 복고풍이 유행하더라도 다시 볼 시대는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어쨌든 Y2K가 이 시대에 재생산되고 있잖아요? 그래서 이 시대의 미래에 대해서도 내가 함부로 판단할 일은 아니라고, 질문을 받고 생각했어요. 동시대에 무엇이 어떠한 관점에서 흥미로운지는 지금을 살고 있는 내가 판단하는 게 아니라 다음 세대가 발견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그래서 최대한 잘 기록하고 아카이브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최은별 님의 『지난해』 같은 작업들이 그렇죠.

최은별: 『지난해』는 너무 힘든 프로젝트라 앞으로 어떻게 될지…. 지금 이 시대는 롤러코스터의 맨 꼭대기고 이제 떨어질 일만 남은 것만 같은 절망적인 생각이 드는 때예요. 1차 대전 일어나기 전의 시기를 벨에포크(아름다운 시절)라고 하잖아요. 전쟁 같은 거 아직 안 일어났고, 계속 아름다울 것 같았던…. 지금이 딱 그때의 1913년 정도가 아닐까? 그런 느낌을 받고 있거든요. 

조용범: 실제로 국지전이 늘고 세계적인 전쟁의 위기가 고조되고 있죠.

김시종: 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일 전쟁이 나더라도 오늘 최선을 다해서… 사과나무를 심는다는 것이 아니라, 저는 한옥마을의 담장을 어떻게 하면 더 예쁘게 디자인 해 볼까, 구현해 볼까, 이런 방법을 저는 연구할 것 같아요. 예전부터 저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왔던 문제이기도 합니다. 아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미래에는 네가 힘들어하는 일들이 다 해결될 거야. 그러니까 너는 중심을 잡으면 된다. 너의 감성과 인성이 너무 흔들리지 않게 잘 정돈하면서 가라. 저 또한 그래야 할 것 같아요. 앞으로 세상의 굴곡이 있더라도 저는 한옥마을에서 최선을 다해서 디자인을 하고 있을 것 같아요.

역사를 무대로 앞으로 어떤 디자인을 보여주고 싶나라는 질문에 대해선, 인위적이기보다 전통이 그냥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한옥마을을 디자인하고 싶어요. 우리가 자연을 보면 가슴이 탁 트이는 느낌을 받잖아요? 한옥마을에서 마음이 탁 트일 수 있는 그런 풍경을, 경관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요? 그게 한옥마을의 경쟁력이고, 우리가 가지고 가야 될 요소이지 않은가. 저는 그렇게 보고 있거든요. 그래서 제 역할이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여러모로 관리하고 들여다보고 그럽니다. 그러면 조금 더 오늘보다 내일이 더 좋지 않을까,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조용범: 한옥마을이 참 급성장했다는 걸 오늘 알았는데요. 앞으로 더 발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을 하니까 더 기대가 되네요. 

김시종: 다음에 또 놀러 오세요. 

조용범: 오늘 들려주신 말씀들을 통해 우리가 지나온, 걸어온 길들에 대해서 좀 더 소중하게 생각하자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 않았던 때도 있었잖아요. 한국의 20세기 중반부터 후반까지는 과거는 많이 지우고 잊고, 늘 미래, 미래를 이야기했던 시대였다면 지금은 과거에 걸어왔던 시간들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하는 시간인 것 같습니다. 또한 오늘을, 미래에 대한 고민과 함께 잘 살아간다면 언젠가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겠죠.

#전주한옥마을 #새시각 #사라진 근대건축 #감각건축 #지난해 #꿈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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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 박고은
디자이너, 작가. 도시 공간 속 인간과 사물의 관계를 디자인과 미디어 기술을 통해 재해석하는 작업을 선보인다. 주요 전시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걷기, 헤매기'전 중 〈글자를 입은 소리들이 모인 지도〉(2023), 타이포잔치 2023 중 〈노래하고 춤추던 정원〉, 국립현대미술관 '사물은 어떤 꿈을 꾸는가' 중 〈감각축적〉이 있다. 지은 책으로 『사라진 근대 건축』(2022)이 있다.
[이메일] goeun.work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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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 최은별
디자인 연구자. 디자인 공공성 담론에 관한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고, 건국대학교 대학원 디자인기획전공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동시대 디자인문화 관련 연구, 출판, 전시에서 활동하며 대학교에서 강의한다. 『세기 전환기 한국 디자인의 모색 1988~2007』, 『행복의 기호들: 디자인과 일상의 탄생』에 필진으로 참여했고, 전자책 『잃어버린 미스터케이를 찾아서』를 썼다. 『새시각』과 『지난해』를 공동 기획, 편집한다.
[이메일] e.choe040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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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 김시종
김시종은 전주시 한옥마을사업소에서 경관디자인 분야를 담당하고 있다. 사람에 대한 배려와 자연경관에 전통이 묻어나는 지속가능한 디자인으로 한옥마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메일] coolsee9@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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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 조용범
조용범은 출판 편집자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IT 및 출판 분야에서 여러 가지 콘텐츠 만드는 일을 하다가 2018년 출판사 에이치비 프레스를 열어 책을 만든다. 에이치비 프레스는 마치 HB 연필처럼 흔히 쓰이길 바라며 조화와 균형을 지향하는 출판사다. 매체에 구애받지 않는 흥미롭고 쓸모있는 콘텐츠를 만들려고 하며, 그중 종이책을 가장 잘 만들고자 한다. 첫 책은 박찬용 작가의 《요즘 브랜드》(2018년 11월)고, 최근작은 소피 하워스의 《마인드풀 포토그래퍼》(2024년 4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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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최아현
최아현은 2018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부문 등단하고, 전주에서 소설가로 활동하며 계속해서 기록하는 삶을 꿈꾸고 있다. 일상생활에서 쉽게 지나치는 것들을 기록하고 소설에 옮긴다. 단편소설 「독립」과 「대원의 소원」을 발표했다.
[이메일] ahyoun091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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